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3 무너진 망고의 성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1도로 비교적 선선한 날씨다. 요전 날 블로그를 써서 올린 날, 어쩌다가 나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식량을 보충했었나 싶다. 왜냐하면 다음날은 날씨의 버라이어티쇼를 라이브 중계하는 것처럼, 변화무쌍해서 외출을 못하는 날씨였기 때문이다. 태풍은 기본으로 깔고 다양한 종류의 비가 내렸고 가끔은 햇빛도 쏘여주면서, 하일라이트는 비가 옆으로 쏟아졌다. 강한 바람으로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일요일이기도 해서 꼼짝없이 집에서 날씨의 버라이어티쇼를 즐겼다. 그러면서 나는 전날에 사 온 식량을 먹고, 먹고 또 먹고를 거듭했다. 우선은 닭부터 먹기 시작해서 망고의 성을 공략하고, 복숭아에 냉장고에는 옥수수와 검은콩이 있었다. 그러기를 이틀간 해도 견고한 망고의 성은 무너질 줄 몰랐다.
다음날은 태풍과 비바람으로 더러워진 베란다를 깨끗이 씻어내고, 유리창을 닦아내었다. 물론 집안도 걸레질을 해서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했다. 아침에 햇살이 주사바늘처럼 피부를 뚷고 들어오는 공포감을 맛봤다. 실은 월요일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도서관에 가고 싶은 날이다. 새로 구입한 책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그런데 강렬한 햇살의 주사바늘을 감지하고서 무서워서 포기했다. 청소를 한 것도 오후가 되어 햇살이 누그러진 다음에 했다. 내가 무슨 뱃짱과 용기가 있다고 햇살과 맞싸우겠나… 포기와 후퇴다. 결국 월요일도 먹고, 먹고 또 먹고를 거듭하면서 지냈다. 오후가 되서 베란다와 유리창, 집안청소를 했다.
도서관에 간 것은 어제였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아침밥을 챙겨 먹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더워지기 전에 길을 나서는 게 좋은지라, 가능한 일찍 가려고 노력한다. 요새 신선한 사진이 별로 없어서 가는 길에 사진 찍을 만한 것을 찾아 사진을 찍으면서 가다 보면 40분 걸리는 거리가 한시간 이상이 된다.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더 더워지고… 도서관에 가는 길에 친구네 집에 반찬과 메모를 전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선한 야채를 사면 또 친구네 우체통에 넣어두기도 한다. 이렇게 주고 받으면서 산다.
월요일 밤에는 친구가 예고도 없이 따뜻한 팥과 호박을 삶은 것과 선물 받은 젤리를 들고 왔다. 용기는 그냥 가져간다면서 비워달란다. 나도 오이를 주고 망고도 가져가라고 했다. 친구는 내가 쌓아논 망고의 성을 보고 기막혀했다. 아마, 친구도 60여년 인생을 살아왔지만, 망고로 성을 쌓는 사람 별로 본 적이 없을 거다. 과일상이라면 몰라도… 그러나, 나는 가끔 ‘망고족’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어제는 도서관에 갔더니 좋은 책이 많았다. 대여섯 시간 집중해서 책을 읽고 돌아올 때는 두 권 만 골라서 빌려왔다. 날씨가 더우니까, 도서관에는 오전에 가서 해가 지면 돌아온다. 보통 점심은 걸러 뛴다. 오전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점심시간을 모른다. 어제는 바나나를 두 개 가지고 가서 3시가 지나, 화장실에서 먹었다. 요새 날씨가 더워도 다행인 것은 해가 짧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햇살도 훨씬 누그러졌다. 그래도 일기예보를 보면 최고기온이 32도에서 33도가 쭉 늘어섰다. 즉 살인적인 더위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어제 도서관에 갈 때, 지난 토요일에 산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었다. 선명한 주홍색 탱크톱에 흰옷을 입었더니 편하고 산뜻하다. 이렇게 편한 걸 몰랐다는 건가? 그런데 요새 산책도, 요가도 안하는 운동부족의 나날을 보냈더니, 완전 아줌마 몸매가 되었다. 아줌마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단점이 있지만, 편한 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에 돌아올 때는 비가 내린 후라서, 가랑비가 살짝 내려서 흰 양말에 흰 샌들이 젖고 말았다. 집에 와서 샌들은 행궈서 널고 양말은 물에 담가뒀다. 그리고 닭을 먹고 난 국물에 쌀을 넣고 당근과 야채도 넣어서 죽을 쒔다. 죽이라기보다 야채수프에 가까웠지만, 마지막에 그릇에 담아서 파를 썰어놓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었다. 맛있다. 배가 고파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맛있는 걸 먹으니 친구 생각이 나서 친구네 집으로 배달을 갔다.
재미있는 것은 내집에는 언제나 친구가 들어올 수 있지만, 친구네 집에는 못 들어간다. 이상하게 생각했는 데, 친구는 병적으로 치우질 못한단다. 그래서 내가 가는 날은 미리 정해놓고 정리정돈에 준비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어쩌면 너네 집에는 언제든지 사람이 가도 되는 거냐고, 내가 챙피한 줄 몰라서 그래. 아니야, 사람이 언제든 가도 될 정도로 정리가 되어 있단다… 하긴 사람이 온다고 특별히 청소를 하거나 정리를 한 적은 없다. 사람이 왔다가면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지만 말이다.
견고했던 망고의 성은 무너졌다. 선택적 '망고족'으로서는 조금 섭섭하다. 지금은 성이 있었다는 자취가 남아 있을 뿐이다. 많은 성들은 나의 망고의 성처럼 역사나 기억에 남을 것도 없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자취를 남기지않는 아름다움… 무너진 망고의 성… '망고족'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