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3 개강날
오늘 동경은 맑고 기온이 높은 날이었다. 최고기온 27도였다. 휴일이었지만, 개강이라 학교에 가서 수업을 했다. 휴일에 출근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세상 사람들은 놀러 가는 데, 일을 하러 가다니…
첫수업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다. 첫날은 그냥 수업 소개를 하고 끝낸다. 오늘도 수업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보고 짧게 끝냈다. 2교시와 3교시 밖에 없는 널널한 날이었다. 2교시 수업에 들어갔더니, 남학생 하나가 선생님 저는 친구가 없는 데 어떡하죠? 친구는 여기서 만들면 되는 거야. 맨 앞에 앉은 여학생 둘이 핸드폰을 보면서 계속 수다를 떤다. 그러다가 질문시간에 한다는 질문이 선생님 남자 친구 있어요? 그게 이 과목과 무슨 상관이 있지? 어, 수업과 관련이 있는 걸 질문해야 하나요? 물론이지…에효…
한쪽에서는 남학생들이 완전 신이 났다. 노는 것이 초등학생 수준이다. 완전히 들떠서 정신없이 방방뜬다. 수업을 소개하고 선배들 말에 의하면 내 수업은 이 학교에서 가장 강도가 높다고, 평균점수도 아주 높고 학생들도 열심히 하는 수업이니까, 각오하라고… 점점 조용해진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완전 얌전해졌다.
방학이 끝나서 처음으로 직원들과 동료를 보는 날이어서 학생들도 들떠있었지만, 직원이나 선생들도 들떠있었다. 나는 12월초에 호주 친구를 초청강사로 특별강의시키려고 그 서류를 준비해야 했었다. 서류를 제출하면 가능하게 사전에 준비를 다 해뒀다. 후배연구실에 갔더니 후배가 없다. 오늘 강의가 있을 텐데, 없다. 나중에 보니까, 어떻게 겨우 학교에 나온 모양이다. 금요일에는 연구실에 있겠다고…
점심시간에도 점심을 먹다가 카피를 뜨다가 자료를 프린트하는 산만한 시간이었다. 같이 수다를 떠는 선생이 간식을 가지고 왔다. 저쪽에서 새로온 선생이 자기를 소개한다. 저, S라고 중국어를 담당합니다. 박선생 후임이에요. 내가 아, 그러세요. 그런데, 박선생이 아주 귀여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부분에 관해서도 확실히 인수인계를 받으셨나요? 옆에서 친구가 제재를 한다. 처음 본 선생에게 겁주지 말라고… 내가 뭔 겁을 줘? 그냥, 물어본 거지…
내 앞에 앉은 N선생 수다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가는 귀가 먹었는지 말을 못 알아듣는다. 친구와 셋은 가까운 편이라서 수다가 더욱 꽃이 핀다. N선생이 오랜만에 인간과 대화를 해서 기쁘단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묻는다.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 원숭이와 대화를 하셨나요? 친구가 나를 다시 제재한다. 원숭이가 뭐야?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게 원숭이잖아. N선생 왈, 아니 주로 컴퓨터와 대화를 했거든요. N선생은 사이좋은 남편과 딸이 있다. 그러나 둘에게 집은 잠자러 오는 곳이란다. 그래서 사람과 말을 하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고… 개강을 기다렸단다.
그런데, 갑자기 N선생이 내 얼굴을 가까이 보면서 얼굴이 작아졌단다. 아니, 원래 크지 않아요. 옆에서 친구가 예쁘지? 친구는 항상 보는 사람이다. 오늘따라 갑자기 내가 예뻐질 일이 없다. 친구가 N선생에게 강요한다. 예쁘지 않아? N선생이 완전히 감탄하듯이 예쁘네, 예뻐. 내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뜯어본 결과다.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과 대화의 행방이 너무 웃겼다. 너무 웃겨서 셋이 웃다가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장난칠 일이 없으면 내 얼굴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친구도 완전 엉뚱한 사람이다. 항상 봐온 얼굴을 새삼스럽게 예쁘다니, 더위를 먹었나? 눈이 흐려진 건가? 더위를 먹은 게 틀림없다.
3교시를 일찍 마치고 호주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고 학교에서 나왔다. 아직도 햇볕이 뜨거웠다. 전철을 탔더니 사람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나같이 입을 열고 정신없이 자고 있다. 나는 그 벌린 입을 보면서 입에 뭘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단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했을 뿐이다. 나는 더위를 먹은 동료들에게 미친듯이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날이라, 졸지도 않고 조신하게 행동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더니 소면호박이 싸다. 소면호박을 두 개 사고, 서양배를 세 개, 옥수수를 여섯 개, 보통배를 두 개에 살게 좀 있어서 샀더니 짐이 무거워졌다. 조금 전까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전철에서도 오며 가며 시선을 받으면서 독서에 몰입했던 나는 순식간에 짐꾼으로 변신했다. 짊어지고 양손에 들고 집을 향해서 언덕길을 올라왔다. 에효, 먹고 산다는 것이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