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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

불구경

2015/03/28 불구경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아침에 빨래를 해서 널고 창문을 열었더니 바깥이 확실히 따뜻하다. 겨울이 끝난 걸 알려주는 날씨로 포근함을 지나친 강한 햇살의 날카로움이 전해진다. 봄이 왔구나.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집에서 지내다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요전 날 저녁에 본 꽃망울진 벚꽃이 만개했을 게 분명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벚꽃나무는 아직 꽃이 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산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운동부족이기도 하다. 오늘은 저녁이 되어도 날씨가 포근함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녁에 산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벚꽃을 보고 찍으려면 해가 밝을 때 가야 한다. 5시가 좀 넘어서 산책을 나갔다. 벚꽃은 따뜻한 저녁 햇살을 머금고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는 데, 한 그루만 피어 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산책을 계속한다. 큰 연못이 있는 공원에 가서 목련과 희미한 반달도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해가 밝아서 다른 꽃도 보려고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거기에도 목련꽃이 있다. 여기 목련꽃은 지금 막 피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살구꽃과 매화꽃은 피었다가 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벚꽃이 핀 공원을 거치면서 반달과 벚꽃을 같이 찍었다. 희미했던 반달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6시반이 가까웠다. 해가 길어져서 그런지 아직 밖은 석양의 여운이 남아서 밝았다

내가 산책을 마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베란다 앞에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와서 섰다. 아니, 근처에 무슨 일이 있나? 베란다에 나가서 봤더니 옆에 다른 소방차가 두 대 와서 불을 진화를 하고 있다. 불이 난 것으로 보이는 집은 베란다에서 보면 바로 앞 길 건너 왼쪽 모퉁이에 있는 집이다. 워낙 차나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뭔지 알고 싶어서 나갔다. 불이 진화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큰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은 데, 그래도 뭔가 탄 냄새가 주위에 퍼져 있었다. 소방차는 주위에 더 많이 와서 골목 골목에 불을 반짝이며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세어보니 소방차만 열 대였다

시간이 걸린 것은 진화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주로 작업을 한 소방차는 세 대였다. 각 소방차에 따라 복장이 다른지, 복장도 세 타입이었다. 그런데, 눈 앞에서 진화작업을 하고 주거상황을 확인하며 무선을 하는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등에 산소봄베를 짊어지고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는 데, 긴급상황이 아니어서 그런지 긴박감이 없고 장난감 병정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옆에서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뭔일인지 몰라서 눈이 휘둥그래 뜨고 보고 있었다. 불이 난 집에는 노부부와 자녀 한 명이 사는 모양이다. 불이 날 때는 노부부만 있었나 보다. 주위에 사는 사람들도 모르는 일을 소방관이 무전하는 내용을 들어서 알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모퉁이에 노부부를 앉혀서 조사를 하고 있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 노부부는 추위에 떨었을 것이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경찰관이 늘었다. 경찰관이 노부부에게 사정을 듣거나 주위를 돌아보기도 한다. 거기에 이상한 사람이 와서 휴대폰으로 불난 집을 찍고 플래시로 집을 비추고 소란을 떤다. 이상한 사람이 분명하다. 내가 거기에 서서 구경을 한 것은 30분 정도였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베란다에서 보니 구급차가 왔다. 노부부 중 한 명을 구급차에 태웠지만, 구급차는 환자를 태운채로 떠나질 않는다. 급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 시간이 경과되어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들이 떠났다. 그리고 작업을 하던 차들도 작업을 마무리하고 천천히 한 대씩 떠났다. 그러나 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소방차가 한 대는 남아서 지키고 있다

그나저나 저 집에는 사람이 있는지, 사람이 있으면 잘 수나 있을지 궁금하다. 소방차는 외출했던 사람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을 수도 있어서 지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집에 도둑이라도 들까 봐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내가 괜히 수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냥 베란다에서 보고 있다

그래도 불이 난 집 사람들은 놀랐겠지만, 큰 불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사람이 다치거나 했으면 소방관들이 장난감 병정으로 보이진 않았으리라

사진은 저녁햇살을 머금은 벚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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