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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

선배의 죽음

2018/02/12 선배의 죽음

 

오늘 동경은 맑게 개인 날씨다. 어제는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최고기온이 14도에 최저기온이 5도였다. 요즘 최저기온이 영하 4도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다가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니 마치 봄이 같이 따뜻했다. 그래서 어제 청소는 많이 유리창 청소까지 했다. 유리창 청소는 달에 한다. 어제는 날씨가 따뜻해서 청소하기에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맑아서 밝고 따뜻한 햇살이 커튼 넘어서 들어온다. 요새 밤에 잠을 자는 시간이 꽤 늦어져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늦다.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것은 월요일, 도서관에 갈 생각에 기분좋게 일어난 것이다. 도서관은 내 놀이터로 월요일에는 새로운 장난감인 새 책이 들어오는 날이다. 인터넷으로 새로 들어온 책 서명을 볼 수가 있지만, 서명만으로 책 내용을 알기는 힘들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무엇보다도 책을 직접 만지고 보고 싶다. 장난감을 보고 만지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달력을 봤더니 오늘이 연휴다. 아뿔싸, 도서관이 휴관인 날이네. 아침부터 부풀었던 기분은 풍선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부풀었던 기분이 빠져나간다. 살짝 김이 빠졌지만 주말이 피곤했던 참이라, 그냥 집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밤에 집중해서 일을 하기로 했다.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 마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는 선배가 지난 1월 말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추모하는 모임이 있었다. 지난 12월 하순에 후배와 신오쿠보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출판사를 하는 아는 분이었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제주도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는 선배와 같이 만나기로 했단다. 나도 집에 가는 길이니까, 가는 길에 들러서 얼굴을 보고 간다고 했다. 선배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항상 사이좋게 같이 다니던 부인은 안녕하시냐고 했더니, 치매 병세가 깊어져서 케어시설에 들어 갔단다. 그동안 부인을 돌보던 선배가 힘에 부쳐서 케어시설에 보냈단다. 그러면서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다"고 한다. 내가 "안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치매기가 있는 부인을 혼자서 돌보기 시작한 것이 몇 년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갈 때도 항상 부인과 같이 다녔다. 둘 다 작고 아담한 체구라서 마치 어린아이 둘이 손잡고 다니는 것처럼 불안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선배가 하는 말이 부인을 시설에 보내니 부담이 없어져서 안심이 되지만 자신이 외로워 힘들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선배를 본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걸렸다. 지금까지 부인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없는 힘도 내면서 살았는데, 부인을 시설에 맡기고 나서 맥이 빠질 것이다. 부인과 같이 먹느라고 식사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혼자서 먹는 식사를 준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식사를 준비할 의욕이 없겠지. 선배가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1월 하순에 엽서가 왔다. 그 선배가 1월 말경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믿기지 않았다. 그다지 가깝고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알고 지냈다. 석사과정에서 조사를 할 때에 마을 친목회에 데려가 주셨다. 정작 개인적으로 말을 하게 된 것은 선배가 췌장암이라고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나서다. 선배가 살아온 말을 들으려고 인터뷰도 했고, 거기서 자극을 받아 작품도 만들었다. 선배는 자신이 살아온 생을 적극적으로 말로 표현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인터뷰는 잘되지 않았다.

 

그 후에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도 생활이 있고 방학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지내느라고 자주 볼 수가 없었다. 용건이 없으면 볼 일이 없는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예상외로 오래 사시는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 , 갑자기, 돌연히 저 세상으로 떠났다. 부인을 시설에 맡기고 외로움이 큰 타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치매에 걸린 부인을 돌보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던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제주도와 관련된 문헌을 모우고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을 오랫동안 해왔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종교적'인 수준으로 열심히 했다. 그야말로 돈도 없는데 자기돈을 써가면서 했던 걸로 안다. 그 선배만이 아니라, 그렇게 제주도를 알고, 알리는 일을 해오던 분들이 계셨다. 내가 아는 분들이 거진 돌아가셨다. 그 선배는 1세와 2세의 중간이지만 1세 같은 선배였다. 생각해보니 내 연구를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신 분들이 선배같은 분들이었다. 지금까지 잘 몰랐지만, 그런 선배들이 도와줘서 내가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배가 자신이 하는 일을 내가 적극적으로 돕고 맡아주길 원했지만 나는 피했다. 내 몫이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린다. 선배가 남긴 일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돕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오늘 사진은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노란꽃이다. 선배 이미지와 겹치는 꽃이다. 봄이 온다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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