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4 폭염, 폭염, 폭염
오늘도 동경 날씨는 무섭게 더웠다. 최고기온이 36도였다.
아침부터 햇빛이 쨍쨍 나면서 살인적으로 뜨거워져 갔다. 뜨거움이 어느 정도냐면, 면담요를 빨아서 널었더니 한 시간도 안되어 바싹 말랐다. 보통 옷도 30분에 빠싹하게 마른다. 오후 늦게 비가 내려서 좀 식었다. 워낙 뜨거워져 있었던 터라, 식은 게 아니라,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은 증기가 올라오는 날씨가 되었다. 그래도 어두워지면서 지면은 식어간다. 내일 최고기온을 보니 32도다. 내일은 지내기가 아주 수월할 거라는 거다. 예전이라면, 32도가 최고기온이었을 거다.
요새 집에서 지낼 때는 아침까지 커튼과 창문을 열었다가 햇살이 강해지기 시작하면 빛을 차단하는 커튼을 친다. 햇빛을 차단해서 집안을 어둡게 하는 게 좀 낮다. 오늘은 집안을 어둡게 해서 희미한 빛안에서 학생들 감상문을 읽었다. 이렇게 날씨가 뜨거우면 집에서 일은 고사하고 쾌적하게 지내기가 힘들다. 나도 한물간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서 땀을 질질 흘리면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닌다. 날씨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좁은 집이어도 약간 시원한 곳이 있다. 가끔은 목욕탕 타일바닥이 차가워서 그 위에 널브러져 뭔가 읽기도 한다. 집에서는 최소한 필요한 일만 한다. 최소한의 일도 제대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어제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새로 온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악마처럼 타오르는 태양과 햇살을 보고 나는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읽는 것 보다, 쓰러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제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다행히도 그 시간에 아저씨들은 없고 아줌마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다. 서로가 아침인사를 하면서 기분도 상쾌하게 산책을 했다. 그다음엔 집에서 오징어가 되어 축 늘어져 있는 것이다. 밤이 되어서 책을 들고나갔다. 도서관 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해서 책을 반납하고 신문과 잡지를 읽고 왔다. 가는 동안에 옷이 땀에 젖어서 찰싹 들러붙어 있는지라, 부끄러워서 항상 가는 카운터에도 못 갔다. 신문과 잡지를 읽으며 더위를 식혔다.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패션잡지가 있어서 한 권 샀다. 패션잡지를 그림책처럼 본다. 그리고 상상을 한다. 뭘 만들지?
도서관에 가기 전에 택배가 도착했다. 주문했던 실이 도착한 것이다. 택배아저씨가 더워서 계속 땀을 흘린다. 카드로 결재 했는데, 땀을 흘려가면서 쩔쩔맨다. 자신이 신입이라 카드 결제를 처음 받는단다. 나는 천천히 하시라고, 현관에서 기다린다. 주문한 실은 산뜻한 색이지만 모헤어 실이라, 이런 날씨에 만지기도 싫다. 그 전에는 여름에 겨울실을 내놓지 않았는 데, 요새는 계절 구분이 없어지는지 겨울실도 나온다. 좋은 실이 싸게 나왔을 때는 사둔다. 오랜만에 실을 주문했다. 실상자가 쌓여가서 실을 둘 장소가 없어서 더 이상 사면 안된다. 아주 신중하게 선택을 해서 사야 한다. 그러나, 사고 싶은 실이 나왔을 때는 얼른 사야지, 꿈을 볼 수 있으니까, 상상을 하고 꿈을 보려고 사는 것이다. 실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까, 상상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꿈을 꾸는 시간이 행복하다. 실이 자신이 갈 길을 찾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 다른 생명과 그 생명이 가진 자기주장이 생겨난다. 어떤 형태로 태어나고 싶은지 나도 모른다. 실과 대화를 하면서 구상을 한다, 어떤 형체로 모습을 갖추고 싶은 건지… 실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지, 나는 그 걸 돕는다. 나의 손을 통해서 이루어질 형체는 어떤 생명력을 가지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나도 모른다.
내 논문을 읽고 인상에 남는다는 평을 듣는다. 논문 또한 내가 썼지만, 내 손을 거쳐 태어난 또 다른 생명체라고 본다. 논문이라는 생명체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독자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실은 잘 모른다. 어쩌면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논문과 독자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그 들의 관계라고 보기 때문에 여백을 남긴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 나는 아마추어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내일까지 연휴다. 저녁에 우편물을 보내려고 우체국 본국에 다녀왔다. 필요한 것을 갖춰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아이스케키도 두 상자, 자두 한상자, 바나나, 옥수수를 사 왔다. 내가 사 먹는 닭도 일찌감치 저렴한 가격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 딱 한 마리밖에 없는지라, 평소 때면 그냥 산다. 생각해 보니 냉장고에 먹을 게 많다. 큰 닭을 한마리 사서 삶을 생각을 하니 집안이 더워질 거라, 끔찍했다. 그 대신 옥수수를 사다가 삶아서 먹었다. 요새 옥수수가 맛있어서 옥수수를 잘 사다 먹는다. 옥수수가 신선할 때 사다가 금방 삶아서 먹으면 맛있다. 일본에서 잘 먹는 옥수수는 물기가 많아 달고 연한 것이다. 한국처럼 찰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먹어도 부담이 없다. 오늘도 세 개를 먹었다.
마트에서 어떤 아저씨가 쓰러져 있었다. 멀쩡한 아저씨로 보이는 데, 주변에 사람들이 서서 이런저런 걸 물어본다. 말과 행동이 연결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조금 지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지나친다. 폭염 때문이야. 폭염 때문에 세상이 구워졌어, 인간들이 찜쪄진 것 같다. 폭염, 폭염,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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