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6 동경에서 지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동경은 어제와 오늘 춥다.
어제는 맑았지만 바람이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다.
오늘도 어제 못지않게 춥지만, 그나마 바람이 없어서 덜 춥게 느껴진다.
나는 대학 수업이 24일까지 있었다. 24일은 년내 마지막 수업이기도 했다. 년내 마지막 수업만이라도 바쁜데 그 날은 외부강사를 불러서 특별강연을 했고, 다른 수업에서는 영화를 상영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에게는 내가 읽어서 감동한 단편소설을 카피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 학생들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 전 날은 출판사와 만나서 내년에 출판할 책 원고를 넘겨줬다. 책을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내는데 한 권당 640페지가 넘을 예정이다. 아직 마지막 한 장을 쓰지 않은 상태이다.
바쁠 때를 아는지 평소에는 별로 걸려오지도 않는 전화도 많이 걸려온다. 24일에는 밤에 돌아와 너무나 피곤해서 전화를 껐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전화를 켜보니 전화를 끈 사이에도 몇 통이나 전화가 걸려왔고 문자도 와있다. 같은 단지에 사는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선생하고 25일 아침을 카페에서 먹기로 했는데, 잊고 있었다. 도서관에도 돌려줄 책을 연장도 못하고 카피도 못 떴다. 반환기간을 넘기면 페널티가 있어 귀찮아진다. 아침 약속을 점심으로 미루고 책을 카피 뜨고 학교에 반환하고 또 책을 빌려온다. 오는 길에 점심 같이 먹을 선생 청바지도 샀다.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빵집에 갔다. 이 빵집은 천연효모를 쓰는 딱딱한 독일식 빵을 만드는 집이다. 빵이 무겁고 딱딱하고 값도 비싸다. 나는 빵을 좋아해서 그 전에도 그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별로 좋은 인상이 없어서 다시 가지 않았다.
이 번에 가보니 빵을 재료로한 간단한 메뉴가 있었다. 값도 비싸지 않고 먹을 만하다. 이웃 선생은 빵과 야채 올리브오일 구이를 시키고 나는 버섯과 빵 치즈 그라탱을 시켰다. 내가 먹은 그라탕에 들어있는 빵은 질겨서 마치 고기 같았다. 다음에도 가고 싶은 가게로 인상이 바뀌었다. 근데, 누구하고 갈지 같이 갈 사람이 없다.
한 시간 반 정도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고 일어났다. 그 선생도 전 날까지 수업이 있어서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졸리운 고양이 같이 조용히 있었다. 그 선생은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유품을 거의 정리했다. 학자셨던 아버지 책도 다 기증을 하고 고향집이 비었다. 집은 비워 두면 상한다. 집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아직 모르겠단다. 다른 형제들도 동경 근처에 살고 있다. 아무도 고향에 돌아갈 예정은 없다. 그러나 고향집은 단지 공간이나 부동산이 아닌 자신들 가족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팔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생각도 아직은 못한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집을 가지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 집에 그대로 살수 있으면 좋겠건만 생활여건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사람은 이동하지만 집은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사람들은 집을 사고파는 걸 자주 하지 않는다. 땅과 집에 집착이 아주 강한 문화이고 시스템도 사람을 관리하기 쉽게 오랫동안 한 군데 묶어 놓으려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공동체에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자신들이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한다. 물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고마바에 갔다. 이 번에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엄마가 현관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예쁘게 해놓은걸 못 찍었다. 크리스마스 디너는 가족만 조촐히 먹었다. 우선 샴펜으로 시작을 한 저녁 메뉴는 각자가 담당을 정해 집에서 만든 음식이었다. 가라아게(엄마), 파에리아(아버지), 치즈 폰듀(유짱), 져먼 포테토(아버지), 피자(엄마), 팝콘(엄마), 디저트는 케이크(도시코)와 안미쓰였다. 나는 담당한 음식이 없어서 딸기를 씻어서 케이크에 토핑 하기 좋게 자른다든지 설거지를 맡았다.
메인 이벤트는 진(仁)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아버지가 가라오케를 하는 것이었다. 진의 동화 낭독도 있었다. 가라오케는 주로 아버지와 딸이 불렀다. 다른 식구들은 TV에서 하는 피겨스케이팅을 본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가라오케를 하다 지쳐서 먼저 잠이 들어 안마의자에서 자면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곤다. 아버지에게도 신나는 크리스마스였나 보다.
엄마가 옛날 짰다는 아란무늬의 피셔맨 쉐터를 가져왔다, 지금은 안 입으니 가져다 입으라고 주신다, 나는 무겁다고 사양해서 도시코(딸)이 가져간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가볍고 따뜻하게하는 편리한 소재가 없었다. 모직으로 된 무겁고 두꺼운 코트를 입고 두터운 쉐터를 입었다. 역시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든것은 좋다. 조금 손질을 하면 깨끗하게 다시 입을수 있다. 춥다고 빨리 가라고 도시코와 나한테 귤과 사과를 싸서 주신다. 진과 도시코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에 식구들이 다 모이는 건 1월 1일 오후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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