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0 후쿠시마 고리야마 3- 방사능 오염
오늘 동경은 아침에 잔뜩 흐렸다가 살짝 비가 왔다. 어제는 최고 기온이 30도로 더운 날씨였다. 어제부터 가을학기가 시작된 수업이 있었다. 한시간에는 수강생이 많아서 교실이 꽉 찼다. 수강생이 많다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학생들은 열기를 뿜고 있지만 나는 수업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바깥이 덥지 않아도 습도가 높았고 실내가 무더워서 아주 졸리는 날씨였다. 첫교시 수업에서 학생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자고 싶었지만 강의를 하는 입장이라 잘 수가 없다. 수업을 마치고 다음 주 수업준비를 해놓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새로 온 책을 많이 읽고 잠깐 꾸벅 졸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일찌감치 돌아왔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글을 마저 쓰자. 학생에 집은 부모님과 형제가 사는 집과 할머니가 사는 집이 따로 있어서 나는 할머니네 집에서 자고 주로 거기서 지냈다. 할머니가 요리를 할 때는 옆에서 거들기도 하면서 요리하는 걸 보기도 했다. 할머니네 부엌은 거실과 연결되어 요리도 하고 평상시 쓰는 곳과 그 옆에 넓게 쓰이는 곳이 있었다. 거기에는 우물도 있고 각종 저장식품이 있다고 했다. 부엌 싱크대에도 수도가 양쪽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수도가 왜 두 개냐고 물었더니, 한쪽은 수도이고 다른 한 쪽은 우물물이라고 한다. 우물물을 틀었더니 더운 날씨에도 물이 차가웠다. 할머니가 말하길 수돗물보다 우물물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진 이후 우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고 먹을 것에는 우물물을 쓰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할머니는 음식이나 직접 입에 닿을 것에는 우물물을 쓰지 않는다고 아주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차마 할머니에게 부엌에서 쓰는 것에 입에 닿지 않는 것이 있느냐고 되묻지 못했다. 나는 잠깐 왔다 가는 사람이지만 할머니는 여기서 방사능이 오염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있다.
후쿠시마에 가기 전에 북한에서 미사일을 쏴 올렸다고 일본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학생네 집에 놀러 가면 주위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왔다고 학생네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을 했다. 나 자신도 연일 보도하는 북한 미사일 관련 뉴스를 묻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누구도 그 걸 묻지 않았다. TV에서 그 뉴스를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묻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물어도 서로가 곤란할 뿐이지 아무런 방도가 없다. 아마, 학생네 부모님이나 할머니도 북한의 미사일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 했을 것이다. 나에게 묻지 않은 것은 배려를 한 것이리라.
나도 후쿠시마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묻고 싶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생산한 것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다고 쳐도 다음 세대인 학생네 부모가 있고 거기에 갓 결혼한 젊은 손자 부부가 있다. 손자에게서 다시 증손자가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후쿠시마에서 떨어진 동경에 살면서 방사능 오염을 생각해서 후쿠시마에서 생산한 것을 안 사고 피한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오염을 피해서 타지로 전학 간 아이들이 후쿠시마에서 왔다고 차별을 당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하고 있는 후쿠시마의 재건과 원전 재가동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방사능 오염에 대해서도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도 불안하다. 겉으로 말을 못 하지만 막연한 불안이 일본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염이 심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학생 네가 살고 있는 곳은 오염 지역에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 안전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그런 현실을 살면서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고 전통을 계승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불안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을 잘 알 수가 있었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 걸 알고 일본 정부가 하고 있는 믿음이 가지 않는 방사능 오염에 관한 뒤처리와 후쿠시마의 재건에 관해 정말로 화가 났다.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이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살고 있기에 더욱 화가 났다. 현지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전통을 계승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너무 성의 없는 대응을 하고 있다. 국민을 버리는 것인가?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못 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동경에 돌아오는 길, 고리야마로 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귀여운 기차를 타고 가을이 온 황금 들판을 지나서 고리야마에 왔다. 고리야마와 가까워지니 들판은 아직 푸르렀다. 푸른 들판도 금방 황금색으로 바뀔 것이다. 고리야마 역에 모모타로라는 일본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이름의 기차가 서 있었다. 이렇게 후쿠시마에서 보낸 3일이 지났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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