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6 유학생 후배를 만났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안개처럼 촉촉히 비가 오는 날씨였다. 오늘은 지난 주 나리타공항에서 만난 유학생 후배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후배가 오늘 일을 쉬는 날이라고 한다.
후배에게 챙겨다 줄 것이 없어서 농가와 무인 야채 판매에 야채를 사러 다녔다. 어제 가늘고 긴 가지를 한 봉지 샀다. 오늘도 오전에 비가 오는데 야채를 사러 나갔다. 농가 마당에는 야채가 없었다. 야채 무인판매에 갔더니 다행히도 야채가 좀 있었다. 종류가 다른 가지 한 봉지에 피망을 두 봉지, 오쿠라 한 봉지, 박처럼 생긴 중국에서 잘 먹는 것 하나를 샀다. 집에 있는 두 종류 호박과 통조림도 하나씩 넣고, 마른 표고버섯, 쌈장도 한 병 챙겼다. 야채가 무거워서 여행용 가방에 넣었다. 가방은 처분할 것이라, 가방을 돌려줄 필요도 없다. 후배에게 나눠 줄 것이 별로 없는 처지라서 신선한 농가의 야채를 주는 걸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가족이 많으니 뭐든지 좋겠지만, 요새 야채가 좀 비싸다.
역으로 가는 길도 비가 왔지만, 시모키타자와에서 만나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후배도 나와 같이 오다큐 센과 게이 오센을 쓸 수 있다. 시모키타자와는 오다큐 센과 게이오 이노카시라센이 선다. 혼다 극장이 있는 쪽 개찰구로 나가려고 했는데 시모키타자와 역이 많이 바뀌어서 방향을 잘 모르겠다. 개찰구에서 혼다 극장으로 가려면 어디냐고 했더니 여기가 맞다고 한다. 눈 앞에는 피콕 마트가 보여서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맞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후배와는 엇갈려서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만났다. 우선은 아는 중국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조금 일찍 갔으면 런치메뉴라고 세트로 나오는 걸 먹을 수 있었는데 시간이 늦었다. 지난번 후배가 아주 비싼 월세를 내고 산다는 것이 신경이 쓰여서 내가 사는 동네 아파트 매물이 나온 전단지를 모아서 가져갔다. 전단지에는 내가 몇 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내가 아파트를 산다면 이런 곳이 좋겠다는 곳을 알려줬다. 지금 고 2인 딸이 대학에 가면 도심에서 비싼 월세를 내면서 살지 말고 자연환경이 좋고 살기 편한 교외로 나오라고 했다. 내가 사는 근방에 아파트를 산다면 그동안 연구한 성과를 다 알려줄 테니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도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예약 손님이 온다고 해서 나왔다.
시모키타자와에 가면 들리는 앤틱 기모노 가게에도 갔다. 물건 진열이 달라졌고 가격도 비싸졌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가게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됐다고 지금은 아들이 가게를 맡아서 한단다. 전에도 아들이 물건을 들이고 아저씨가 가게를 보는 식으로 분담했다고 한다. 진열도 깨끗해졌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돌아가신 아저씨가 에돗코(에도는 동경의 옛 지명이다. 동경 토박이를 뜻하는 말로 동경에 3대 이상 산 사람들을 가리킨다)로) 샤이 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 있는 분이셨다. 기모노에 관해서도 많이 가르쳐 주셨다. 이런 옛날 동경 토박이가 점점 볼 수 없게 되는 게 안타깝다. 가게 주인도 대가 바뀌었으니 어떨까? 시간이 있을 때 다시 가봐야지. 아저씨가 살아 계실 때처럼 기분 좋은 대화를 하면서 물건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후배와 차를 마시러 갔다. 내가 알던 역 개찰구는 공사하느라고 폐쇄된 상태였다. 역 개찰구가 바뀐 것이다. 폐쇄된 역 개찰구 앞에 있는 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원래 이런 곳은 싫어 하지만 후배가 이용한다니 따라갔다..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가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헤어져서 돌아왔다. 회포를 푼 셈이다. 후배는 일본에 온 지 올해로 30년이라고 한다.
후배는 마트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전에 일했던 롯폰기에 있는 마트에서 생긴 일을 알려줬다. 그 마트는 고급 마트여서 손님이 적어 일이 편했다고 한다. 거기서 일하는 여성은 후배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다고 한다. 25살짜리 일본인 귀여운 사람과 후배에 40대 싱글맘(?)이었다. 젊고 귀여운 일본인 여성이 매니저에게 잘 보이려고 애교를 떤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상사에게 아부성으로 애교를 떨었다. 그 여성은 약간 문제가 있어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아주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다고 한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상사가 아부성 애교를 떤 여성의 몸과 얼굴을 만지는 성추행을 한 것이다. 약한 입장에 있는 여성이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애교를 떨었다고 성추행을 당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여성은 성추행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랬더니 매니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기서 일하는 여성 세 명을 동시에 해고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방법으로 해코지를 했다.
남성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일터에서 일하는 소수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원활하게 지내려고 항상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쓴다. 남성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기에 그런 여성들의 노력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원활한 직장생활의 일환이지, 인사를 잘하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해서 여성의 몸을 만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남성 중에는 여성들의 이런 태도를 제멋대로 해석해서 자신을 유혹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많이 당했다. 단지, 친절하게 대한 것을, 마치 내가 유혹이라도 했다는 식으로 막 나가는 사람을 한 둘 겪은 것이 아니다. 나는 항상 황당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데 좀 싹싹하게 대한 것뿐이다. 개인적인 관심을 표명한 적이 전혀 없다. 만약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관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개인적인 관심은 전혀 없고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거기에는 다른 젊고 예쁜 동료도 있는데 하필 나였을까? 내가 친절하게 대했고 한국인이라서 만만했을 것이라고 본다. 자신들의 욕망을 거꾸로 뒤집어 씌우기에 적당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성들은 그렇게 타깃을 잡는다. 그래서 타깃이 되기 쉬운 여성들이 있다. 나는 하도 당해서 이상하게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태도는커녕 인사도 안 한다. 그 문맥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내가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모를 것이다. 나도 황당한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로 그런 태도를 취한다.
남성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에 무엇을 하든 남성들이 항상 옳다. 여성들은 여성이기에 어떻든 항상 문제가 있는 것이 되고 만다. 지금은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다음에 피해자인 여성이 문제를 제기하면 남성들이 더 큰 보복을 한다는 걸 여성들이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가해자인 남성들은 보복을 함으로써 여성들이 공포를 느껴서 꼼짝도 못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안 된다.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직장을 잘려야 한다는 것은 여성들은 어떤 일을 당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지, 상사에게 몸과 마음까지 제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은 제멋대로 여성의 몸과 마음까지 유린하려고 한다.
디저트 사진은 오늘 먹은 것이 아니라, 지난주 친구와 먹은 것이다. 칡꽃과 오늘 후배에게 준 야채 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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