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6 빌어먹을 올림픽
오늘 동경은 모처럼 흐린 날씨에 기온이 30도 이하로 선선하다.
아침에 날씨가 끄물끄물 거리 더니 비가 온다. 기온이 떨어져서 실내온도는 26-28도이다. 온도계가 두 개 있어서 각기 온도가 다르다.
요새는 집에서 채점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수업시간마다 감상문을 쓰게 해서 그 걸로 평가를 한다. 감상문에서 필요한 것은 다음 시간에 피드백을 한다. 물론 학기말에 레포트가 있지만, 30%정도이고 평상시 수업에서 60-70%평가를 한다. 그런데, 이 게 참 귀찮다. 점수는 수업이 끝난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다 매긴다. 지금은 점수를 집계하고 통계를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도 어젯밤으로 많은 일을 끝냈다. 남은 작업은 별로 많지 않다.
어젯저녁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복숭아 먹을래?
그래, 고마워.
내가 가져갈게.
아니야, 내가 가지러 가야지, 5분 후에 갈까.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 새 문자가 와서 집을 나와서 가까이에 왔으니까 밖으로 나와. 밖에 나와서 보니 안 보인다. 저만치 어린이 놀이터에 수상한 아줌마가 앉아있다. 내가 채점을 하면서 집중이 안되어 쭉 컴퓨터를 켜놓고 뭘 보면서 하다 보니 눈이 아롱거린다. 거기에다 저녁 어스름이 겹쳤으니, 세상 사람이 다 수상해 보이는 것이다. 요는 눈이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몇 주전에 친구가 차를 마시러 오라는 초대장을 문자로 받고도 이틀 동안이나 휴대폰을 안 봐서 문자를 씹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얼굴은 마주치지만, 대화를 하는 것은 좀 오랜만이다.
큰 복숭아가 두 개 들어있었다. 맛있게 생겼다. 물건을 넘겨받았지만, 오랜만이라, 아파트 주위를 두 번 돌면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 친구와 둘이서 동의를 한 것은 요새 런던 올림픽 중이라, 세상이 올림픽으로 도배된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서 일을 할 때 인터넷으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한다. 집중이 필요할 때는 클래식으로 아니면 보통 때 잘 듣는 채널이 있다. 이 게 요새 올림픽 중이라서 올림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인터넷으로 라디오를 들을 수가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걸 알 수가 없다. 뇌에 산소공급이 올림픽으로 인하여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아니면 ‘특제 한정판 올림픽 산소’를 공급받아야 하는 건지, 둘 중 하나이다.
페이스북에도 올림픽을 직접 보면서 현장감을 중계하는 낙서들이 매일 들어오고, 일본 친구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한 스피치에 관해 코멘트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심을 공유한다. 영국에서 온 친구는 엄마가 올림픽 기간 중에 해외에 있는 가족을 부르는 데 응모해서 당첨되었단다. 왕복 비행기표를 받았다던가… 그래서 영국에 다녀온단다. 근데, 나는 올림픽에 관심이 별로 없다.
영국이 국내에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힘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올림픽을 통해서 세계적인 시선집중/관광객 모으기를 위해 많은 준비와 화제를 제공했다. 로얄웨딩으로부터, 여왕즉위 60주년, 비틀스 자식들이 멤버를 결성했다던가, 그리고 도시개발이 어쩌고, 과잉 테러방지로 저쩌고, 올림픽을 위한 최신 런던 가이드북도 읽었다. 나도 나름대로 세상이 흐름에 따라 올림픽에 대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관심이 있느냐면, 올림픽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이 어떤 메달을 몇 개 받든, 일본이 어떻든 그저 그렇다. 어릴 때는 그런 걸 통해서 ‘국위선양’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가난하고 내세울 것도 없는 나라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걸로 ‘국위선양’을 할 시대는 이미 훨씬 전에 지났다. 아직도 올림픽에서 받는 메달을 통해서 ‘국위선양’을 한다고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다고 선전을 한다면, 그야말로 ‘국위선양을 위한 마술쇼’ 일 것이다.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에게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는 선수를 통해서 얻는 ‘대리만족’과 함께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만들어낸 ‘마술쇼’인 것이다.
나는 결코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등에 달고 메달을 따는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국위선양’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나, 응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이의가 있다는 게 아니다. ‘국위선양’이 아니더라도 선수들 개인이나, 가족들 그리고 선수를 키워내는 사람들에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성취감이 대단한 것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내가 경계하는 것은, 올림픽에서 선전을 하는 선수들을 통해서, ‘국위선양을 위한 마술쇼’를 내세워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갈 길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또한 엉뚱한 ‘애국심’으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것이다. 더위를 먹어도 더위는 지나간다. 올림픽도 시간이 지나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고, 일상이고, 또한 미래인 것이다.
짜증 나는 더위에 별 볼 일 없이 따분하고 스트레스 넘치는 세상에, 올림픽은 메달을 따거나, 못 따는 선수들을 통해서 얻는 짜릿한 흥분, 감동의 스토리,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따면 마치 내가 메달을 딴 것 같은 대리만족, 메달을 놓친 아쉬움, 좋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도 거대한 ‘국위선양 마술쇼’에 ‘관객’으로서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비록, 나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지만, 올림픽이라는 ‘마술쇼’가 끝나면,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가 진행되는 나라로 갈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세계가 기대하는 한국의 모습은 올림픽에서 받는 메달 숫자에 연연하는 ‘유치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성숙한 나라’로 갈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올림픽이 끝나야 라디오를 듣고 뇌에 산소공급이 된다. 나도 더위를 먹었고 뇌에 산소가 부족하다. 빌어먹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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