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1 파장, 또는 영향력
오늘 동경은 아주 오랜만에 비가 온다.
새벽부터 비가 오다 그치고 햇살이 비치다가 다시 비가 온다. 아까는 아주 가까운 데서 큰 천둥소리가 들렸다. 번개도 물론 바로 위에서 크게 했다. 집에 있는 날이라, 빨래를 했더니 밖에 널었다가 안으로 집어 놨다가 바쁘다.
한국에서는 태풍이 둘이나 지나가고 비가 많이 와서 피해가 생겼지만, 일본은 계속 맑고 더운 날이 계속되어 가뭄이었다. 물이 부족해진다. 나는 며칠동안 더워지기 전 아침에 학교도서관에 가서 일하다가 5시에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장소를 옮겨서 일을 했다. 점심도 안먹고 며칠 동안 일에 집중했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읽을 일 외에 다른 걸 못하니까, 아무래도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 그런데 슈퍼에 가지 않아서 집에 먹을 게 없었다. 화요일 저녁에 쇼핑을 가려고 했는데, 결국 밤 9시에 문 닫을 시간까지 일을 못 마쳐서 못 갔다. 밤 9시 넘어서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일을 보고 우체국에 가서 서류를 보내고 일을 하다 보니 3시간이나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 날은 낮이 얼마나 더웠는지 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웠다. 피곤했다.
뒷날부터는 교정할 원고를 짊어지고 학교도서관에 갔다. 동경은 날씨가 여전히 최고기온이 33도를 넘는 무서운 날씨라, 더워지기 전,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땀으로 륙끈이 땀으로 젖어 있다. 손에 드는 가방도 끈이 땀으로 젖어 있다. 옷도, 목에 멘 손수건도 다 젖어 있다. 파김치가 되어도 숨을 돌리고 일을 한다. 일단 학교에 가면 뜨거운 햇살이 무서워, 햇살로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열기가 무서워서 그 게 식을 시간이 돼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3일동안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멸치를 사 와서 마른반찬이 좀 있는 것이다. 나는 밥을 잘 안먹는다. 그래도 먹을 게 없으니, 먹어야 일을 한다. 아침에 밥을 든든히 먹고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도 아침에 남은 밥을 먹었다. 익숙치 않은 밥을 먹으니 몸이 무겁기 짝이 없고, 둥굴둥굴 몸이 부풀어 오른다.
도서관에 가면 최소한 8시간이상 계속 의자에 앉아서, 집중해서 일한다. 그 동안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몇 번 갔다 오면 8시간은 금방 지난다. 원고교정을 하면서 새로 쓸 논문을 구상하느라, 집중에 집중을 한다. 눈으로, 머리로 만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동원이 가능한 것은 전부 동원해서 읽다 보면,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점점 부워온다. 실은 자료를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자료 속으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못 본 게 있나 찾으면서 허우적거린다는 게 맞다. 오늘까지 1차 교정을 끝내고, 다음은 다른 차원에서 읽기 시작한다. 비록 전체가 아니라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논문 구상을 해서 써야한다. 어떤 논문을 쓸지 아직 전혀 모르겠다. 나는 자료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문맥에서 논문 가닥을 잡는 형이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이라도 자료를 읽을 때는, 새로운 자료를 처음 읽는 것처럼 읽는다.
어제 일본 후배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후배는 오랫동안 자신의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과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교류를 해왔다. 매해 후배네 학생들이 한국에 가고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오는 것이었다. 양쪽에서 학생들이 준비한 세미나를 하고 홈스테이를 하면서 학생 들끼리 교류를 한다. 나도 후배와 친한 사이라, 시간이 되면 세미나에 참가하곤 했다. 양쪽 학생들이 영어로 세미나를 준비해서, 양쪽이 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열심히 준비를 한다. 매해마다 지속적으로 해 온 것이다. 올해도, 9월에 갈 예정이었던 게, 학생들 부모로부터 여행동의서를 못 받아서 못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있었던 이명박대통령이 독도 방문과 더불어 위안부 문제 발언 등으로 인해 학생들 보호자는 학생들이 한국에 가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배 메일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요즘 영토를 둘러싼 한일관계는 (미디어) 정보이상으로 일본 사람들 (내셔널리스틱한) 감정이 고양되어 있는 것 같아 (일본 사람들에게) 아주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학생들이 한국과 교류를 계속해 왔는데, 올여름은 OO대학에 방문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보호자로부터 동의서를 못 받는 사태가 이어져 학생들이 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저희 학부에서는 학생들의 풀뿌리 교류로 다음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왔는데, 그 걸 실천할 기회를,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현실입니다. 요새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메일에 답장을 못썼다.
