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0 자축했다
오늘 동경은 오전에는 맑았다가 오후에 접어 들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제와 그저께는 날씨가 맑았다. 날씨가 맑으면 아직 햇살이 따갑다.
어제와 그저께, 오늘까지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많아 뉴스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이번 주에 가을학기가 시작되어 갑자기 바빠진 시기에 중요한 뉴스가 쏟아져서 정신이 없다. 강의는 강의대로 새로운 학생들과 서로 첫 대면이라 긴장한다. 사무적인 일도 있고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학교에 오며 가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느라, 더 정신이 없다. 학교에서도 정신이 반쯤은 남북정상회담에 있는 기분이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제 3차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눈물을 흘리며 지내다가 오늘 드디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피해자는 나뿐이라, 참 다행이다. 목요일 강의가 시작되는 것은 다음 주인데 오늘 학교에 가고 말았다. 분명히 어젯밤에도 달력에 써놓은 봤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반은 나갔거나,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어서 생긴 것이다. 학교 스쿨버스를 타는 역에 갔는데 학생이 한 명도 안 보여 대학에 전화했더니 다음 주부터 수업이 시작된다고. 어차피 나선 길이라, 돌아오면서 계절이 바뀌었다고 옷을 보려고 백화점에 들렀다. 작년에 바지를 몇 장 사서 편하게 입었던 가게에 갔더니 그런 바지가 없어졌다. 아주 캐주얼한 옷만 있었다. 평소에 백화점에 잘 안 가는 편이라, 간 김에 다른 걸 보려고 둘러봤는데 볼 기분이 안 난다. 요새 동경 백화점 분위기가 이렇다. 평일 낮이라, 손님도 적지만 뭔가 사려고 가도 찾는 것 외에 볼 기분도 들지 않는 것이다. 가격이 싸고 비싸고 이전에 전혀 끌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전철, 쥬오센에서 자살사고가 났다는 안내가 나왔다. 개학하자마자 이런 안내를 듣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런 안내가 새로운 것도 아닌데,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끝내 소화불량이다. 이런 걸 보면 이런 상황을 조용히 인내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질린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들에게도 질리고 만다. 내가 한국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한국이라면 엎어도 몇 번이나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나 자살이 있다. 한국에도 자살이 많다. 하지만, 거의 매일 사람들이,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 눈 앞에서 자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살사고를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상황에서 사는 것 참 괴롭다.
집 가까이 와서 마트에 갔다. 사야 할 것도 있지만 그냥 갔다. 마침 맛있는 과일이 착한 가격이라서 왕창 샀다. 제 3차 남북정상회담 자축하는 심정으로 과일을 샀다. 이렇게 기쁜 날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내가 최대한 들 수 있을 만큼 샀다. 어제도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괜히 짭짤한 것이 먹고 싶어 생선을 구워 먹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술을 마셨을 것이다. 나는 술을 못 마시고 술도 없으니까...... 내가 자축을 한다고 해봤자, 맛있는 과일과 빵을 먹고 홍차, 얼그레이를 마시고 다시 먹고를 거듭한다. 내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아생전에 이런 장면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꿈이 아니길 바란다.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고 언제까지나 꿈속에 있고 싶다.
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내가 눈물을 흘린 대목을 소개한다. 첫날은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요새 한국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심한 말로 욕을 하는 댓글을 많이 접해서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가 더욱 돋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의를 깍듯하게 지키면서도 다정하게 겸손하고 성의를 다하는 것이 잘 보였다.
둘째 날은 이산가족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 보다도 시급한 것이 이산가족 상봉이 아닐까. 더 일찍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해 줘야 되는 것이었다. 만나고 싶은 가족들이 살아 있을 때 만나게 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이런 당연한 것이 지금에 와서야 당연시된다는 것이 그동안 얼마나 이상한 상황이었는지 알게 해 준다. 나는 한국 쪽에서 적극적으로 많은 노력을 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실질적인 종전선언도 인상적이었다. 분단국가에 태어나 성장하고 나이를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휴전'이라는 어정쩡한 상태가 당연한 것이라, 어정쩡한 상태라는 걸 모른다. 종전이라는 말이 나와서 처음으로 그동안 잠재적인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았다는 걸 알았다. 현실감이 없지만, 비정상이 정상화로 가는 모양이다.
셋째 날인 오늘은 하루 늦게 어제 한국에서 뉴스로 나온 걸 보면서 아침에 나갔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느라고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철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는 걸 의식하면서도 뉴스를 그만 볼 수가 없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대통령이 북한 시민들에게 연설했다는 것과 그 내용이다. 한국에서도 그 걸 보면서 교감했을 것이다. 정말로 획기적이다. 이런 날이 오다니,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같이 잘 살아갈 길을 노력하면 양쪽에 다 좋은 일이다. 그러면서 학교에 가는 날이 아닌 데 가고 말았다.
오늘 가장 멋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간 것이다. 맑게 개인 천지에서 기념사진, 정말 꿈과 같다. 나도 중국에서 백두산, 중국에서는 장백산에 간 적이 있다. 내가 갔던 날도 운이 좋게 맑아서 천지가 깨끗하게 보였다. 중국에서 북한 측을 보면서 심정이 복잡했다. 2006년이라, 언제쯤 북한을 거쳐서 백두산에 갈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한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부터 애국가에 나오는 백두산에 중국을 통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전에 중국에도 가지 못하던 시대에 백두산은 그저 환상 속에 있는 것이었다. 중국을 통해서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고 했다. 막상, 중국을 통해서 가면 북한을 통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과 단절 밖에 몰라서 분단과 단절, 적대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에게도 남북 분단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알려줬다.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감상도 남북관계에 따라 '종북'이라고 할까 무서워서 말도 못 했다. 쉽게 '종북'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종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뭔가 알아야 '종북'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북한을 모른다.
내가 실수를 한 것은 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문이다.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런 날은 자축해야 한다. 비록 술도 못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왕창 사다가 배가 터지지 않을 정도로 먹는 것이다. 3일 동안 꿈처럼 행복했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길 바란다.
전에 금강산에 갈 수 있던 시대에 나는 언제나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천천히 가면 되겠지 생각하다가 못 갔다.. 이제는 북한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일찍 가고 싶다. 지구 반대편까지 갔다 왔는데, 지척에 있는 북한에 가지 못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하루빨리 이웃인 북한에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평양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
어제와 오늘 산 과일들이다. 한꺼번에 먹는 것은 아니다. 포도가 두 종류(피오네, 샤인 머스컷) 지금 아주 맛있는 계절이다. 바나나, 무화과, 푸른, 아보카도, 사과, 감, 자두, 서양배, 토마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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