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2도로 흐리고 서늘한 날씨였다. 나는 몰랐는데 아침까지 비가 왔다고 한다. 내일은 다시 최고기온 28도로 올라갈 예정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 소개할 내용은 B섬사람들이 일본에 와서 장기체류를 하다가 귀국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사회 분위기와 한국사회를 비교해 보기로 한다. 2003년 '겨울연가'가 NHK에서 방영되면서 일본에서도 '한류' 붐이 시작되었다. 2002년 9월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해서 그때부터 일본에서 납치 피해자 문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두 번째 평양 방문은 2004년 5월 하순으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이었고 실제로 납치된 일본인을 몇 명 귀국시켰다. 납치된 일본인의 귀국은 북한에서 일시 방문 성격이었지만 일본에서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 배후에는 아베 신조가 있었다고 한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서 평양선언을 하지만 그 내용도 일본에서 지키지 않았다.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선동 방송을 시작한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 이후가 아닌가 한다. 납치 피해자가 몇 명 귀국하고 난 뒤에는 거의 미친 듯이 날이면 날마다 북한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는 선동을 일본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몇 년에 걸쳐했다. 당시 나는 그런 걸 곁눈으로 보면서 일본 매스컴이 미치지 않았나 했는데, 일본 매스컴이 미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옛날부터 원래 그런 곳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표면적으로는 북한 혐오가 날이면 날마다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는 가운데 중장년 여성을 중심으로 '겨울연가'가 사회현상이 되어 '한류'가 퍼져가기 시작한다.
당시 매스컴에서 '겨울연가'에 빠진 중장년 여성을 남성들이 대놓고 비웃고 조롱하는 멘트를 서슴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공공의 전파를 타는데 중장년 여성을 대놓고 비하하는 걸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한국 남성에 대해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 남성의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혐한'이 노골적이 되는 시점도 2002년 월드컴 공동개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가 북한 혐오를 유도하는 '혐오의 정치'로 정치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서 성공했다. 그는 2001년에 NHK에서 방영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압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여서 반발이 매우 컸다. 일본의 21세기의 시작은 이웃나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로 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큰 파도의 시작과 끝남- B섬사람들을 중심으로
3. 근래 한일관계와 B섬사람들의 귀국-1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얻는 등 ‘한류’라는 단어로 대표하는 한국의 팝컬처가 일본의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를 차지하고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근래, 서울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을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서울 도심에 있는 드라마나 영화 DVD를 팔고 있는 가게 앞에서 서너 명의 일본인 여성이 그 내용에 대해 정보교환을 하면서 살 것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면서 수다 내용을 들으니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한국어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또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일본인 여성을 볼 수 있는 것도 보통 일이 되었다. 이전에는 볼 수가 없었던 광경이다. ‘한류’ 붐의 영향인지 여성을 중심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잡지에서 한국 특집을 하거나 한국 요리가 소개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일본에서 ‘한류’ 붐에 불을 붙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여성에게 인기가 나올 무렵 내 주위 일본 남성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기 마누라가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서기에 한국 남성 배우에 열을 올리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걸 같은 한국인이라고 동료인 나에게 화풀이를 한다. 본인 앞에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든 ‘배우’라는 직업은 그 용모가 바로 비즈니스와 직결된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찌든 중년 아저씨가 맞짱을 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자기 마누라가 서양인이나 일본인 배우에게 열을 올리고 있다면 그처럼 불쾌했을까? 그러나, 일시적 유행으로 보고 있던 ‘한류’가 그 팬인 일본인 여성들의 소비로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니까, 자기 마누라가 한국 배우에 빠졌다고 화를 내던 사람이 한국 드라마 평론을 주야장천 한다. 가만히 봤더니 한국 드라마가 유일하게 ‘부인과 같이 보는’ 엔터테인먼트로 그로 인해 부인과 공통 화제가 생겨서 ‘행복한’ 모양이다. 도저히 얼마 전까지 한국 배우에게 질투해서 동료인 나에게 화풀이를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그 외에도 “부인과 같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고백하는 동료도 있었다. 출장 가서 호텔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봤다는 걸 학과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그에게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살짝 고백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일인 모양이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인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한국인도 자신들과 공통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인지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1월 제주도 중문에 있는 어느 호텔은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였던 모양이다. 