정말로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일은 후배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양심적인 사람들이 한국과의 교류를 하는, 사회운동으로 오랫동안 해 온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정치가들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 한 발언들이 큰 파장이 되어, 양쪽 시민들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노력해 온 일들을 물거품이 되게 해 왔기 때문이다. 힘이 빠진다. 나도 그렇지만,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한국과 일본의 상호 이해를 위해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토문제나 위안부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고, 한국 측 주장이 틀리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는 그야말로 고도의 외교적 수단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위안부 관련 발언은 일본에서 보면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그런 타이밍과 무대는 다시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내가 봐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정책 방침이 아주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오히려 일본에 협력적인 자세로 봤는데, 너무도 갑자기 태도를 정반대로 바꾼 것이다. 적응이 안된다. 정권 말기에 와서 어떤 성과도 기대할 수 없는데, 꺼내서는 안 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대통령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을 때는 그 카드를 써야 할 때였을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로 그 카드를 써야 될 시기였는지, 의문이지만. 그리고 그에 대응한 성과와, 성과를 못 얻어도 영향력을 충분히 상상했으리라. 그야말로 아이들 장난이 아니니까. 주변에 일본 정세를 잘 읽어내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으리라. 한국에서 이번 일로 실질적으로 뭘 얻어냈는지, 궁금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이 일본에 대한 공헌이다.
일본이 보수적(국수주의적) 성향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그런데, 이번 일로 좀 더 국수주의적으로 가게 하는 명분과 힘을 보탰다. 예를 들어 신문을 보면 그와 관련된 보도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보수성향이 강한 신문기사 리스트는 대중국, 한국, 북한으로 아예 그런 쪽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그런 신문에 실리지 않는 보통사람들이 움직임이 이 번 후배네 학생들이 한국 방문을 못하는 것처럼 드러난다. 이런 건 매스컴에 보도가 안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혐한 감정’이 깊어져 가고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그 세력을 확장을 하는데 이 대통령께서 확실히,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일본 사람들에게 아주 ‘인상적인’ 한국 대통령으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혐한 감정’의 영향은 반드시 국익 레벨에 나타난다. 일본 사람들 뒤끝은 장난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가는 관광객이 줄어들거나, 한국상품이 안 팔리거나, 적어도 한국과 교류를 해왔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과 일본은 좋든 싫든 이웃이며, 서로가 너무도 깊숙이 상호의존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현명히 대처를 해야 한다.
일본도 국내 정세에 전혀 여유가 없다.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일본에 대해 강경하게 나왔다는 건, 두고두고 일본에서 대한국, 동북아시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일본이 더 국수주의화 해 가는 좋은 구실로써 귀중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다. 넷우익에게도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했다. 요즘 오사카 하시모토 시장과 ‘유신회’가 아베 전 총리와 급격히 가까워져 힘을 모으고 있단다. 아베 전 총리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이슈로 총리가 되어서 시종일관 대북 강경책을 해 왔던 사람이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대북 강경책은 북한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으며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했으나,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차별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일반 일본 사람들은 모른다. 답답한 일본의 현실에서 주변 국가를 ‘가상의 적’으로 만들어 국민들의 불평불만을 해소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상의) 적국에 대해 ‘강경히 대처’하는 리더(총리)가 좋다는 것이다. 만일에 다시 아베 씨 쪽으로 기우는 일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께서 많이 도우신 거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 민주당다운 정치를 할 기회도 없이, 어쩌면 자민당 정권보다 더 ‘위험한’ 정권을 창출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역대 한국 대통령이 못해냈던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대통령이시다.
역시 대단하시다.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한류'를 밀기 위해 손수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 주역까지 하신 거다,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된다. 그런데, '한류팬'을 왕창 무너뜨리고, '혐한류'팬을 확보하셨다.
추신, 9월 10일 보도에 의하면 관서지방 여행사에서 8월 하순부터 한국 여행에 캔슬이 계속되고 있단다. 9-10월은 작년 대비 한국행은 40%가 줄었다고, 일본 여행업계가 난리 났다. 한국행에서 대만행이나, 오키나와행으로 변경 중이라나, 학생들 수학여행이 걱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 여행 광고도 못 내고 있어서 울상이란다. 물론, 신오오쿠보에도 사람들 발걸음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연일 보도 중이다. 역시 대단하시다. 일본 여행업계까지 쥐락펴락 하신다. 바야흐로 계절은 관광시즌인데, 물론, 한국 여행업계도 영향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