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4 신오쿠보 산책
오늘 동경은 오전에 흐렸다가 오후는 맑아졌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해서 비가 올 줄 알았더니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같은 단지에 사는 일본 아줌마가 문자를 보냈다. 오늘 놀러 온다고 집에 있느냐는 것이다. 집에 있다고 점심을 먹은 후에 집으로 오라는 답장을 했다. 지난번에 두 번이나 시간이 맞지 않아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보통 거절할 때 바쁘다거나,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나도 연달아 두 번 거절해서 아줌마가 연락하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거절한 것은 정말로 시간이 맞지 않았었다. 아줌마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단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진다고 차를 마시고 조금 일찍 자리를 떴다. 날씨가 좋으면 같이 쇼핑을 가는 일도 있다.
어제는 홋카이도대학에 취직이 결정된 후배, 면접때에 맞춰서 기도 해줬던 후배와 신오쿠보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신주쿠교엔을 산책했다. 원래는 우리 집에서 다른 친구 한 명과 같이 식사할 예정이었는 데, 다른 친구와 시간조정이 어려웠다. 그래서 밖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신오쿠보 주변을 안내 해주기로 했다. 후배는 치바출신으로 대학에 들어와서는 이 주변에 사 오래 살았다.
신주쿠역 개찰구에서 만나서 구약쇼 도리를 걸어 가부키초를 거쳐서 쇼쿠안 도리에 갔다. 한국광장이라는 한국식품 마트에 잠깐 들러서 구경을 하고 길을 건너서 문화센터 아리랑에 들렀다. 다행히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슬쩍 돌아보고 자료를 좀 얻어서 나왔다. 문화센터 아리랑에 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쓰기로 하자. 계단으로 한 층 아래로 내려오면 고려박물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밖에 간판을 사진찍기 위해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봤더니 손님이 와서 한복을 입어보는 중이다. 그냥 밖에서 간판을 살짝 찍었다. 문화센터 아리랑에는 몇 번이나 간 적이 있지만, 고려박물관에는 아직 들어간 적이 없다.
신오쿠보의 한국인 커뮤니티의 중심은 쇼쿠안 도리였다는 설명을 했다. 그 전부터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고… 쇼쿠안이라는 것은 직업안정소의 약자로 주변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였던 곳이라는 의미다. 즉, 거주지역으로서는 분위기가 별로인, 역 근처에는 일용직 노동자가 머무는 숙소도 있었다. 전에는 그 주변은 걷지 말라고 했단다. 시내 중심에 있으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개발이 안된,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가게를 빌릴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그런 흔적과 체취가 남아있어서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쇼쿠안 도리보다 신오쿠보 도리 쪽으로 상업중심이 옮겨진 느낌이다. 맛보기 정도로 간략하게 쇼쿠안 도리에서 신오쿠보 도리까지 가서 주변 분위기를 봤다. 내가 알고 있던 신오쿠보와 한국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며 가며 본 것을 후배에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헤이트 스피치로 인한 영향 등도 좀 알려줬다. 신오쿠보는 한국 사람들과 한국계 가게가 많아서 한국인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외국 사람들도 많다. 다양한 언어와 피부색을 지닌 다양한 인종을 신오쿠보 주변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점심은 순대집이라는 식당에서 닭볶음탕을 먹었다. 나는 순대집 단골이다. 외식을 그다지 하지 않는 내가 가장 자주 가는 식당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거기서 만나고 식사를 했다. 외국에서 친구가 와도 거기로 데려간다. 다른 후배와 만날 때도 거기서 만나서 닭볶음탕을 먹는다. 그러나, 순대집에서 보면 나는 그다지 반가운 손님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 매상에 도움이 안 되는 그렇다고 자주 가지도 않는 손님인 것이다. 가끔 가지만 길게 오래 다니는 것뿐이다. 순대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아서다. 이번에도 닭볶음탕을 예약해서 둘이서 먹었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사장님께 반찬을 예쁘게 담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나에게 반가운 것은 반찬들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반찬들이 반갑다. 이번에 사장님께서 순대도 서비스로 주셨다. 닭볶음탕을 시키면 양이 많아서 다른 걸 못 먹는다. 닭볶음탕을 먼저 먹고 나중에 밥을 한 그릇 달라고 해서 닭볶음탕 국물에 볶아서 먹는다. 그러면 배가 아주 불러온다. 너무 배가 불러서 의식이 몽롱할 정도로 먹는다. 닭볶음탕은 대와 소로 두 종류가 있다. 대와 소로 단순히 사이즈가 다른 것이 아니라, 대와 소는 전혀 별개의 요리다. 대는 닭을 뼈채로 요리한 것으로 깊고 복잡한 맛이 난다. 소는 닭고기 순살로 만든 것으로 맛이 전혀 다르다. 내가 먹는 것은 뼈채로 요리한 대다.
다음은 세이부 신주쿠 선 역 가까이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디저트로 소프트크림을 먹으면서 수다를 떤다. 다른 후배가 세이 부선을 타고 가기 때문에 코스가 이렇게 정해진 면도 있다. 낮에 시간이 되면 신주쿠 교엔에 가서 공원을 산책해서 소화를 시킨다. 어제도 날씨가 좋고 시간도 아직 있어서 신주쿠 교엔에 갔다. 공원에는 일찍 피는 벚꽃이 핀 것과 진 것이 있었다. 수선화와 매화도 피어 있었다. 아무래도 도심은 내가 사는 교외보다 날씨가 훨씬 따뜻하다. 공원에는 외국인(서양사람들)이 많이 있는 데, 어제는 아시아계 관광객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관광객들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 날씨가 온화해서 오후였지만 산책하기에도 좋은 날씨였다. 목련도 꽃이 만개하려고 아주 많이 올라와 있었다. 목련이 매화꽃처럼 무리로 떼 지어 한꺼번에 와르르 필 것같이 무리로 올라와 있어서 목련꽃답지 않다는 말을 했다. 목련꽃은 한송이 한송이가 좀 더 고고하게 잘난척하면서 피어주길 바라는 것이 있다. 내가 사는 주변에는 아직 목련꽃이 필 생각도 안 하는 데, 도심이 훨씬 따뜻하다는 걸 실감했다. 공원은 네시 반에 문을 완전히 닫기에 산책은 바쁘게 한 시간밖에 못했다. 신주쿠에서 같은 전철을 타고 돌아오다가 도중에 헤어졌다.
후배는 신오쿠보와 신주쿠 교엔을 같이 산책한 걸 아주 기뻐해 줬다. 다행이다. 오래 알고 지낸 후배가 잘되어서 헤어지는 마당이라,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해서 작은 선물로 내가 시간을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