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9 코미디 같은 현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쭉 흐린 날씨였다.. 안개가 자욱한 것처럼 차분한 날씨이기도 했다. 황금연휴도 끝나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은 아직 연휴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다. 나도 오랜만에 일을 했더니 조금 피곤했다. 요새 날씨가 해가 나면 햇살이 너무 독하고 그늘에는 추운 적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그래서 몸도 쉽게 피곤해진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새로 리뉴얼한 마트에 들렀더니 마침 과일이 좀 싸서 많이 사 왔다. 뭐니 뭐니 해도 휴일에는 잘 먹고 쉬는 것이 가장 휴일답게 보내는 것이다.
요즘 일본을 보면 이상함을 지나쳐서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4월 초에 서울에 다녀온 후로 느끼는 것은 매스컴에서 중국과 일본이 가까워져서 한국이 고립되었다고 보도한다. 실질적으로 한국이 고립되었는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고립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도 중국을 그렇게 비난하더니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가 확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중국사람들은 다 반일이었는 데, 중국정부는 반일이지만, 중국인은 일본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요는 중국관광객을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비자를 완화했고 엔화가 싸서 관광객이 늘었다. 일본으로 오는 관광객이 는 것을 관광객이 한국보다 일본을 택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일본이 한국을 그렇게까지 의식하고 있다. 조금전까지 관광분야에서는 한국을 따라잡자가 목표였는 데, 지금은 한국을 깔보는 식으로 바뀌었다.
작년까지 중국에 대한 태도와 올해 봄이 되어서 어떻게 변했는지, 일본인 친구가 중국어 수업에서 앙케트 조사를 했다. 작년 가을학기에 조사했을 때는 90% 이상이 “중국이 싫다”였다. 올봄은 “중국이 싫다”가 10%, “중국이 좋다”가 10%, 나머지는 “싫지도 좋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 숫자는 내 수업에서 조사한 숫자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 중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 90% 이상이 “중국이 싫다”라니, 학생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중국이 그렇게 싫은 데, 중국어를 공부한다니… 실제로 학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싫다”는 극단적인 표현에 상반되는 일을 하면서도 모순이 없다. 참으로 편리하다. 그러니,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싫다”가 쉽게 변한다. 얼마나 매스컴의 영향을 받는지 여실히 알려준다.
중국과는 사이좋게 지내기로 방향을 틀었지만, 한국은 용서할 수 없는지 한국 따돌리기와 이지메를 매스컴에서 계속하고 있다. '혐한' 기사다.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 일본의 삼각관계에서 일본이 소외당했다고 했었다. 실질적으로는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 대해 계속 공격을 하고 생난리를 친 것이었다. 매스컴에서 중국과 한국에 대한 험담을 그렇게도 해댔으니… 이제는 중국과 일본이 사이가 좋고 한국만 왕따가 되었단다.
삼각관계는 또 하나, 미국과 일본, 한국의 관계에서 미국과 일본은 밀월인 데, 한국은 일본에 대해 불손한 탓으로 미국에게도 미움을 받았다는 논조이다. 한국은 이리저리로 치이고 일본의 손바닥에 있다는 논조는 여전하다.
4월 말에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했을 때, 일본에서는 자화자찬 일색으로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였다. 내 주위에 있는 평소 아베 총리를 싫어하던 사람까지도 기뻐하는 걸 보고 혼란스러웠다. 아베 총리는 역시 대단하다고… 신문에서는 몇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는지 깨알같이 보도하면서, 정작 연설문은 실리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말했기에 그렇게나 환영을 받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일본에서 거국적으로 흥분과 감격을 안겨준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어떤 것이 이렇게 사람들을 흥분과 감격으로 뭉쳐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 대단한 수단과 공포스러운 통제력이다. 한편 일본 사람들이 그런 걸 대단히 좋아하고 원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일본학 권위인 존다워 교수가 한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실렸다. 그러나 일본 MSN에는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 연설을 비판했다는 기사가 났다. 나는 한국 신문을 인터넷으로 읽지만,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에는 그런 기사가 없었다. 다음날 산케이신문 기자가 박 대통령의 문제점에 대해 열거한 기사가 났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한국 야당이 할 일을 일본 신문기자가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한국 야당이 했다면 박수를 쳐야 할 일이지만, 이웃나라 기자가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날카로운 비판을 자신의 나라 정치상황에 들이대었으면 훨씬 더 훌륭하게 빛났을 텐데, 아쉽다.
뒷날 한국 신문에 일본의 역사가를 지지하는 성명이라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의 성명문이 실렸다. 신문에 성명문이 전문 실렸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일본어와 영어로 작성되었다는 데, 원문을 읽고 싶었다. 일본에서 성명문에 관한 기사는 하룬가 이틀 늦게 실렸다. 그런데 기사가 아주 웃겼다. 그냥 발표하면 일본 정부에 실례가 된다고 발표하기 전에 일본 정부에 먼저 보냈단다. 신문기사의 골자는 한국에서 성명문을 왜곡하고 있다고, 그런데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도 전문을 실지 않았다. 전문을 보여야 왜곡인지 아닌지 독자도 판단이 설 것이 아닌가?
또 하나는 아베 총리의 연설이나,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닌 데, 한국 신문에서는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라고 왜곡하고 있단다. 그래서 아사히신문에 실린 성명문을 전문 프린트해서 읽었다. 아사히신문이 훌륭한 것은 성명문뿐 아니라 서명한 학자 이름도 다 실었다. 내 친구와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명문에는 직접적으로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중국을 연구하는 일본 친구에게도 물어봤다. 한국과 일본 신문에서 이러저러한 데, 헷갈린다고… “아베 비판이죠” 한국 신문이 왜곡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일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렇게 성명문을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지, 일본에서는 이걸 무시하려고 한다.
영국 왕실에 공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일본 사람들은 아주 기뻐했다. 공주의 이름이 정해지자, 오이타시에 있는 동물원에 태어난 원숭이에게 같은 이름, 샬롯을 붙이기로 했다고… 일본 사람들 참 소박하게 영국 왕실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공주가 태어났으니, 축하하는 의미에서 원숭이에게도 같은 이름을 붙이기로 했으리라. 그런데, 일본 내에서 영국 왕실에 대해 ‘실례’라고 반발이 거세졌다. 영국 왕실에서는 원숭이의 이름은 동물원의 자유라고 했다는 데… 사람들이 웃긴다.
사진은 모란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