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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사과와 김밥

 2014/10/02 사과와 김밥

 

오늘 동경은 비가 올 듯 빗방울이 비치고 안개가 낀 듯 흐린 날씨였다. 일교차가 심한 것은 여전해서 피곤하기 쉬운 날씨인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역까지 오는 스쿨버스에서 정신없이 잤다

가을학기에는 강의하는 날이 많아서 좀 바쁘다. 그리고 지난주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데, 여전히 허리가 아프다. 월요일에 물리치료를 받았더니, 좋아진 곳과 더 아픈 곳이 생겼다. 운동화도 좋은 걸로 새로 샀다. 이번 주는 다른 신발을 신을 엄두가 안 나서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 옷도 운동화에 맞춰서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토요일에 물리치료를 예약해서 다시 간다

강의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허리가 아파서 동작이 부자연스럽고 좀 이상하다고, 가끔 아픔을 견디느라고 인상을 쓴다고 안내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소리 지르게 되면 허리가 더 아파오니까, 내가 화를 내지 않게 협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이 조용히 집중하는 편이다

개강을 하기 전에 네팔아이가 아오모리에 갔었다고 사과를 선물로 보내왔다. 네팔아이가 처음으로 선물을 사서 보냈다. 지금까지 4년 이상을 줄곳 내가 해주기만 했었다. 처음으로 선물을 받아보니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우선, 철이 들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사과상자를 보니 비싸게 줬을 것 같다. 상자도 새로 짠 것이라, 나무향기가 났다. 사과향보다, 나무향이 더 강했다. 아직 사과가 맛이 안 들었을 텐데… 가만히 봤더니 송료가 따로 들어서 820엔씩이나 했다. 가게에다 부탁했으면 송료가 더 쌌을 텐데… 아까워서 속이 상했다. 알바해서 번 돈이 한 푼이라도 허투르게 쓰이는 것 같아서 속이 안 좋다. 그래서, 반갑고 고맙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깝기도 했다. 네팔아이에게는 마냥 기쁘다고, 고맙다고 해뒀다. 비싸게 줬을 것 같다거나, 송료가 아깝다면 김이 샐 것 같아서… 상자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아마, 언제까지나 상자를 두고두고 쓸 것이다

친구에게 저녁을 초대받아서 사과 세 개 중에 하나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네팔아이 말을 하면서 좀 철이 드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죽어라고 말을 안 듣더니 이제야 내 말을 좀 듣기 시작했다고… 그 아이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내 기대치에 못 미칠 따름이고, 내 말을 일찌기 들었다면, 좀 더 괜찮게 풀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일이다. 지금은 내가 한 말을 듣고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일본에 와서 4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네팔에 돌아가질 못했다. 자기가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빚도 갚아가는 데, 도무지 네팔에 갈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하든지, 취직을 해야 한다. 그 전에 네팔에 가서 좀 어른이 된 눈으로 자기 나라와 고향을 보고 가족들을 만나고 와서 방향을 결정하라고, 다녀오라고 했다. 내 말을 듣고 다녀오겠다고 했다

고향에 가는 것은 그 아이인데, 고향으로 가져갈 짐을 챙기는 것은 나다. 가족이나, 친척에게 가져갈 선물을 살 것도 챙기고 있다. 뭐가 적당한지 모르지만 말이다. 다음 주 일요일에 짐을 가지러 오기로 했다. 그 때까지 열심히 짐을 만들어야 한다

친구에게 저녁을 초대받았다. 친구가 준비한 것은 김밥이었다. 현미쌀로 한 김밥으로 손이 많이 가는 데, 먹는 것은 금방이다. 와인도 한잔 곁들였다. 친구에게 네팔아이 말을 했다. 친구는 내가 네팔아이에게 하는 것을 안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 키워서 결혼시킨 친구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나와 네팔아이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봐 주고 있다. 네팔아이가 기특한 것은 나에게 야단을 맞아도 계속 연락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고 끊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네팔아이와 나는 이렇게 만날 인연이었고 한때 도움을 줄 입장이겠거니 한다. 그리고 멀지 않은 장래에 나와 상관없이 자신의 둥지를 틀고 잘 살아가길 바란다. 그 날이 오길 바라면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친구네 부엌에는 내가 짠 수세미가 대롱대롱 걸려있었다.

근데, 왜 그 아이는 젊은 데 대머리가 되어가는지, 속상하다. 아직 제대로 된 여자 친구도 못 사귀었는 데… 좋은 방도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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