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8 광풍의 시대가 끝날까?
오늘 동경은 어중간하게 맑다가 흐린 날씨였다. 최고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건물 안은 더웠다. 요새는 도서관에 다니는 길을 골목길로 변경하는 중이다. 대로변은 아무래도 햇볕을 받아서 열을 반사하는 면도 넓어서 훨씬 덥다. 골목길은 길이 좁아서 열을 반사하는 면도 좁으므로 더위와 불쾌감이 적다.
월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이라,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밥을 해서 먹고 도서관으로 길을 나섰다. 지난 주에 수확이 없어서 기대는 없어도 습관처럼 새책이 진열되는 월요일에는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책을 열 권쯤 골라서 찬찬히 봤지만, 빌린 책은 두권이었다. 도서관이 더워서 집중이 안되고, 바깥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아 일찌감치 집으로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계란을 사고, 계란집에서 꽃도 좀 얻어왔다.
오늘 인상적이었던 뉴스는 오사카 시장이면서, 일본유신당의 핵심인 하시모토 씨가 오사카를 동경처럼 “도”로 변경하기 위한 주민투표에서 근소한 차로 반대가 많아서 졌다. 그래서 올해 연말까지 임기인 시장직을 끝으로 ‘정치가”를 은퇴한단다. 그는 정치가가 되기 전, 변호사이면서 인기탤런트였다. 그가 정치가였던 기간은 2008년 1월부터니까 만 8년 간이 되겠다. 그가 정치가로 있었던 8년간은 일본의 보수라 칭하는 극우, 국수주의 정치가를 중심으로 ‘광풍의 소용돌이’가 몰아친 기간이기도 하다. 특히 2012년 여름 이후, 한국과 중국과의 영토문제를 분기점으로 광풍은 극으로 치달았다. 참고로, 영토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친 듯이 독도에 상륙한 것으로 야기되었다. 불난 곳에 기름을 부어준 격이었다. 하시모토 씨는 광풍의 중심세력이며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태풍의 눈’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아직 젊은 그는 정치가로 변신한 것도 극적이었지만, 정치가를 은퇴한 것도 극적인 타이밍이라, 인기탤런트로도 전도가 유망하다.
일본의 우경화는 21세기에 들어서, 고이즈미 총리 시대가 막을 열면서 급격히 진행되었다. 아베 총리가 정치가로서 본보기로 하는 인물이 고이즈미 총리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고이즈미 총리 시대에 북한에 납치되었던 일본인 문제를 진행하면서였다. 그후에, 아베 씨는 총리가 되었지만, 일년만에 건강상 이유로 하차했다. 두번째로 총리가 될 때도 거의 기대가 없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두 번째가 총리가 되어서 발휘하는 정치적 수완은 여러 가지 의미로 주변국에 위협적이며 공포스러울 정도로 무섭다.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이 된 한국의 박 대통령과는 공통점도 있지만, 정치적수완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박 대통령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완패’다. 하시모토씨는 아베 총리와 뜻을 같이하는 인물로 소속된 당은 다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동지인 것이다. 광풍의 중심세력이면서 핵심은 아베 총리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씨는 정치적인 수완이나 역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하시모토 씨가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은 ‘위안부에 관한 발언’이 있다. 2013년 5월 위안부는 전쟁에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발언의 취지는 아베 총리와 다름이 없지만, 아베 총리와 달리 그는 비판을 받았다. 같은 달 말에는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성풍속업소를 잘 활용하라는 발언이 있어서, 크게 비난을 받았다. 그는 미군에 의한 성범죄를 예방하는 의미로 했다고 했는 데, 마침 미군에 의한 성범죄도 일어나 문제가 커졌었다. 시기적으로는 2012년 한국, 중국과 영토문제가 격화되었을 때, 일본유신회가 결성되어 그의 인기에 힘입어 50명이 넘는 당선자를 낸 후였다. 그의 발언은 당의 세력을 등에 입은 것이기도 했지만, 위안부 발언 이후에 그의 인기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대표로 있었던 당도 조금 세력이 약화된 감이 있지만, 현재도 민주당에 이어 제2의 야당이다. 참고로, 영토문제라는 것도 한국과 중국과는 달리, 일본이 일방적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히트업을 해간 경위가 있지만, 일본내에서는 정반대로 알려져 있다.
2012년 한국, 중국과 영토문제가 일어나, 당시 동경도 지사였던 이시하라 씨가 임기가 남은 동경도 지사를 사임하고 신당을 창립, 하시모토 씨가 대표로 있던 일본유신회에 합류한다. 돌풍의 제3의 인물로 이시하라 씨가 있었다. 이시하라 씨는 1999년부터 동경도지사가 되어 4선이나 계속된 장기집권이었다. 국정에는 고이즈미 총리라는 우익의 핵심의 장기집권과 동경도에 이시하라 씨라는 극우의 핵심에 의한 장기집권으로 일본 전체가 우경화로 기울어갔다. 거기에 오사카 시장으로 하시모토 씨가 더해지면서 우경화는 더욱 확실해져서, 광풍 레벨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시하라 씨가 공동대표로 있던 일본유신회에서 나오면서 2014년 말에 정계에서 은퇴했다. 가장 장기적으로 보수의 중심이랄까, 국수주의적이었던 정치가의 은퇴인 것이다.
거기에 젊은 광풍의 핵심, 태풍의 눈이었던 하시모토 씨가 정계를 은퇴함으로 광풍 세력의 약화로 인해, 아베 총리가 내년에 예정하고 있는 헌법 개정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와 소속은 다르지만, 정신적인 동지의 정계은퇴로 인해 바람이 부는 방향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광풍의 시대가 끝날까? 참고로, 아베 총리는 장기집권을 예상하고 있다.
내가 읽는 오마이뉴스나, 한겨레에 기사가 없었다. 나름 중요한 이슈인 데...
사진은 산뜻하게 다카오산에서 찍은 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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