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1 꿀과 잼과 나이프
오늘도 동경은 맑고 포근한 겨울 날씨이다..
이번 주로 학기가 끝난다. 이번 주는 거의 종강을 준비한다. 사람마다 종강을 어떻게 하느냐 다르겠지만, 나는 마지막에 전체를 뒤돌아본다. 뭘 지향했으며, 뭘 했는지, 성과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건 모든 것이 진행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멈추지 말자는 게 요지이다. 특별한 것도 없지만, 내 스타일이다. 학부 학생이었을 때, 일반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생물학’ 강의가 있었다. 마지막 강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내용은 잊었지만, 내가 이 강의를 들으려고 일 년 치 학비를 냈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강의라는 걸 통해서 학생과 강의를 하는 사람이 만난다. 강의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소통’을 하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별다른 ‘배움’이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간다 해도 하나의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종강 때 어떻게 좋은 매듭을 지울까 생각한다. 그리고 종강을 하면, 강의하는 무대에서 내려와 연구나 다른 것들을 한다. 내게는 서로가 보완적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서 내려와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은 ‘아침밥’이다. 어쩌면 내가 일을 하는 것은 ‘아침밥’을 먹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먹느냐고 생각하겠지. 미안하게도, 그 ‘아침밥’이라는 게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기본 메뉴는 빵에 커피,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추가한다. 오늘 아침은 버섯이 든 오믈렛이 추가되었다. 빵은 두꺼운 토스트를 구워서 버터를 바른다. 거기에 보통은 꿀을 바른다. 꿀이 아닌, 잼 종류를 바를 때도 있다. 꿀을 좋아한다. 현재는 꿀 종류가 별로 없는 편이다. 가장 많이 먹는 꿀은 켄베라에서 사 오는 것으로 그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다. 향도 짙고 텍스쳐도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좋아하는 꿀은 일본, 쓰쿠바에서 사 온 감귤꽃 꿀이다. 이 꿀에서는 감귤꽃 향이 난다. 향기롭다. 시간이 지나면, 향기가 날아가고 색도 짙어진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사 온 거다. 아직 먹어보지 않아서 맛을 모르겠다. 그 옆에 있는 건, 멜버른에 갔을 때, 로컬에서 생산한 것으로 좀 비쌌다. 이것도 아직 안 먹어서 맛을 모르겠다. 괜찮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산거다. 작은 병에 든 하얀 꿀은 전에는 우윳빛처럼 하얗게 예뻤다. 이건 친구 아버지 제자가 만드는 특별한 것이다. 물론 시중 판매 같은 거 없다. 이건 꿀 같지 않은 꿀이었다. 아주 고급스러운 꿀로써 특별한 위치에 있다. 맨 앞에 있는 작은 건, 싸기에 그냥 산거다. 참고로 내가 사는 꿀은 현지에서 생산자에게 직접 사는 거라, 보통 슈퍼에서 살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 것은 코르도바 슈퍼에서 샀다. 제일 작은 건 백화점에서 샀다. 꿀 종류가 많이 줄어서 약간 ‘결핍감’을 느낀다. 양은 아직 많지만, 종류도 다양해야 한다.
다음은 잼이다. 잼도 지금은 종류가 별로 없다. 오른쪽에 있는 세 병은 호주에 사는 친구가 산에서 따온 베리나, 다른 과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색이 비슷해도 내용물이 다르다. 칠레에 갔을 때도 산딸기와 딸기를 섞어서 잼을 만들어 줘서 한병 가져왔다. 지금 먹는 중인 오렌지 마말레드는 호주에 갔을 때 마트에서 사 오는 거다. 그리고 누워있는 블루베리, 이것도 상비해 두는 것 중 하나다. 색감을 좋아한다. 그리고 유자차, 이건 빵에 발라먹고 요구르트에도 넣고 다용도로 쓰인다. 유자향기를 좋아한다. 유자껍질을 갈아버리는 건, 싫다. 씹히는 맛이 없고 향기도 덜하다. 내가 좋아하는 잼은 친구가 만들어준 홈메이드라는 ‘정성과 따뜻함’에 유자차나 오렌지 마말래드와 같이 산뜻한 색감과 ‘향기’, 그리고 블루베리처럼 예쁜 ‘색감’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행복함을 맛본다.
부엌에 있는 도구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것 중 하나가 나이프다. 그것도 이렇게 작은 것이 아주 유용하다. 내가 가장 많이 써서 거의 싱크대에서 뒹구는 게 맨 앞에 있는 작은 거다. 손에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잡히는 맛이 좋은 데 사이즈도 적당해서 좋다. 그전에 살림도구를 한꺼번에 다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그냥 저렴하면서 쓸 만한 것을 사서 쓴다. 부엌에 쓰는 도구는 우선 기능이다. 안 드는 칼이 가장 위험한 것처럼 기능이 부실하면 다치기 때문에 위험하다. 기능이 좋으면서 색감이 예쁘면 쓸 때에 기분이 좋다. 작은 나이프는 빵에 바를 버터를 자를 때부터 과일을 깎을 때, 작은 걸 썰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나이프다. 내가 살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인지 몰라도 가장 유용하다.
그렇다, 나는 ‘아줌마’여도 나이와 체격만 갖췄을 뿐, 요리나 살림도 어정쩡한 무늬만 ‘아줌마’다. 나는 어정쩡한 걸 싫어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감히 ‘아줌마’라고 명함도 못 내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