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1 대견하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리고 눅눅한 날씨였다. 오후 늦어서야 햇빛이 난다. 서쪽에서 석양이 비춘다. 날씨는 최저기온이 10도 가까워져 확실히 봄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러나 아직 겨울과 봄이 밀고 당기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네팔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페북에 인터뷰 간다고 해서 잘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낮에 전화가 왔다. 무슨 인터뷰냐고 물었더니 미국비자를 받기 위한 인터뷰였단다. 가을에 가는 줄 알았더니 2주 후에 간단다. 비자는 서류가 모자라서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전화해야지. 스폰서가 되어주는 회사에 연락해서 필요한 서류를 미국 대사관과 자기에게 메일로 보내달라고 해.
그러면서 올해는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도 알려준다.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목소리에 힘이 없다.
미국에 가는 것도 큰 여행사에서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공모에서 팀이 우승해서 부상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일주일 패키지여행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 가고 싶어 했는 데, 네팔에서 왔다고 비자를 못 받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관광도 정당한 명목이 있으니까, 비자를 줄거야. 그렇게 미국에 가보고 싶었는 데, 자신이 노력해서 길을 열었잖아. 잘했어. 대견하다.
이 아이는 나름 학교에서 성적이 좋으면 상금을 주는 시험을 봐서 상금도 받고 스피치 대회에도 응모해서 나가서 입상도 한다. 내가 보기에 축척이 되는 공부는 아니어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에는 응모해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다. 노력을 하며 성과도 내고 있는 데,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을 안 것 같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오래하던 알바를 끝이 안 좋게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는 단지 알바 중 하나라고 여겼고 내막을 들어도 알바를 그만둔 것이 상처가 된 줄 몰랐다. 심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알바를 그만두고 우울해하는 걸 보고도 성장통이겠거니 했던 것이다. 작년 가을에 고향에 다녀온 뒤부터 아이가 많이 변했다. 이전처럼 어쨌든 노력하면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힘이 많이 빠져있다. 고향을 다녀와서 그렇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회의적이고, 노력해서 어떤 성과가 얻어질 것이라고 믿기가 힘든 모양이다.
알바하던 곳 점장과 사이가 아주 좋아서 같이 놀러 다니고 돈도 빌리고 빌려주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점장이 갑자기 확 돌아서 이지메를 했다. 마지막에는 경찰을 부른다고 난리를 쳤단다. 아무래도 사이가 좋다고 믿었던 관계에서 배신당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흔히 있는 전형적인 이지메인데, 네팔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된 모양이다. 일본 사람들끼리도 그런 일로 우울증이 되고 폐인이 되어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상처받은 걸 잘 몰랐다. 인간불신이 되어서 우울했고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는 전혀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앞으로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단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에 넌 열심히 했고, 성과도 냈잖아. 처음에 왔던 걸 뒤돌아 보라고, 처음에는 빚을 지고 왔는 데, 그동안 빚을 갚고 학교에 다니고 생활을 한 걸 단순하게 계산해도 많은 돈을 벌었어. 혼자서 다 해냈잖아. 대단한거지. 내가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건, 내 욕심이 있어서 그런 거야. 기본적으로 너는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괜찮은 청년인 거야.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해갈 거야. 자신을 믿고 노력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어.
잘했어, 대견하다. 아무래도 칭찬을 들어야 힘이 날 것 같은 모양이다. 아낌없이 칭찬을 해준다. 너 잘하고 있는 거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 봐, 너만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그리고 혼자서 우울해하지 말고, 전화해. 내가 잔소리도 하고 야단도 칠 테니까. 너 처음에 왔을 때부터 나랑 싸우면서 지금까지 해왔잖아. 그 걸 잊고 있었어요. 전화가 끊겼다. 배터리가 없어진 모양이다. 나중에 문자가 왔다. 고맙다고 배터리가 끊겨서 전화가 끊겼단다.
문자로 답한다. 나는 항상 너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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