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7 무더위의 기습공격
오늘 동경은 화끈하게 더운 날씨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최고기온이 36도란다. 지난 주말까지 기온이 30도 이하로 습기가 있어도 비교적 선선한 날씨로 지내기가 좋았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주변이 공원에 둘러 싸여 있어 아침저녁에는 바람이 차가워서 창문을 꼭꼭 닫아야 했다. 혹시 올여름은 지내기가 수월 할까, 약간 기대를 했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습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습도계를 봤더니 95도 거의 물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흐린 날씨에 기온이 30도 조금 움직이기 만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힌다. 기온이 갑자기 30도를 넘은 금요일에 심상하지 않은 낌새가 보였다. 금요일 아침에는 줄줄 흐르는 땀을 주체할 길이 없어, 마음 같아서는 세탁기에 들어가서 탈수로 땀을 좀 탈수하고 일을 가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변했다. 더위의 쓰나미가 기습공격처럼 덥쳤다. 갑자기 세상이 변했다. 열대나라로… 이렇게 되면 옷을 바꾸고, 침구도, 환경도 바꿔야 한다. 옷은 그냥 몸을 가릴 정도로 입고, 열었던 커튼도 닫아서 햇빛을 차단해야 한다. 땀을 닦을 수건도 항상 휴대하고 있어야 한다. 어제는 첫날이라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어영부영 그냥 지냈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는 데, 일어나니 관절이 늘어나서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몸이 문어처럼 뼈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 같다. 공기가 뜨겁다. 이 무서운 더위에 나갔다가 뼈도 못 추릴 것 같아서 도서관에 가는 걸 포기했다. 브런치를 넉넉히 먹고, 더위를 먹으니 정신이 해롱거렸다. 다행히도 바람이 불었는 데, 바람이 선선한 게 아니라, 따뜻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이 더위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주체를 못 하겠다. 전날 대비 최고 기온이 10도나 올라가면 어쩌냐고, 결국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해롱거리다가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산책이라도 해서 몸도 챙기고 신선한 바깥공기를 마셔야지. 그 시간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데, 사람이 많이 보인다. 나처럼 낮에는 방콕했다가 개를 운동시키려고, 자신이 운동을 하려고 밖에 나온 사람들이다. 다행히도 숲이 많아서 저녁이 되니 선선해졌다.
카메라를 가지고 나갔다. 한창 피고 지어가는 접시꽃을 찍고, 산책길에 보이는 버섯들을 찍었다. 버섯들은 같은 종류들이 작은 동네를 이루어 끼리끼리 모여서 산다. 무슨 버섯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있다. 버섯을 찍다 보니 모기들이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내 한쪽 종아리에 한꺼번에 굶주린 모기가 열 마리 이상 달려들었다. 아, 끔찍하다. 공포영화도 아니고…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도망쳤다. 모기도 더위로 인해 폭발적인 증가를 했나 보다. 어젯밤에는 새로 한시까지 일을 했다. 밤에 일을 시작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밤이 늦어도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가 잠을 잔다. 왠지 잠이 잘 안 온다. 잠을 자야 하는 데… 모기가 들어왔나 보다, 나도 모르게 자면서 모기와 혈투를 벌였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몸에 핏자국이 있고 시트에도 여기저기 핏자국이 있다. 혈투의 자국이 끔찍하다. 얼른 비누를 묻혀서 혈투의 흔적을 빨고 사건의 흔적도 지웠다. 완전범죄다. 청소를 하고 베란다에 물을 끼얹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서 뜨거워진 베란다에 물을 끼얹어서 식히면 더위가 좀 가신다. 천천히 테러 같은 무더위의 기습공격에서 살아날 길을 모색해 간다. 다음 주는 일주일내내 최고기온이 35도 정도라는 데, 나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아 있을까? 전혀 자신이 없다. 아, 눈부신 햇살이 공포스럽다. 그래도 칠월칠석날에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 만난다는 데, 나는 무더위에 해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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