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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다

2015/02/04 사고현장을 지나다

 

오늘 동경은 맑고 조금 포근한 날씨였다. 며칠 기온은 낮지 않아도 바람이 불거나 추운 날씨였다. 오늘은 좀 포근하게 느껴졌고 공원에 눈도 많이 녹았다.

요새는 매일 채점을 한다. 도서관에 가서 책상에 펼쳐 놓고 일을 한다. 하루에 200명의 리포트를 읽었더니 현기증이 났다. 어떤 시험공부보다 집중해서 리포트를 읽고 점수를 매긴다. 이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리포트에는 나름 스토리가 있으니까. 평상점을 기록해서 합산을 하는 것이 아주 귀찮고 힘들다. 어시스턴트를 써서 어시스턴트에게 시키는 일인 데, 올해는 학생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내가 한다. 어시스턴트를 쓰는 것도 나름 신경을 쓰는 일이라, 내가 하기로 했는데 단순작업이라서 진도도 쉽사리 나가지 않는다. 매일 비슷한 일을 하니까, 짜증이 나서 작업효율도 낮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라서 매일 집중해서 한다. 그래서 집에는 먹을 것이 점점 떨어져가지만 시장에 갈 시간도 체력도 없이 일을 한다. 시장을 가는 쪽과 도서관에 가는 쪽은 반대다. 도서관에 갈 때 자료를 짊어지고 손에도 들고 가서 일을 하다가 온다. 일을 다녀오면 피곤해서 시장을 갈 엄두가 안난다. 이렇게 되면 먹는 걸 덜 먹고 만다. 강의가 있을 때는 일을 나갔다가 들어올 때 장을 본다. 강의를 쉬어서 먹을 걸 사러 나가지 않았더니 식량이 점점 줄어간다.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 김치가 떨어졌다. 김치가 떨어지니 급격히 반찬이 확 줄어든 느낌이다. 김치의 무서운 존재감을 알았다. 이제까지 내가 김치의 파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에 가거나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야채, 당근이나 토란을 사오고 계란도 살 수 있다. 단지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계란을 사고 싶었지만 짐이 많아서 못 샀다. 오늘은 가는 길에 사서 학교까지 들고 갔다가 가져왔다

아침에 천천히 준비해서 나갔다.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나가게 되었는지, 필연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침에 밥을 해서 든든히 먹고 나가려고 했더니 시간이 좀 늦어진 것이다. 쌀을 불려야 하니까…

밥을 해서 김에 싸서 양념장을 찍어서 없는 반찬에 맛있게 먹고 나갔다. 아침을 먹으면 간식이나 점심도 없이 저녁이 되어야 돌아오니까… 밥을 해서 먹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짐을 챙겨서 나가서 공원을 거치는 데, 게이트볼을 아주 넓은 그라운드에서 하고 있다. 평소에 하는 곳이 그늘져서 추워서 그런 모양이다

공원을 지나서 강가가 보이는 길이었다. 강가길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 아저씨가 자전거를 세워있다. 아이를 자전거 핸들 앞에 짐을 실는 곳에 구겨 담은 꼴이다. 거기에다 아기얼굴이 그늘진 곳에 세웠다. 아이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지만, 보기가 좋지 않다. 아기가 짐이 아닌데, 왜 이렇게 구겨 담았는지, 하필이면 자전거를 그늘진 곳에 세웠는지. 아저씨는 한손으로 휴대폰으로 문자를 하는 모양이다. 보기에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아기가 춥지 않겠냐고 물었다. 춥지 않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바로 눈 앞에 교통사고가 난 모양이다. 우선, 젊은 남자가 누워있고 그 남자가 탔던 것 같은 자전거가 내동댕이 쳐져 있다. 남자 지갑도 튀어나와 있고 운동화도 한쪽씩 다른 방향에 벗겨져 있었다. 내가 본 것은 남자 발쪽이었는 데, 발랄하게 컬러풀한 양말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는 남자와 부딪친 경차가 서있고 차에 탔던 사람도 아기를 안고 나와있었고 지나가던 사람도 두 명 서있다. 내가 본 자전거 아저씨도 교통사고 현장에 서있는 셈이었던 것이다. 아주 조용히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워있는 남자가 축 늘어져서,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죽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거기에 경찰이 자전거를 타고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경찰이 쓰러진 남자를 일으켜서 얼굴이 보였다. 얼굴에 핏기가 없는 데,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조용히 숨도 안쉬는 것처럼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패닉상태다. 움직임도 슬로우모션이다. 나도 순식간에 파악한 상황이다. 나는 거기에서 지켜볼 생각이 전혀 없다. 무서우니까. 사람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자전거에 짐처럼 구겨진 아이가 잠을 쌔근쌔근 자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이라서 상황파악은 안되겠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랠까봐…

그리고, 계란집에 들렀더니 오랜만에 할머니가 있어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이 할머니는 나를 잡고 수다떨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래서 대충 30분쯤으로 끝내고 학교로 향했다. 도중에 무인판매에서 당근과 토란도 한봉지 사서 가방에 넣었다. 학교에 갔더니 12시가 되었다. 오늘은 좀 늦었다

준비체조로 책을 좀 읽고 기록과 통계작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의 부정행위도 눈에 띤다. 화가 나서 속이 뒤집힌다. 그 걸 참다 보면 쉽게 피곤해진다. 그래도 일을 했다. 한 과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아까 본 교통사고 현장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길은 가파른 언덕길에 시야가 좁아서 자전거를 타서 내려오다가 아랫길을 지나가는 자동차에 부딛힌 것 같다. 아랫길은 자동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는다. 아주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고, 주위에는 학생들이 많이 살아서 대학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가 내려오다가 자동차를 봐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는 이미 늦다. 자동차 스피드가 느려도 자전거가 가파른 길을 내려와서 탄성이 붙어있는 상태다. 부딛히면 크게 망가진다. 주로 자전거를 탄 사람과 자전거가... 길이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남자가 체격이 좋았으니까, 자전거 스피드에 탄성이 더 붙었겠지. 어딘가로 외출을 하던 길이던 데… 요전날 내가 후드를 써서 뒤에서 자전거가 오는 걸 몰라서 치일 뻔한 길이기도 하다. 인간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 사람은 별일이 없었을까? 차를 운전했던 사람도 아기를 안고 있던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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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넘어서 도서관을 나왔다.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강가에 도달했다. 아침에 봤던 현장에는 사고가 있었다는 기척도 없었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아 한층 더 무섭다. 내가 그 길을 걸어 올라갈 때 자전거를 탄 모자가 지나간다. 엄마가 뒤에 아들을 태워서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지나가는 자동차는 없었지만, 이 모자에게 그런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자전거를 탔다면 나도 그런 사고가 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사고현장을 지나간 것일까. 많은 일을 보면서 점점 무덤덤해져 가는 것 같아도 그렇게 무덤덤해지는 것도 아니다. 산다는 것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다

사진은 실을 소핑해서 말리는 것이다. 거대한 번데기 같아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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