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5 비린내…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씨다. 낮에는 안개가 자욱히 낀 것처럼 시야가 어두웠다. 그러나 비가 조용히 촉촉이 내려서 분위기가 좋다. 그다지 춥지도 않고… 나는 어젯밤부터 양말을 신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이 바빠서 쉬질 못했다. 그 건 그냥 바로 위력을 발휘한다. 피로가 축척된다. 지난 주는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계속돼서 아주 지쳤다. 어제도 아침에는 선선해서 반소매 코트를 걸치고 나갔다. 교실 안은 찜통이었다. 거기에다 학생수가 늘어서 두 번이나 교실을 변경했다. 특히 어제 2교시에는 일본 정국에 대해 강도 높게 정면으로 비판했다. 많은 학생들이 놀랬고, 앞에 앉은 중국 유학생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맨뒤에 앉은 한국 유학생 아이는 내가 걱정이 되어 일어섰다 앉았다 안절부절을 못한다. 몇년 전에 수강생이 많은 수업에 한국 유학생을 어시스턴트로 쓴 적이 있었다. 그 학생도 내 수업을 들으면서, 참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걱정을 했다. 내가 (일본)학생에게 칼 맞을까 봐… 정작 나는 전혀 그런 걸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둔감하다는 것이다.
2교시에 너무 더운 데, 열까지 내서 힘이 빠졌다. 3교시 까지는 어떻게 했는 데… 요일이 헷갈린다. 금요일인 줄 몰랐던 것, 다른 선생이 다음 주에 봐요, 인사를 들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지? 그러면서 카피를 떴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쌀쌀했다. 낮에 땀에 찌든 나는 어느 옛날이었나 싶다. 몸이 처진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고 있다. 나도 지지난 주에 학교에서 돌아올 때 그렇게 잤다.
금요일 돌아오는 길에는 주말에 먹을 걸 사야 한다. 어제는 싱싱한 횟감용 오징어가 싸서 세 마리를 샀다. 오랜만에 비린내가 나는 걸 산 것이다. 요새 부쩍이나 비린내가 거슬리는 데, 가끔 무척이나 비린내가 당긴다. 오징어는 가끔 사는 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집에는 항상 비린내가 나는 것들이 있다. 냉동고에 있는 잔멸치와 큰 멸치를 필두로 다시마가 항상 있고, 파래가 있고 김도 있다. 그리고 고등어 된장조림 통조림에 참치캔이 있다. 생선은 잘 안산다. 아주 가끔 사는 것은 그 날로 먹어치운다. 아무래도 냄새가 나니까… 요새는 연어를 잘 산다. 연어는 그래도 냄새가 덜난다. 양식이 아닌 자연산을 산다. 오징어는 뼈가 없고 비린내가 덜나서 그래도 자주 사는 생선이었다. 어제는 피곤해서 정신없이 산 것 같다. 다른 마트에 들러 서양배를 두 개에 과자, 상추를 샀다.
어젯밤에 삶은 야채(호박, 당근, 브록코리)에 오징어를 데쳐서 넣고 참깨소스와 같이 먹었다. 오징어를 데치고 나면 금방 냄비를 씻는다. 씻고 나도 냄새가 손에 약간 밴다.
오늘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일을 가는 날보다 2시간이나 더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래간만에 쌀을 씻어서 밥을 했다. 어제 사온 상추도 씻고 상추쌈을 먹으려고 고등어 통조림을 꺼내서 양파와 고추와 샐로리를 썰어 넣고 졸인다. 비린내가 나는 걸 먹고 싶은 날이다. 참치캔도 열어서 대파를 썰어널고 계란을 풀었다. 보통 때 요리를 안해서 대중을 못하겠다. 고등어조림에 넣을 양파도 너무 많이 썰었다. 대파도 너무 많이 썰었다. 어쨌든 내 뱃속으로 들어갈 것이라, 그냥 다 냄비에 투입했다. 밥이 되었다고 소리가 난다. 계란은 다른요리를 하려고 했는 데, 결과적으로 볶음이 되고 말았다. 왜 계란에서 계속 물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상추는 일찍 씻어서 물을 뺏으니까, 밥을 푸고 식탁을 차린다. 멸치볶음에 깻잎을 절인 것, 우엉조림이 이미 냉장고에 있어서 고등어조림과 계란 볶음이 있으니까, 대단한 성찬이 되었다. 와, 반찬이 많다. 우엉조림은 냉장고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옛날 학생이 농사를 지어서 보내준 쌀을 냉장고에 넣어서 가끔 밥을 해서 먹는다. 보통 때는 쌀을 먹을 일이 없다. 오랜만에 따뜻한 집밥을 먹는 거다. 우선 첫술은 깻잎절임을 한 장 꺼내서 밥을 싸서 먹었다. 그 다음 깻잎은 안 먹는다. 귀중품이어서 아껴야 하니까… 멸치볶음과 밥도 먹는다. 멸치볶음도 조금씩 먹는다. 이 것도 아낀다고… 주로 고등어조림과 계란 볶음을 얹은 상추쌈을 먹었다. 상추쌈을 먹으면 밥을 잘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후식으로 서양배를 하나 먹고 커피를 마셨다. 쉬는 날 늦잠을 자고 밥을 해서 먹었으니 몸과 마음에 살짝 영양보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서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빈둥 빈둥하는 거다. 도서관에 가려니 비가 촉촉이 내려서 집에서 커피 마시고 과자를 먹으면서 멍하니 지내는 게 좋겠다. 요새 과자가 아주 많거든요…아, 위험하다, 다이어트를 했는 데, 헛수고가 된다.
밥을 먹고 나면 즉각 설겆이를 한다. 그리고 촛불을 켰다. 향도 피웠다. 비린내를 없애려고 하는 거다. 날씨가 축축해서 창문을 닫아서 비린내가 집안에서 맴돈다. 비린내가 땡기는 것도 비가 오는 날이다. 냄새가 배기 쉬운 날이기도 하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비린내가 당기면 가급적 비린내가 덜나는 것으로 먹는다. 가장 간단한 것은 김을 구어서 먹는 것이다. 굽기 전에 냄새를 맡는다. 바다냄새를 확인하고 구워서 김 냄새가 나게 한다. 다음 단계는 잔멸치다. 잔멸치는 활용도가 아주 높은 품목이다. 비린내에도 단계가 있다. 먹고 나면 냄새제거에 공을 들인다. 집안에 걸린 수건 냄새를 맡아보면 비린내 위에 향을 피운 냄새가 배어있다. 방에도 같은 순서로 냄새가 더해져 간다.
비린내처럼 갑자기 충동적으로 당기는 것은 나에게 무척 낯선 일이다. 비린내가 땡겨서 뭔가 사지만,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때 내가 먹고 자란 생선들은 비린내가 안 났다. 싱싱한 생선은 냄새가 거의 비린내가 안 난다. 맛도 달콤하다. 비린내는 어딘가 저 멀리서 바다를 느끼게 한다. 파도와 바닷가를, 섬을 그리게 한다. 충동적으로 비린내를 먹고 비린내를 떨쳐내려는 나를 본다. 내가 사는 비린내가, 원했던 비린내가 아니다. 아주 조금 추억이나, 냄새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비린내 먹었어, 됐지? 자신을 속여가면서, 그래도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자신을 달랜다. 이 욕구는 깊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욕구에 당황한다. 난 바다를 잊었어, 산속에 살잖아, 파도, 바닷가… 그 게 뭐야? 섬, 그런 것도 있었나? 결코 통조림이 될 수 없는 것들을, 통조림으로 달랜다. 비린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