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2 외할머니 집 우영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2도로 더운 날씨였다. 한동안 비가 와서 기온이 내려갔는데, 다시 더운 여름날로 돌아왔다. 어젯밤에 잘 때 머리열을 식히는 얼음젤을 벼개에 넣고 잤다. 더울 때는 얼음젤을 넣으면 잠을 푹 잘 수 있다. 요즘 밤늦게 자는 경향이 있어서 늦게 잤지만, 푹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깼지만, 밥솥에 스위치를 넣고 다시 잤다.
그 사이에 옛날 일을 꿈꿨다. 전날에 네팔 아이가 다녀간 일로 머리도 마음도 복잡해서 인가 보다. 사실 나는 이전에 있던 일에 대해 기억이 거의 없다. 일종의 '기억상실' 상태다. 좀 더 정확히 표현을 하면 전에 있던 일을 기억해 내려면 단편적으로 기억해 낼 수 있다. 기억이 나지만, 현재의 나와 분리된,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거리가 있다. 감정과 연결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기억은 단지 기억만이 아니라, 감정과 연동하는 활동이다. 거기에 감정과 연결이 잘 안 된다는 것은 기억이 음식이라면, 향기를 못 맡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튼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일이라도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네팔 아이가 왔다 가서 내가 저 나이 때, 저 무렵에는 어땠는지 생각한 영향으로 몸에 축척된 기억이 꿈에 약간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떤 꿈이었는지 잊었다.
오늘도 더워질 것 같아서 아침밥을 먹고 난 후 11시쯤에 밖에 나갔다. 산책을 겸해서 야채를 사러 나간 것이었다. 요즘, 마트에서는 야채 가격이 급등했다고 한다. 날씨 탓으로 야채가 비싸다고 하지만, 나는 마트에 가도 야채를 보지 않아 가격을 모른다. 주로, 가까운 농가 마당에 나온 야채나 무인판매에 나온 야채 중에서 산 것으로 먹고 있다. 어제는 운이 좋아서 참외를 네 개나 살 수가 있었다. 올여름 처음 산 참외지만, 다음에 살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가까운 밭에 참외가 몇 개 남은 걸 보면 운이 좋으면 다시 살 수 있을까? 운인 것이다. 가능하면 오전과 오후 늦게 하루에 두 번 산책을 겸해서 가고 싶지만,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덜 더운 시간대에 한 번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좋다. 야채를 사러 가도 살 것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야채를 사러 가지 않으면 밖에 나가질 않아서 산책을 겸해서라도 가는 것이 좋다. 오늘도 농가에서 길쭉한 가지를 한 봉지, 좀 더 먼 곳에 있는 무인판매에서 오이 한 봉지와 감자를 두 봉지 샀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오후에도 가고 싶었지만, 너무 더워서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저녁에는 가지와 소시지를 볶고 계란 프라이와 오이로 밥을 먹었다. 소시지도 싫어하는데, 옛날에 먹었던 생각이 나서 다시 먹기 시작했다. 요즘 소면을 주로 먹어서 힘이 없었는데, 밥을 먹으면 기분이 달라진다. 나는 밥을 할 때, 현미와 백미에 보리쌀, 콩을 넣는다. 이 중에 콩이 없으면 심심하다. 다른 것이 없어도 백미만이라도 콩을 넣어야 한다. 콩을 몇 종류 사서 불려 놓고 냉동했다가 밥 할 때 넣는다. 요새는 현미를 불릴 때, 콩도 같이 넣어서 불린다. 전에는 밥에 잡곡을 넣거나 콩을 넣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백미밥이 무거워서 잡곡을 넣기 시작했지만, 콩을 넣기 시작한 것은 어릴 때 외할머니와 같이 살 때 잡곡밥에 콩을 넣어서 먹었던 기억이 나서다. 어릴 때는 맛있는 줄 몰랐는 데, 지금은 맛있다. 나도 모르게 어릴 때 기억을 소환해서 같이 먹는 모양이다.
제주도에는 집에 딸린 '우영'이라는 작은 채소밭이 있다. 집에서 먹는 채소를 심는 곳이다. 꼭 채소만 심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집에서 먹는 걸 조금씩 심어서 식사 때 상추를 뜯거나 부추를 잘라온다. 그러니, 계절에 따라먹는 야채도 다르고 콩도 종류가 다르다. 외할머니네 '우영'은 좀 커서 작은 밭 정도였지만, 부엌 뒷문을 열면 바로 아주 작은 부엌에 딸린 '우영'이 있어서 밥을 할 때 금방 따서 쓰는 것들이 있었다. 부추와 파와 상추도 깻잎, 양하, 고추 등 조금씩 많은 종류가 있었다. 어릴 때 입맛에 할머니는 왜 저런 걸 먹나 싶은 계절 야채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허브와 스파이스를 주로 심었던 것이다. 작은 '우영' 옆에는 된장과 간장 항아리에 소금 항아리와 수 종류의 젓갈 등 크고 작은 항아리가 많이 있었다. 자리젓과 멜젓은 꼭 있었고 다른 젓갈도 있었다. 나는 어렸으니까, 할머니 심부름으로 국자를 들고 간장과 된장 항아리 외에 열 일이 없었다. 그 많은 항아리에는 뭐가 들어 있었을까?
외할머니는 나이를 먹고 묵은 집에서 나와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래도 제사 때가 되면 묵은 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곤 했다. 외할머니 집을 떠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라,, 작은 집에서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외할머니 집으로 기억하는 곳은 어렸을 때 살았던 묵은 집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났고 묵은 집도 주저앉아 허물어져서 형태도 없어졌지만, 기억 속에 있는 외할머니 집은 여전히 묵은 집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외할머니 집을 기억해내고 넓은 '우영'도 떠올렸다. 물론, 외할머니의 사랑도......
지금 나이를 먹고 나름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생활해보고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어릴 때 살았던 생활이 풍요롭다는 것이다. 비록, 흰쌀밥이나, 육고기를 먹는 기회는 드물었지만, '결핍'을 몰랐다. 흰쌀밥이나, 육고기가 맛있는 줄도 몰라서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주식에서 부식까지 자기가 사는 주변에서 수확한 신선한 걸 주로 먹었다는, 조미료까지 자체 생산인 것은 풍요롭고 알찬 식생활이었다.
네팔 아이가 내 기억을 흔들어 놓고 간 모양이다. 덕분에 어릴 때 기억을 조금 소환해냈다.
참외를 산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올린다. 참외를 찾는 것도 한국에 살았던 기억 때문이다. 한국에서 흔한 과일이 외국에서는 결코 흔하지 않은 과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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