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0 떨리는 마음
오늘, 밤 12시가 지났으니, 어제가 되는구나. 어제 동경 날씨는 쾌청하게 맑고 더운 날씨였다. 나는 아침부터 집에서 일을 하면서, 커튼을 꼭꼭 닫았다. 햇살이, 정말로 햇, 살, 이었다. 화살에 비유될 정도이다. 밖에 나가면 햇살이 피부를 뚷고 뼈에 침투될 것 같은 날카로운 햇살이었다.
아마도 햇살은 아무런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구름 한 점없이 맑게 개인 하늘, 그래서 눈부신 햇살이 천연덕스럽게,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바람이 솔솔 불었고, 습도가 낮았다는 것, 습도계를 보니 55%였다. 이 정도면, 기온이 좀 높아도 그늘에 있으면 지내기가 수월하다. 그래도 죄지은 사람처럼 눈부시게 맑고 청명한 햇살이 두려웠다. 나는 미용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화장도,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기 보다, 사회적으로 화장을 했다는 ‘알리바이’ (저는 그렇게 ‘특별’ 하지 않아요, 남들처럼 ‘보통’이랍니다) 를 위장하는 것처럼 화장을 한다. 햇볕에 타는 것도, 외출 시에 화장을 하면서 썬 프로텍트가 들어간 크림을 바르는 걸로 끝이다. 그런 내가, 요즘은 집에서도,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싶을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고 피부가 햇볕에 타는 것 같다.
나는 자연광을 좋아해서 집이 자연광으로 밝은 걸 아주 좋아한다.
집을 고를 때 감안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에서는 집들이 자연광으로 밝은 곳이 드물다. 대체로 집을 지을 때, 자연광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다. 집들이 어두워서 낮에도, 거의 항상 전기를 켜야 한다. 집 자체가 어두운 면도 있지만, 집들 간격, 사이가 좁아서 밖에서 집안이 들여다 보일까 봐, 창문도 못 열고, 거의 항상 커튼을 치고 산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재미있는 점은 열지도 않는, 창문은 점점 더 넓어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개방적’인 것을 원해서 창문을 크게 내지만, 현실은 항상 커튼을 꼭꼭 내려야 하는 ‘폐쇄적’인 것이다. 좀 더 말하면 '나는 보여주기 싫지만, 남은 보고 싶다'는' 속성이 있다.
나는 자연광으로 밝게 양쪽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집에 살기 때문에 밤이 아니면, 낮에 전기를 킬 일이 없다. 그리고 커튼도, 창문도 항상 열어놓고 사는 편이다. 추워질 때도, 좀 추워도 창문과 커튼을 여는 쪽을 선택할 정도이다. 그런 내가, 여름에 커텐을 쳐서 햇볕과 더위를 피하고 있다. 뭔가 좀 이상하다. 한 10년 이상을 일본에서 여름을 지내지 않아서, 햇볕이 이렇게 강해진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알고 있던, 동경의 햇살이 아니다. 내 인생에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도시가, 햇살이 낯설다. 햇살이 표독스럽게 독하다.
어제는 요새 쌀을 안 먹어서 기운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집중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기운이 없으면 집중이 잘 안된다. 오랜만에 쌀을 먹었다. 냉장고에 녹두가 있어서 물에 불렸다. 며칠 전에 하얀 콩은 물에 불지 않아 불리는 것만 이틀 이상 걸렸는데, 녹두는 금방 불어난다. 싹이 날 정도로 빨리 불어난다. 쌀을 씻어서 죽을 쑤었다. 이것도 처음 하는 것이라, 녹두는 덜 익었는데, 쌀은 풀이되었다. 맛이 안 날 것 같아, 다시마, 멸치, 새우가루를 도중에 집어넣었다. 이 걸로 ‘동물성 단백질’도 섭취를 하는 셈이 될라나… 옛날에 소금으로 간을 한 맛있는 녹두죽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 녹두죽은 어떻게 끓이는 걸까.
요새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콩을 불려서 삶아 먹는 등, 저장식품으로 연명을 하고 있다. 제 아무리 오이가 싱싱하고, 오쿠라가 부드럽고, 방울토마토가 야무져도 그것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힘이 좀 안 난다. 가끔은 쌀을 먹어야 한다. 쌀을 먹으려고 보니, 반찬이 없어서 죽을 쑤었다는 것이다. 콩을 불려서 삶다 보니 콩을 맛있게 삶는 게 어렵다고 들었지만, 확실히 그렇다. 맛이 없어도 먹지만, 재료가 아깝다. 음식도 만들어야 솜씨가 늘지,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히 늘지는 않는다... 아, 슬프다.
요 며칠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오랜만에 자신이 해온 일 목록을, 남의 일처럼 쳐다본다, 일을 많이 했구나. 조금 있다가, 감정을 싣고 바라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많이 하는 줄 몰랐는데, 많이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도 거의 장기필드웍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 많은 인간들이 관여되어 있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있다. 정말로, 오랜만에 그 걸 보면서, 왠지 가슴이 떨려온다. 많은 일들을 했지만, 그 일들은 의미가 있었을까? 나에게는 어떻든 의미가 있었다.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내가 바라본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을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내가 얻는 것은 많았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었나, 모르겠다. 이렇게 염치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 일을 계획한다. 소심한 겁쟁이라서, 항상 무섭고 두려운 게 많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음 일을 계획한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떨리는 마음으로 일을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