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1.2도였다고 한다. 오전에 친한 이웃에게 전화했더니 날씨가 너무 덥다면서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한다. 자기도 걷다가 너무 덥다고 버스를 탔다고 했다. 오늘 일본에서 최고기온이 군마현 다카사키시와 도치기현 사노시가 35.2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세상에 도무지 5월 기온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기온이다. 오늘은 덥다고 산책을 오후 4시에 나가서 나무 그늘만 걷기로 했다. 그 시간에는 습도가 낮아서 그런지 어제보다 선선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 나무 그늘만 걸어서 그런 모양이다.
오늘부터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에 관한 마지막 논문을 번역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제4세대'라는 같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요코하마 고토부키에 오는 걸 조사하고 쓰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고토부키에 살면서 일하는 '제4세대'를 연구하는 한편 한국인에 관한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도인과 다른 한국인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를 할 수도 있었다. 사실, 논문에 그런 걸 쓴 적은 없지만 제주도인과 다른 한국인은 거의 정반대의 성향을 나타낼 정도로 달라서 제주도인이면서 서울에서도 짧지 않은 기간 살았던 나로서도 놀라웠다. 그런데, 제주도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사는 한국인이 제주도인에 대해서 마치 일본인과 같은 거리감을 느끼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일본인은 민족이나 국가에 속한 의미가 아닌 한국인과 다르다는 거리감을 나타낸다. 제주도인이 한국인에 대해서 느끼는 거리감보다 한국인이 제주도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 훨씬 컸다. 거기에 전제된 것은 제주도에 대한 차별적인 감정과 근거 없는 우월감이다. 사실, 한국인의 제주도에 대한 지역차별은 그야말로 전라도 어쩌고 하는 식으로 드러나지 조차 않는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상대방에게서 그런 차별적인 감정과 근거 없는 우월감을 느낀다. 정작 그런 감정을 태도로 나타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논문을 쓴 것은 2007년 2월로 관련자료가 워낙 한정된 연구대상이라서 제한된 자료와 이전에 쓴 논문을 재인용하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20년 가까이 지켜봤던 '제4세대'가 대부분 귀향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고토부키에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이 논문은 그동안 정들었던 '제4세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또 하나는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출가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썼다는 점이 있다. 이전에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도 썼지만, 이번에는 일본과 역사적 관계가 들어가는 점이 전편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큰 파도의 시작과 끝남- B섬사람들을 중심으로
1.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 일본의 호경기에 엔고와 인력난이 적극적인 풀 요인이 되어 외국에서 일본에서 일할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그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 본론에서 다루는 제주도를 사례로 보면 근대 이후 일본과 왕래가 끊긴 적이 없었다는 것이 실정이다. 그리고 그 왕래는 제주도 사람들이 출가를 목적으로 일본을 왕래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제주도 사람의 일본으로 이동은 명치 초기부터 수많은 일본인 어부의 왕래로 인해 빚어진 것이었다 1).
20세기에 들어서 제주도인의 일본에 이동을 도일 시기에 따라 크게 4세대로 나눠 각 세대를 둘러싼 시대 배경과 함께 특징을 쓴 적이 있다 2). 즉, 1901-30년에 도일한 사람들을 ‘제1세대’, 1931-50년에 도일한 사람들을 ‘제2세대’, 1951-1985년에 도일한 사람들을 ‘제3세대’, 1986년 이후에 도일한 사람들을 ‘제4세대’라고 분류했다. 이 논문을 쓰면 ‘제4세대’에 1986-2005년이라는 시대 구분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는 도일 시기가 중심이기에 1986-1999년을 ‘제4세대’로 분류했다. 2005년은 ‘제4세대’의 왕래가 끊긴, 대부분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시점인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으로 이동의 큰 파도, ‘제4파’의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도일 제주도인의 세대 구분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 간의 관계, 예를 들어 한일병합이나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조선의 독립과 같은 국가나 그 정책을 중심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런 정세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실질적인 사람들의 움직임을 중시한 구분이다. 