2016/08/07 ‘애국’과 ‘혐오범죄’
오늘도 동경은 최고기온이 35도나 되는 폭염이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고 한다.
어젯밤에 성적입력을 끝내면서 학기를 마쳤다. 올해는 종강이 일주일 늦어서 성적을 내는 것도 일주일 늦게 끝났다. 지금까지 강의를 하면서 올해처럼 맥빠지게 끝나는 경우도 없었다. 성적을 내는 과정에서 봤더니, 강의를 하며 우려했던 것보다는 좀 나았지만, 최악을 면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울퉁불퉁해도 뭔가 학기를 끝냈다는 달성감이 있었다. 이번 학기는 겨우 끝냈다는 느낌이다.
채점을 하며 느낀 것도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강의하면서 받는 것과는 달리 학기말 리포트는 나름 학생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작성한다. 이번에 읽은 리포트를 보니 긴장감이 별로 없다. 뭔가를 쓰려는 의지나 고민, 긴장감도 없다면, 좋은 리포트를 쓰기가 어렵다. 이런 분위기는 학생들만 나쁘다고할 수가 없다.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학생들에게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도 학생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7월 26일에 일어난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인을 19 명이나 죽인 사건의 범인을 보면서 내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신문에서는 전후 최악의 사건이라고 난리에 난리를 쳤다. 어떤 의미에서 최악이냐면, 죽인 사람 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주요일간지에서 사회적인 배경과 연결시킨 심층적인 보도가 없어서 유감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혐오범죄’인데, 그런 용어도 쓰지 않더라. 이사건은 우려했던 일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며, 앞으로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나타난다. 뉴스가 단지 뉴스일 때는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일상이 뉴스가 된다면 가 다르다. 이번 사건에서 핵심은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가장 연약한 사람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대량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그 걸 히틀러에게 영감을 받았다고도 했다. 자신의 악행을 피해자를 위해서 행했다면서 다른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 것이 최종적으로 ‘아름다운 일본’을 위한 것으로 집약된다. 범인이 행한 일은 ‘정의’스러운 ‘애국’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다음날 그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감상문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아닐까, 공포스럽다. 다음에 그런 사건을 저지르는 것은 내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주 예리하게 지금 일부 젊은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 사건은 다른 사람이 저질렀지만,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내가 경악했던 감상에 “그는 행동력과 추진력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강의시간에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주의했다. “행동력과 추진력이 있다고 칭찬하는 것은 좋은 일을 했을 때, 좋은 결과로 연결되었을 때 쓰는 것이라고, 나쁜 일에는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일본의 일부에서 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을 ‘영웅시’하는 풍조가 있다. 있어서는 안되는 잘못된 인식이다. 내가 교실에서 느꼈던 일이 신문기사가 되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느끼는 것은 극히 일부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이전에도 그런 풍조가 있어도 신문기사가 될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은 극단적인 현상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다. 교육의 힘으로 그런 학생을 지도해서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을까?
헤이트 스피치를 ‘표현의 자유’라고 재일동포 혐오활동을 하는 단체를 10년이나 방치해서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애국’이 된 사회다. 지난 동경도지사 선거에서는 선거유세라고 합법적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하지 않았나. 이 사회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하다. ‘혐오범죄’가 일상인 것이다.
이번에 방위상이 된 이와다 도모미는 재특회에서 정치헌금을 받았으며, 국기 앞에서 네오나치 단체대표와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나와도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에 “전쟁은 인간 영혼의 진화로서 최고의 종교적 행사라는 것이 제 삶의 근본”이라는 발언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일본의 방위상으로는 최적화된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반어법). 그런 분위기에서 사회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혐오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시그널이 계속 보내고 있다. 현 정권의 핵심인 사람들과 같은 사상인 것이다. 마치, ‘혐오범죄’가 ‘애국’인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잘못된 시그널을 받아서 일반사람이 행동을 하면 ‘혐오범죄’가 된다. 아,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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