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9 일본, 여성과 권위 2
오늘 동경은 태풍이 지나고 폭염이 다시 돌아왔다.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뜨거워졌지만 정작 더워진 것은 저녁이 지나 밤이다. 비가 왔던 덕분에 날씨가 선선해져서 오후에 우체국에 갔다. 우표를 사고 책을 보낼 봉투를 사고 싶었는데 맞는걸 정하지 못해서 사지 못했다. 우체국에 들어 가기 전에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뭔가 싶어서 갔다. 야채와 과일 이동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 곳에 마트가 있었는데 몇 번이나 문을 닫았다. 지금도 야채가게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문을 닫은 모양이다. 야채를 사러 나온 사람이 많았다.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노인, 특히 여성분이 많았다. 판매를 하는 분에게 물었더니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3시에 온다고 한다. 가격은 마트와 비슷해서 특별히 싼 것도 없지만 비싼 것도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에게는 더운데 멀리 마트까지 가지 않아도 좋겠다. 야채보다 과일이 더 많았다. 우체국을 나와서 야채 무인판매에 갔다. 외상값 300엔을 갚아야 한다. 태풍이 오기 전날에 참외가 많이 나온 걸 싹쓸이 해서 사면서 돈이 부족했다. 참외을 볼 때 마다 싹쓸이 하고 있어서 이 동네에서 나는 참외는 내가 많이 먹는 것 같다. 오늘은 살 야채가 없었다. 마트에 갔더니 아까 본 이동판매에 야채를 사러 온 사람들과 차림새가 사뭇 다르다. 이동판매에는 집에 있다가 나온 것이고 마트에는 차를 타고 바깥에 나온 차림이다.
일본에서 요새 계속 보도하는 뉴스 중 여성과 관련된 것이 둘 있다. 하나가 스기타 의원의 성소수자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는 발언으로 LGBT를 공격했다.
두 번째가 도쿄의과대학의 부정입시다. 여학생과 삼수생에게 의도적으로 점수를 조작해서 합격자에 남성이 많도록 한 것이다. 이 문제는 처음에 아주 단순한 걸로 알았다. 도쿄의과대학에서 문부과학성 간부 아들을 부정입학시키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 점수를 조작해서 떨어 뜨리고 남학생을 많이 합격시켰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 것도 남녀차별에 근거한 부정입시로 처분을 받는 걸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남녀차별이 아니라는 듯, 당연한 것이라고 도쿄 의과대학의 부정입시를 지지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설마, 이런 단순 명백한 남녀차별을 지지하다니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사에 대한 댓글 만이 아니라, TV에 나오는 여성, 현직 의사도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도쿄의과대학이 하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는 식의 코멘트를 한 것이다. 일본사회에 '여성혐오'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들은 당연히 항의를 하고 신문에서도 연일 비판했다. 이런 명백한 남녀차별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인데 신문에서도 명확하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항상 여성이다. 남성들이 많이 읽는 잡지에 난 기사를 보면 '필요악'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의사가 되어도 결혼과 출산으로 이직할 확률이 높으니까, 병원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식이다. 여성들이 의사가 되어 결혼이나 출산, 육아로 이직하는 것과 부정입시는 문제가 전혀 다르다. 이전에 회사에서 여성은 결혼해서 회사를 퇴직하니 승진에서 배제하고 제대로 일을 못하게 한 것과 같다. 지금도 일부 여성은 '종합직'으로 남성과 동등한 입장으로 입사하지만 남성은 장래 '출세코스'로 배치하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여성은 '출세코스'에 넣지 않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승진을 못하게 막아 놓고 마치 여성이기 때문에 능력이 부족해서 승진을 못하는 것처럼 여긴다. 남성과 동등한 입장으로 입사해도 동등한 트랙에서 달리게 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조차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암묵적인 구조를 무시하고 성별에 따라 능력이 다른 것에 대한 결과처럼 내보인다. 그런 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간다.
사실 의사들이 연수의를 할 때 아주 가혹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이런 가혹한 노동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남성도 의사로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남성들도 육체적으로 힘든 외과를 기피하기에 항상 외과의사가 부족하다. 의사가 되려는 여성들의 앞길을 막고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들을 감점해서 합격시키지 않은 것이 정당화될 수가 없다. 의사가 되려는 여학생이 많고 우수하다면 그런 여학생이 같이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런 상황은 일반 회사에서 무리한 '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처럼, 그런 '장시간 노동'에 견디지 못해 이직하는 캐리어 여성들이 많다. 겉으로 보면 여성들이 자기 편하려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막은 다르다. '종합직'으로 들어가 남성보다 열심히 일해도 승진이 안된다. 죽도록 회사에 충성해도 남성과는 달리 자신들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걸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직하는 것이다. '과로사'를 부르는 '장시간 노동'은 온존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이직하게 된다는 아이러니다.
도쿄의과대학의 부정입시는 다른 학부에 비해 유독 의대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낮다는 게 이상하다고 전체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문부과학성에서 보면 성별에 의해 점수를 조작해서 여성의 합격율을 낮춘다는 것은 명확한 부정입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남성을 더 많이 뽑는 것이나, 승진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남녀를 불문하고 공정해야 할 대학입시인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번 부정입시에 대해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유리천장'이 아니라, '유리 입구'인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게 조작한다는 것은 범죄이며 교육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 부정입시는 조사에 들어갔으니까,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쭉 그랬을 텐데, 왜 지금에 와서 문제를 삼느냐는 식이다. 이번에 탄로가 났으니 좋은 기회로 여기고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일본의 고질적인 남녀차별 사상을 볼 수가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권위가 있다. 그런 권위가 있는 직업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한다는 것이 결코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를 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감출 수가 있어도 의료분야에서는 감추기가 어렵다. 간호사는 여성들이 많은데 의사를 여성이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다.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전문직 의사라는 권위에 여성들이 도전하는 것에 대해 남성 우위 사회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나?
일본에서 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지 전공을 택한 것이 아니다. 학비도 다른 학과에 비할 수 없이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뒷받침과 우수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참고로 도쿄의과대학을 봤더니 6년간 학비만 약 3천만엔, 한국돈으로 3억 가량 든다. 다른 전공이면 사립대학 기준으로 5분의 1 가량이면 된다. 도쿄의과대학에 입학하려면 일찌기 사립학교를 다니며 학원을 다녀야 해서 어릴 때부터 교육에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즉,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여성은 부잣집에 태어나서 자란 우수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여성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성에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조차 평등하게 부여하지 않는 사회는 무엇인가?
일본 정부는 겉으로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포즈를 취하며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회에서 활약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혼을 피하고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가 없다. 여성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여성들은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선택하지 않게 된다. 여성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노력과 비싼 비용을 내서 얻은 전문직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초고령화, 저출산이다. 거기에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일하기 편하게 결혼하고 임신, 출산, 육아를 해도 사회에서 일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녀평등으로 가지 않는다면 해결책이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의사들이 일하는 노동환경이 바뀌어 성별을 막론하고 의사가 되고 싶은 우수한 인재가 의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수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본 여성들은 외국으로 가라. 외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살기 바란다. 여성을 차별하고 학대하는 국가 따위, 여성이 먼저 버리기 바란다.
우체국에 가는 길에 겨울이면 꽁꽁 어는 개울을 봤더니 물장구치는 벌레가 있었다. 가만히 보면 미세한 파문이 보인다. 마지막 사진은 태풍이 오기 전날 참외를 싹쓸이한 것이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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