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2 채점과 과목구상
오늘 동경은 오랜만에 아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였다. 어제도 날씨가 좋았지만, 오늘은 정말로 날씨가 따뜻하고 좋은 날씨였다. 매화꽃이 활짝 필 것 같이 따뜻한 날씨였다.
지난 주 토요일에 친구네가 와서 어제 아침에 서울로 돌아갔다. 친구네가 와있는 동안 날씨가 추웠다. 나도 채점이 끝나지 않아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채점을 하고 성적을 매기는 것이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다. 점수가 모자란 학생에게는 메일을 해서 리포트를 써내라고 하고, 학생들과 신경전이 벌어지는 고민과 갈등의 시기이기도 하다. 채점입력이 끝나고 하루 시간을 내서 같이 외출을 했다. 저녁은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초대를 해줬고… 친구네가 돌아간 다음에 어제 하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이불과 베게를 널어서 말렸다. 어제는 휴일인 걸 모르고 집에서 일을 하면서 지냈던 것이다. 친구가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자고 해서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한 휴일이기도 했다. 집안을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했는지 친구가 와서 보고 집에서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고…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한 데도 불구하고 늦잠을 잤다. 일어나질 못했다. 나도 모르게 피곤했던 것일까. 오늘도 담요를 두 장 빨아 널고서 도서관을 향했다. 요새 도서관이 5시에 문을 닫아서 빨리가서 일을 해야 한다. 사실은 올해 새로운 과목내용을 뭘 중심으로 짜야 할지 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주말까지 시라바스를 써서 입력해야 한다. 작년부터 계속 고민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내용을 어떻게 짜는 것이 좋을지. 나는 작품구상을 하거나, 뭔가 쓸 때는 집중해서 몰입하는 형이라서,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몰입도가 흐트러지는 게 싫고, 만나는 사람에게 신경을 못쓴다. 온 신경이 내가 생각하는 있는 것에 가 있다.
오늘 아침 도서관에 갈 때, 문득 과목내용을 어떻게 짜면 좋을지 힌트가 떠올랐다. 너무도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도서관까지 걸어 가면서 가장 중심적인 것을 마지막에 할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도서관에 도착해서는 바쁘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을 검색해서 찾았다. 서고에 있는 책도 보러 들어가려고 했더니, 서고에는 못 들어가는 기간이란다. 서고에 있는 책을 찾아 달라고 해서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빌릴 것은 빌렸다. 가져간 책은 읽어서 반납하고 일찌감치 도서관을 나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석양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날씨도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과목내용도 시작과 마지막을 정했다. 시라바스를 쓸 가닥을 잡았으니,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과목내용은 마이노리티론이다. 내가 연구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현실이기도 하다. 학생들 마음이 닫혀있다. 어떻게 학생들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서 듣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학부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칠 내용을 어떻게 짜는 게 좋을지 고민스럽다. 더군다나, 근래 세계적인 동향과 더불어 일본의 상황과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한 과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마이노리티에 관한 연구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전에 들은 말로는 마이노리티를 연구하는 사람 자체가 연구계에서 마이노리티가 되고 취직도 못한다고 들었다. 사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분야나, 인생이 꼭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운명적인 것도 있다. 인생이 취직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내가 구상하던 것이 가닥이 잡혀오니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가 반찬을 많이 가져왔던 모양이다. 냉장고에 내가 파악하지 못한 반찬이 있고, 냉동고도 가득 찼다. 야채실에는 내가 사지 않은 야채도 있다. 친구가 사다가 먹었다는 거네.
한편으로 내가 친구에게 주려고 했던 걸 잊은 것도 있다. 친구가 어려운 발걸음을 했는 데, 내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으니, 어쩔 수가 없지만,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친구는 또 볼 테니까, 괜찮을 거라고…
새로운 과목을 구상하는 것은 실상자에서 실을 꺼내 늘어놓고 바라보고 만져보면서, 소핑을 해서 말리고 번데기를 굽는 작업을 하는 것과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어디까지나 작품을 하기 위한 밑작업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