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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찬바람 부는 날

2015/02/02 찬바람 부는 날

 

오늘 동경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아주 추운 날씨였다. 날씨가 맑고 최고기온이 10도로 바람이 없으면 따뜻한 날씨였는 데, 바람이 불어서 아주 추웠다.

지난 일주일은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다가 오늘부터 도서관에서 책도 빌릴 수 있고, 채점도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간단히 하고 아침도 간단히 먹고 채점할 레포트를 짊어지고, 손에 들어 길을 나섰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다.

밖에 나갈 때까지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몰랐다. 일기예보를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집에서 눈으로 바깥을 봤지만 바람이 그렇게 강하게 부는 줄은 몰랐다. 밖으로 나올 때에 쓰레기도 들고 나와서 버렸다. 집안이 따뜻해서 창문까지 열어놓고 나가서, 처음에는 바깥이 그렇게 추운 줄 몰랐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서 추위를 느꼈지만, 괜찮겠지 싶어서 그냥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따뜻해지니까…

그런데, 공원을 지나는 데, 볕이 바르지 않은 곳은 아직도 눈이 남아있다. 거기에 바람이 쌩쌩 부니 춥다. 면바지에 위에는 점퍼를 입었는 데도 바람이 추워서 하체의 감각이 없어진다. 위에는 얇고 큰 퍼시미나 스카프를 둘러서 더워진다. 체온이 상체와 하체로 분단되어 온실과 감각마비로 따로 논다. 내 몸에 일어나는 분단현상이 당황스럽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어 난감하다. 머리에는 후드를 뒤집어써서 뒤에서 오는 자전거에 치일 뻔했다. 사람이 바깥에 나다녀야지, 며칠 방구석에 쳐박혀 있었다고 이렇게까지 아둔해질 수가 있다니… 자신의 적응력이 무섭다

지나가는 길에 농가집 마당에 있는 무인판매대를 봤더니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다. 이제는 팔 야채가 없는 건지, 당분간 장사를 안하시는 건지 모르지만 좀 섭섭하다

도서관에 가까운 곳에 있는 무인판매대에는 배추와 무우, 당근과 시금치에 토란이 있었다. 오늘은 좀 많이 있는 편이다. 마음 같아서는 통통한 배추도 사고 싶었지만, 운반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당근과 토란만 샀다. 도서관에 가서 당근과 토란을 책상에 놓고, 채점할 것도 책상에 다 늘어 놓는다. 그리고, 새 책이 나온 곳에 가서 왠만한 것은 다 보고 열 권 정도 챙겨서 책상으로 돌아왔다. 오늘 도서관은 지난 주말로 시험이 끝나서 학생들이 별로 없다. 이 정도는 돼야 집중해서 책을 읽고 일을 하기에 좋다. 학생들이 북적이면 집중하기가 어렵다. 분위기가 좀 놀만 할 정도가 된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읽을 때는 그럴듯하게 괜찮은 것 같았는 데, 읽고 나니 시간이 아깝다. 바쁠 때는 이런 것에도 짜증이 난다. 이런 책은 내면 안되지. 이렇게 경기가 나쁜 데, 이런 쓸 데 없는 책으로 젊은 사람들을 현혹시킬거 아냐… 

책들을 읽고 책꽂이에 돌려놓았다. 빌릴 책 세 권을 빼놓고… 오늘은 짐이 많아서 책을 빌릴 수도 없어요. 겨우 마음잡고 채점을 시작한다. 채점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평소 수업 때 마다 써서 내는 감상문 점수를 일일이 다 써서 합산하는 단순작업이라, 귀찮고 시간이 걸린다. 틀리면 안되니까, 긴장되고… 오늘은 시작이니까, 한과목을 하고 돌아왔다. 다른 과목 것도 무겁게 가져갔는 데,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도 바람이 추웠다. 도서관에서 따뜻하게 지냈으니까 망정이지, 내가 북어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 아직 해가 서산에 넘어가기 전, 정확히 말하자면 해가 후지산에 걸려 있어서 잘 못봤다. 날씨가 맑고 추우니까 멀리 있는 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저녁해도 눈부셔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맑았다. 반대편에는 달이 저만큼 하얗게 떠있었다. 아직 보름달이 되기에 조금 모자랐다. 해가 지지 않아서 달은 생기가 없이 보였다. 한쪽에서는 해가 눈부신 데, 달이 뚜렷하게 보이는 게 재미있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다섯시 가까이 되었다. 베란다 창문을 닫으면서 달을 봤더니, 생기가 나기 시작한다. 저녁해가 진 모양으로 여운이 있는 색감이 드러나는 중에 달도 생기를 더해간다

해와 달에도 주역인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네, 모든 것이 시와 때가 있다는 건가…

사진은 눈왔던 날이다. 오늘이 훠얼씬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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