거기에도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방문하는 모양으로 기념촬영용 세트가 구비되어 일본어 설명이 있었다. 그런 일은 그 호텔에서는 보통 일인 모양으로 호텔 종업원이 특별히 대응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걸 몰랐으니 놀라울 뿐이었다. 일본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고 현재 제주도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따르면 일본에서 ‘한류’가 유행해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보러 제주도까지 오게 되면서 그동안 주류였던 일본인 남성의 ‘성매매 관광’이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주류였던 일본인 남성 관광객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많아져서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는 여전히 일본인 남성 ‘성매매 관광’이 일본인 관광객의 주류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거기에 다른 목적을 가진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호텔에 갔을 때도 좋은 경치를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정중앙에 한눈에 ‘성매매 관광’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룹이 자랑스럽게 진을 치고 한국인 여성 한 명을 동반해서 앉아 있었다. 남성들 옷차림도 ‘조폭’을 연상시키고 역시 주위 분위기와 달리 눈에 확 띄게 이상했다. 재미있던 것은 바로 가까운 곳에 일본인 여성이 있는 걸 보더니 더 이상 잘난 척을 할 수가 없었는지 조용해졌다. 서울 도심에서도 한눈에 ‘성매매 관광’인 걸 알 수 있는 일본인 남성의 ‘단체관광객’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전에는 아주 활개를 치고 다녔다면 지금은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단체로 움직인다. 그건 역시 회사에서 보너스처럼 지불하는 ‘위안 여행’인 것인가?
그런 한편, 한국에서 일본 팝컬처의 보급을 보면 눈에 띄게 두드러지게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본 문화 수용은 이미 ‘스탠더드’라고 할까, ‘주류’의 일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출판관계를 보면 일본인 작가의 번역본이 많아서 그중에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팔리는 책이 많은 작가도 있을 정도다. 청소년이 읽는 만화나 게임도 일본물 번역이 많아서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일본 원작을 쓰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라서 그런 일이 특별한 화제가 되지도 않는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팝컬처 보급이 극히 일부에 한정된 느낌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팝컬처가 전역에 걸쳐 깊게 침투한 상태이다.
근래 일본에서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관련으로 북한에 대한 보도로 온통 뒤덮였다. 그런 보도에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북한 사정까지 화제가 되어 수많은 보도특집은 말할 것도 없고 와이드 쇼에도 자주 등장했다. 근래 5년간 북한 관련 뉴스에서는 북한의 식량부족이나 경제위기로 인한 ‘탈북자’라는 난민의 대량 유출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 발사라는 뉴스를 제공하는 것도 계속되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팔아서 정치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아베 신조가 작년 총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고이즈미 씨가 ‘우정 민영화’ 총리라면 아베 씨는 ‘납치 피해자’ 총리가 되는 걸까?
참고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관련 보도 이후, 북한의 해외 공민인 조선 총련계가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가족이 북한에 거주하는 관계로, 또는 북한을 지지했던 조선 총련계 사람들은 근래 조일관계 악화로 일본에 있으면서 있을 장소를 잃고 말았다. 일본의 북한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일본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적’인 사람들은 물론 한국인에게도 살기가 어려워지는 일이 된다.
일본에서는 매스컴의 선동으로 북한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르는 ‘적국’으로서 일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쪽도 ‘한류’처럼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는 의미에서 시민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근래 한국과 일본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시마네현 의회가 2005년에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을 발단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이다. 두 가지 문제의 근본에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귀결된다고 한국에서는 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이 마치 ‘역사문제’를 고집하는 걸로 보이지만 둘 다 일본 정치가가 시작한 일로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한국은 물론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 지배했다는 역사가 잊히지 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한국인은 일본에 식민지 지배당했다는 고난의 역사(과거)를 잊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 특히 정치가는 그걸 잊지 않았고, 한국인에게 잊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양국 간의 내셔널리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국민감정을 크게 자극하는 일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2006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응답이 57.1%로 1986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양국 관계는‘최악’이라는 수치다. 이건 일본인이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감정일까?
근래 한일관계는 일본에서 ‘한류’의 유행이나 한국에서 일본문화의 침투나 일본 상품 소비로 보면 양국 간의 상호 이해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면서 ‘북한 문제’나 ‘야스쿠니 참배’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내셔널리즘이 적나라해지면서 ‘혐한’이나 ‘반일’이 노골적이 된다.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는 다양화하는 것 같지만 양극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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