즉, 일본이 노동력 수요로 적극적으로 입국을 장려했던 시기에 도일했던 세대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자주적으로 도일한 ‘제3세대’도 있다. ‘제3세대’는 합법적으로 도일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대부분 ‘밀항’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한편, 제주도에서 보면 1세기 이상에 걸쳐 일본을 왕래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당연하다는 것은 간단히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기가 힘들 만큼 익숙하게 생활에 녹아든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다름 아닌 일본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그렇게 오래 지속된 관계성은 항상 전면적으로 떠오르는 일은 없지만 언젠가, 필요한 조건이 갖춰지면 눈에 띄는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 현상은 어쩌다가 우연히 발생하는 것 같지만 제주도와 일본의 역사적 관계성과 제주도인의 문화와 오래전에 형성된 생활권을 중심으로 보면 필연적인 흐름의 하나가 된다. 본론에서 다루는 ‘제4세대’의 도일이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는 “일본의 호경기와 엔고 임금에 노동력 수요라는 풀 요인과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로 인해 일본으로 이동의 큰 파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3). 그리고 이 세대는 “한국의 전후 출생이 중심이며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장해서 학력도 이전세 대보다 높다”4). 거기에 이 세대는 제주도인이면서 한국인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대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도일한 한국인 젊은 세대를 ‘신한국인’으로 구분해서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5). 실제로 이 세대가 도일해서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시기가 있었다. 그중에는 여기서 다루는 제주도인 ‘제4세대’가 포함되어 있다. 요코하마 고토부키초는 제주도인이 중심이 되어 그들에 의해 커뮤니티가 형성된 경위가 있다 6). 그 후 10년 이상 경과한 ‘신한국인’의 실정은 일본 사회에 적응한 결과 “잠재화해서 고립된” 모습이 부각되었다 7).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가 모였던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서 중심적인 존재였던 B섬사람들의 현재 상황을 보는 걸로 ‘제4세대’ 이동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 본론은 본 논문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 출가 노동자를 보내는 마을-제주도 K읍 B촌을 사례로’와 함께 참조하시길 바란다 8).
본론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진행한다. 우선, B섬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서 B섬에 온 일본인과 일본으로 간 B섬사람들을 살펴보는 걸로 B섬사람들이 일본과 고향을 오가면서 살았던 실태를 확인하기로 한다. 다음은 근래 한일관계를 보기로 하자. 그런 배경이 B섬사람들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보기로 한다. 그리고 B섬의 변화를 보자. B섬의 변화는 한국과 제주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 B섬사람들이 체재했던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 남은 케이스와 귀향한 케이스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B섬사람들에게 20년에 걸친 일본에서 출가생활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과정’에서 시사하는 점을 고찰하기로 한다.
그리고 본론의 의미를 붙인다면 이동의 큰 파도가 잔잔해진 걸 지켜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한국인’과 도일 제주도인 ‘제4세대’가 매우 활발한 전개를 보이던 시기에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큰 파도가 잔잔해져서 활동성이 보이지 않으면 연구대상이 보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찾아서 파악해야 한다. 그동안 그들의 동향에 주목해서 주의 깊게 관찰했기에 ‘잠재’해서 ‘고립’된 모습까지 파악할 수가 있었다. ‘제4세대’에 관해서는 그런 현상이 더 진행되어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서‘사라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사라진다’는 의미는 “사물이 흔적도 없어져 형체가 없어진다”라고 한다 9). 하지만, 요코하마 고토부키초에서‘제4세대’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인생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며 일본에서 일하며 살았던 사실이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졌다’는 것도 아니다.
각주
1)高 鮮 徽 『20世紀の滞日済州島人―その生活過程と意識』明石書店 1998年a 第1章 第2節 日本の漁業進 出と済州島を参照
2)高 鮮 徽 前掲書 第1章 第3節 来日済州島人の世代区分を参照
3)高 鮮 徽 「「新韓国人」の定住化―エネルギッシュな群像」 駒井編『定住化する外国人』明石書店 1995年b
4)高 鮮 徽 前掲書b
5)高 鮮 徽 前掲書bは、その世代が来日し、活発な動きをしていた時期を捉えている。
高 鮮 徽 「韓国人」 駒井他編『新来・定住外国人がわかる事典』明石書店 1997年c
6)高 鮮 徽 「韓国済州島出身の出稼ぎ労働者の就労と生活」ほるもん文化編集委員会編『ほるもん文化2はたらく 在日朝鮮人』新幹社 1991年d
高 鮮 徽 「済州島から横浜へ」奥田道大編『都市エスニシティの社会学―民族文化共生の意味を問う』ミネルヴ ァ書房 1997年e
高 鮮 徽 「寄せ場の外国人労働者―寿町の韓国人労働者を事例に」中央大学文学部『紀要』社会学科第10号(通 巻183号)2000年f
7) 高 鮮 徽 「「新韓国人」-適応による潜在化と孤立」駒井編『多文化社会への道』明石書店 2003年g
8)高 鮮 徽 「横浜市寿町へ出稼ぎ労働者を送る村―済州島K邑B村を事例として」寄せ場学会研究年報九号『寄せ 場』れんが書房新社 1996年h
9)第五版 『広辞苑』 岩波書店 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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