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9 동경에서 지내는 연말
요새 동경 날씨가 춥다.
연내에 매듭지어야 할 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정말 오랜만에 긴 코트를 입고 나갔다. 동경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일이 많아서 긴 코트를 입으면 계단을 오르내릴 때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긴 코트나 스커트를 입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추울 때는 코트가 길어야 좋다. 어제는 전차에도 사람이 적었다. 아무래도 연말이 가까워서 인가 보다.
어제 출판사와 만나서 책 출판에 관해 구체적인 일정과 작업 스케줄을 확인했다. 지금까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출판하는 책이나 논문에 관해 원고를 넘겨주기만 했지 그다음 작업은 편집자나 출판사에 맡겼다. 그러나 이번 책 두 권은 워낙 분량이 많고 애착이 가는 것이라 출판사와 편집자, 저자가 협력관계로 공동작업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그렇치 않아도 출판이 힘든 상황인데 일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라도 신뢰와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서로 스케줄이 있어서 무리를 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시간 조정이 가능한 작업 스케줄을 확인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오래된 친구한테 들르기로 했다. 그 친구가 몸이 안좋아서 10월에 입원을 했었단다. 지금도 몸이 안 좋아 밖에 나오질 못한다니, 집에 가서 만나야 한다.
신주쿠에서 전화를 했더니 남편이 시골에 갔다고 집으로 오라고 한다. 친구가 사는 신유리가오카에 내려서 일 년 만에 친구네 집에 갔다. 이 친구와 알고 지내기 시작한 건 20년이 넘는다. 학부 때 같은 지도교수 밑에 있었던 게 인연이 시작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요 근래 몇 년은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입장과 지향하는 게 다른 것이 확실해져 온다. 그러나 지금까지 같이 지내온 시간이 길고 주위 관계도 있어서 가끔은 서로 보고 지낸다.
사실 이 친구와 내가 사는 데는 3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다. 외국에 사는 친구나 지방에 있는 친구도 일 년에 두 번 이상 보지만, 가까운 데 살아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본다. 이 번에도 친구가 몸이 안 좋다는데 안 볼 수도 없다. 친구 상태는 자궁에 혹이 생겨서 출혈이 심해서 빈혈이 난다. 빈혈이 가라앉으면 수술할 거란다. 수술을 하면 치료가 된다고도 하고, 친구 어머니가 같은 병력을 가지고 있단다. 생각한 것보다 건강하다. 오랜만에 만나서 집에서 (친구 남편이 만들어 놓고 간) 저녁을 먹고 따뜻한 집에서 하룻밤 잤다.
오늘은 친구가 운전해서 우리 집 가까운 피자가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안 피자를 런치로 먹고, 집까지 바래다줬다. 친구네 산에서 따온 귤과 감, 교토에 주문한다는 일 년에 한 번 밖에 만들지 않는다는 프루츠 케이크도 나누어준다.
그 친구와 내가 여전히 거리를 느끼고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 게 확실해지면 갈등할 필요가 없어진다. 친구나 가족도 어떤 사람과 같이 사느냐에 따라 사는 사람과 닮아간다.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나 자라도 다른데 어쩔 수가 없다.
사실 이 친구와 만나는 것 때문에 긴장해서 전 날 잠을 설쳤다. 알고 보면 이 친구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고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다. 그러나 젊었을 때 만나서 많은 걸 같이 겪고 같이 해 왔다. 주로 내가 친구네 가족 일까지 나서서 조정해 왔다. 나이를 먹어가고 떨어져 살다 보니 본래는 서로 달랐던 사람이라는 게 뚜렷해져 간다는 걸 알았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멀어지는 게 아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짐으로 거리를 느껴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헌 책방에 가서 추리소설을 6권 사 왔다. 그러고 나서 산책을 나갔다.
후지산을 찍었는 데 시간이 좀 더 일찍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쉽다.
후지산은 일본 사람들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그 마음에 새겨진 것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들 말한다. 일본 사람들이 해외 이주해서도 여기저기에 OO후지라는 이름을 붙이는 걸 봐도 후지산에 대한 그 사람들이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이 후지산에 대해 집착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에 관한 걸 집착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서 그 나라 산에다 oo백두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제주도 사람한테는 한라산이 특별하다. 그러나 자신들 식당 이름을 한라산이라고는 해도 다른 (나라) 산에다 oo한라산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일본 사람들은 남의 것에도 자신들 이름을 붙여 자신들 것인 것처럼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남의 것에 자신들 이름을 붙여 자신들 거라고는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정확히 구분한다. 가족 사이에도. 그런데 남의 나라 것에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조금 가까우면 일본 사람들에 비해 네 것 내 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남의 나라 것은 남의 (나라) 것이라고 구분하는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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