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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파친코'와 재일 제주도 사람들

'파친코'에서 보이지 않는 제주도, 해인문화와 일본과의 접점

오늘 동경은 흐리고 최고기온이 16도까지 밖에 오르지 않는 추운 날씨였다. 오전부터 집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 산책을 나갈 생각이었다. 산책 갈 시간이 되니 비도 오고 기온이 13도로 떨어졌다. 이건 겨울 기온이다. 너무 춥겠다 싶어서 산책은 가지 않고 편의점에 스캔을 뜨러 다녀왔다. 그래도 30분 이상 산책을 한 셈이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퇴근길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지. 동경은 흐리고 비가 오는 추운날씨지만 서울은 날씨가 좋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현장중계를 어디선가 하지 않을까 했더니 유튜브에 KTV가 문재인 대통령 마지막 퇴근길 라이브가 떴다. 아, 마침 잘됐다 싶었다. 어제 이재명이 국회의원 출마선언 하는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 걸 봤다. 시장에서 한 연설을 들으면서 이재명이 살아 있구나 싶었다. 어제 이재명이 출마선언을 하는 걸 보고 그동안 막혀서 고생하던 변비가 나온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이재명 출마선언에 가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문재인 대통령 마지막 퇴근길에 배웅하러 간 사람들이 고마운 한편 부러웠다. 

 

취임식이 없었던 대통령, 오늘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배웅을 받은 것이 문재인 대통령다운 퇴임식이었다고 본다.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대통령이 아니었나? 모여든 시민들이 대통령을 가까이 보면서 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 기분을 알겠다. 나는 화면을 잘 봐두려고 집중해서 봤다. 퇴임식을 보면서, 대통령을 배웅하러 나온 시민들을 보면서 여운이 아주 길게 남을 것 같다. 마지막에 차에 타서 떠날 때 눈물이 났다. 차를 타고 가면서 손을 흔들 때, 아, 한시대가 저물었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국민을 위하고 챙기는 대통령, 외국에 살면서 한국이, 한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국이 지혜롭게 잘 풀어나가는 걸 보고 정말로 대단한 나라가 되었구나 했다. 한국 차기 정부를 보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껴진다. 정말로 꿈 같은 시대였는데, 내일부터 악몽이 시작될 것 같다. 악몽에 시달릴 때 보려고 문재인 대통령 5년 화보도 저장해 뒀다. 

 

오늘도 계속해서 제주도의 문화적 배경, 해인문화와 일본과의 접점을 소개한다. 

 

 

 

1 제주도의 문화적 배경

3)  해인 문화(海人文化)와 일본과의 접점

 

“지금까지 일본의 해녀를 거론할 때 반드시 제주도 해녀를 기준으로 해서 비교하는” 일이 많고, (일본) 해녀의 “원점을 제주도에서 찾거나 구하게 되었다”(42). 거기에는 “여자가 바다에 잠수해서 생계의 주요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생계수단”이 “세계적으로 봐도 일본 각지의 해녀와 한국 제주도밖에 없기” 때문이다(43). 羽原又吉「日本古代漁業経済史」에서 제주도를 “적어도 제주도민과 일본 민족 중 일파임에 틀림이 없다” 또는 “일본의 고대 내지 류큐(琉球) 倭人邪馬豪의 풍속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고 서술하고 있다(44). 지금 인용한 내용은 제주도와 일본을 연결하고 있는 해인 문화라는 공통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일본의 제주도에 대한 시선은 동일 문화권 또는 일본 해인 문화의 기원을 찾으려는 걸로 보인다. 본론에서는 해인을 “고문헌에서 볼 수 있는 アマ(아마, 해인)은 특정 漁撈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를 상대로 생활하는 일반 사람들을 포함”하고, “옛날에는 アマ(해인)라는 단어는 漁撈 製, 선박 생활을 하는 것 등 항해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용되었고, 남녀 구별도 없었다”라는 의 정의에서 해인이라는 말을 채용하기로 한다(45).

 

일본의 『延喜式』에서 肥後 豊後国(현 규슈지방)이 헌상한 품목 중에 “탐라(제주도) 전복”이 등장하고, 그 해석으로 “宮本常一는 ‘해인 이야기’에서 ‘韓白水(한국 어부)가 옛날에 일본 열도에 와서 정착하고 있는 것 등을 근거로 제주도 해인이 왕래를 추측했다"(46). ‘탐라 전복은 그 후 명치시대 일본이 제주도 어업 침략의 키워드가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 존재를 예부터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려 한다. 『延喜式』의 기록을 통해 제주도인과 일본과는 “고대의 탐라-제주도 해민과 일본 열도 해민과의 교류의 일단을 볼 수가 있다”(47).

 

제주도는 본래 제주도인과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유입한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이다. 제주도의 유적에 의하면 “漁網錘의 존재는 당시(청동기시대) 어로 기술이 단순한 패류 채집에만 의존하지 않고, 어선과 어망을 이용한 어류의 포획 방식”을 갖고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48). 여기에 더해서 먼저 쓴 것처럼 중국과 제주도, 류큐(오키나와), 서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교역로를 고려하면 일본이 제주도를 동일문화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한편, 제주도(탐라) 개국신화와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先民이라는 州胡人을 “일본 규슈 지방에 살았다는 小人(日本先民)과 동일한 종족”은 아닐까 하고 김태능은 규슈와의 관계와 연관시키고 있다(49). 거기에 제주도 개국신화에서 “모흥혈에서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명이 솟아올랐다. 어느 날 동방에 있는 일본의 어느 왕이 사자를 보내 공주(왕녀) 세 자매와 오곡 종자와…”라고 했다(50). 제주도인의 시조 세 명은 일본인 세 자매와 결혼해서 오곡 종자를 가지고 나라를 열었다고 한다. 여기서 제주 선민과 일본 선민, 개국신화를 소개한 것은 신화의 신빙성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주도와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다. 제주도에서 일본에 대한 시각은 제주 선민과 개국신화를 일본(또는 碧浪國)과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제주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배경에는 일본의 식민지 교육의 영향으로 연구자가 일본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제주도 역사 연구에서 일본, 중국, 한반도의 기록을 사료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있어서 그런 연구상의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국신화에서 일본이라는 외부, 바다 건너 외국과의 관련이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탐라와 일본(규슈?)과(규슈?) 역사적 관계성을 인정하고 동일문화권으로 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제주도와 일본은 공통된 해인과 그 문화로 연결된 지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쓴 것을 토대로 일본의 연구자가 제주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한반도와 다르다는 것과 제주도인이 한반도와 다른 감각으로 일본을 보고 있다는 것은 해인 문화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51).

 

각주

42-3) 『日本』 法政大出版局 1990年 708-9p

44) 羽原又吉 『日本古代漁業経済』改造社 1949年 309p

45) 전게서 ‘머리말에서’ 網野善彦 『日本社再考』에 따르면「海民」이 적절하나 특정의 漁撈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넓게 바다와 관련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 일반을 포함을 채택해서 「海人」을 쓰기로 했다.

46-7)網野善彦 『日本社再考―海民と列島文化』小館 1994年 95p, 전 전게서 37p

48김태능 제주도 약사138p 송석범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전경수는 부정하고 있다.

49-50김태능 전게서 140p

51여기에서 제주도와 일본의 관련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국가 영역,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념적인 견해가 아닌, 지역과 문화적 요소라는 걸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