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6 살벌한 서울
동경은 오늘도 쾌청하게 맑고 아주 더웠다.
지난 화요일 밤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 갈 예정은 없었는데, 고베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간다면서 같이 가겠냐고 전화가 온 게 열흘 전이였다. 갑자기 가게 된 것이다. 친구가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 일정이 너무 빠듯하다고 여름방학이니 하루를 연장해서 토요일에 오는 걸로 부탁했다. E티켓을 보내와서 확인했더니, 금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걸로 되어있다. 토요일에 돌아오는 걸로 비행기표를 변경하려고 여행사에 전화했더니, 친구가 예약을 할 때 컴퓨터에 입력을 잘못한 거라, 티켓을 새로 구입해야 한단다. 비행기표도 비싸다. 화요일 밤에 갔다가 금요일 아침 일찍 오는 피곤한 일정인 것이다. 고베 친구 얼굴을 본지도 오래서, 친구를 만날 겸 짧은 일정에 비싼 비행기표를 사서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서울에 가기 전 일이 좀 바빴다.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바빠서 가는 날도 공항에 가기 한 시간 전에야 겨우 일을 매듭지어 메일로 관계자들에게 보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내가 보낸 걸 체크해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돌아오면 금방 수정에 들어가야 한다. 정신없이 싸 둔 짐을 끌고 공항으로 갔다. 싸 둔 짐도 필요한 게 제대로 들어갔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서울이고, 친구랑 만나니까, 부족하면 현지에서 조달하고 친구 걸 빌려서 쓰면 된다. 다행히 하네다 공항이라, 나리타공항보다 가깝다. 아시아나를 탔는데, 한국비행기를 타면 한국정세를 파악하느라 한국 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기내에서 한국영화도 보고 짧은 비행시간이지만 비행기에서도 바쁘다.
요 몇년 나는 서울에 가면 피곤함을 느낀다. 우선,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부터 수많은 고층아파트들을 보면 벌써 약간의 현기증과 피곤함을 느낀다. 사회분위기도 활기가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도 점점 퍽퍽해져 가는 걸 피부로 느껴진다. 솔직히 볼 일이 없으면, 그다지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반갑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 남의 나라를 여행해도 누군가를 만날 기쁨으로 설레는데, 자기가 짧지 않은 기간 살았던 서울인데도 반갑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마음이 좀 복잡하다. 나는 젊은 시절 서울에 살았고, 서울을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 보는 서울이 낯설다, 사회가 너무 많이 변해서 각박하고 사람들도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낯설다. 마침, 내가 갔던 짧은 일정 사이에 여의도에서 묻지 마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이나, 동경에서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요즘은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 서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도 여기저기 옮겨 다녔지만, 외국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알던 사람들이 이사하고 회사를 옮기다 보니, 서로 연락이 끊겼다. 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별로 친하지 않아, 원래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연락처를 찾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학생 때부터 친구가 별로 없었다. 서울에서 살면서 직장생활을 할 때 만나 사귀던 친구들도 결혼을 하고 집들을 옮겨 다니다 보니 연락이 끊겼다.
이번에 다행한 것은 비행기 도착시간이 밤이어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층아파트가 안 보여서 좋았다. 동경은 아주 더웠는데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에 선선한 하늘로, 하늘이 바뀐다. 김포에 도착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기온도 선선하다. 야, 신난다, 며칠 만이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친구는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서 먼저 도착을 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비행기라, 도착해서 짐을 찾으니 밤 11시가 넘었다. 친구와 만나 리무진 버스를 타고 충무로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고 수다를 떨다가 세시쯤에 잤다. 아침에는 평상시처럼 일어났다. 친구가 냉방을 켜고 자서 나는 잠도 못 자고 몸도 뻣뻣하다. 일본에서 피곤해서 갔는데, 피로가 겹친다.
고베에서 간 친구도 오랜만이었지만, 서울에서 만날 사람과 볼 일은 있다. 그 게 아주 너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 것도 매일 오밤중까지 말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면을 제대로 못 취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면 식사도 제대로 못하지만, 먹어도 맛이 없고 소화도 안된다. 무엇보다 식사를 챙겨서 먹을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가기전에 피곤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아주 피곤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삼계탕을 먹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먹었다.
중부시장에 가서 멸치 등 마른반찬 재료를 샀다. 이 게 요번에 서울에서 쇼핑한 것이다. 그리고 마트에서 깻잎과 짜장, 넥타린을 샀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다 들고 왔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니 홀가분하다. 마치 광란의 서울에서, 홍역을 치른 것처럼 피곤함이 남았다.
오늘은 일어나 보니 낮 12시 가까웠다. 여름에 이렇게 늦게까지 자 본 적이 없는데 그만큼 피곤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피곤에 쩔어 탱탱 부었던 몸도 많이 가라앉아서 홀가분하다.
그런데, 좋은 일도 있었다. 오블에서 알게 된 이웃지기들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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