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0 인간승리?!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낮이 되어 비가 그쳤다. 가끔 햇빛도 살짝 비쳤지만, 기본적으로는 비가 오며 먹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비가 와서 기온이 내려간 것은 고마운 일이다. 비가 그쳤을 때 야채를 파는 곳에 다녀왔다. 혹시 참외가 있을 줄 알고 갔지만, 참외는 없었고 오이를 한 봉지 샀다.
오이를 고르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 좁은 곳에 아저씨가 들어와서 괜히 말을 건다. 보통은 그 좁은 곳에 사람이 있으면, 특히 여자면 들어오면 안 된다. 설사 들어와도 모르는 사람인데 너무 가깝게 접근해서 말을 거는 것도 실례다. 오늘은 옷도 여유로운 것을 입었는데, 왜 아저씨가 접근을 하느냐고? 짜증이 난다. 앞으로는 야채를 살 때도 조심해서 다녀야겠다. 요즘 전철을 안 타는 생활을 하니까, 아저씨들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밖에 나다니지 않아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야채 파는 곳에서 얼른 오이를 한 봉지 사고 나왔다. 동경에서 살려면 어디서 이상한 아저씨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항상 경계해야 한다. 아줌마도 아저씨들을 경계해야 하는 게 피곤하다. 그렇지만, 그런 아저씨로 인해서 불쾌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스트레스가 무서워서 경계해야 한다. 농가 할아버지나, 아저씨와는 인사를 하고 편하게 말을 나눈다. 내가 경계하는 아저씨와 인사하고 편하게 말하는 사람은 종류가 다른 사람인 것이다. 촉으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 같은 이상한 아저씨를 경계하는 것이다. 기분좋게 나왔는데, 기분이 나빠진다. 돌아오는 길에 가까운 농가 마당에 놓인 양파를 두 종류 사서 돌아왔다. 덤으로 놓인 아주 맵다는 피망도 두 개 넣고 왔다. 저녁에는 오이와 양파를 무쳐서 소면과 같이 먹을 생각에 부풀었다. 저녁으로 일찌감치 두 종류 양파에 오이를 무쳐서 소면과 같이 먹었다.
요새, 4일이나 밖에도 안 나가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서다. 그러다 어제 금요일이라는 걸 알고, 갑자기 집에서 튀어나가 야채를 파는 곳에 갔다. 지금까지 확률을 보면 금요일에 참외가 왔다. 전날에 비가 와서 바깥은 예상보다 선선했다. 나는 아주 가볍게 A라인 미니원피스를 걸치고 모자를 써서 나갔다. 바깥은 바람이 불어서 원피스가 말려 올라가기도 했지만, 누가 아줌마의 허벅지에 관심이 있겠나 싶어서 갈 길을 서둘렀다. 게이트볼을 하는 아저씨들이 단체로 내 허벅지를 주시하는 걸 옆 눈으로 보면서 길을 간다. 가장 가까운 농가 할머니가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뭐 하세요? 응, 여기 풀을 베고 있어, 깨끗하고 산뜻해졌지? 그러네요, 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마당에 놓인 야채를 보니, 가지가 세 종류에 양파가 두 종류, 감자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통통한 보라색 가지를 한 봉지 사고 맵다고 덤으로 가져가라는 피망을 두 개 얻어서 왔다. 참외는 못 샀지만, 상쾌한 바깥공기를 맡아서 기분이 좋았다.
풀장을 지나서 오늘 길에 앞에서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할아버지가 내 눈 앞을 걷고 있는 아저씨를 붙잡고 길을 묻는다. 나도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봤다. 프린트 한 종이를 보이면서 묻는다. 풀장이 어디냐고? 풀장은 바로 여기라고 아저씨가 짜증을 내면서 금발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준다. 나는 옆에서 금발 할아버지의 범상치 않은 옷차림을 유심히 봤다. 염색한 금발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민소매 티셔츠에 옅은 색 청바지를 입었다. 자전거도 새 자전거로 반짝이는 블루에 흰색 타이어다. 할아버지는 더위에 허덕거리다가 거의 주저앉아 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범상치 않게 보였던 것이 무엇인지 디테일을 볼 수가 있었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손톱과 발톱에 멋있게, 그 것도 손톱마다 다르면서 조화롭게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를 했다. 얼굴에도 정성스럽고 깔끔하게 화장을 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아줌마는 화장은커녕, 가장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가서 바람에 스커트가 올라가서 허벅지가 보여도 상관없이 걷던 아저씨 같은 아줌마다. 금발 할아버지의 화장의 마무리는 아이라인에 마스카라도 아주 깔끔하고 정성스러웠다. 눈 밑에 아이라인까지…… 세련되고 멋있다. 인간승리로 보였다. 나는 여자지만 거기까지 피부에 정성을 쏟고 그렇게 깔끔하게 완벽한 화장을 할 자신이 전혀 없다. 패션의 끝장을 보여준 금발 할아버지의 정신과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금발 할아버지는 어떤 수영복을 입었을까? 아주 궁금해졌다. 어디에 살고 있을까? 자전거도 새 것인 걸 보면, 금방 이사를 온 것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