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2 추석이라는데
오늘 동경은 아침에 흐렸다가 낮부터 날씨가 개었다. 요즘 거의 매일처럼 비가 온다. 해가 나면 갑자기 기온이 급상승해서 오늘도 햇살이 따가웠다. 최고기온이 29도로 바깥에 나갔더니 습도가 높아서 땀이 줄줄 났다. 어제는 최고기온이 20도였는데 오늘은 29도다. 날씨가 너무 들쑥날쑥해서 감기에 걸린 학생들이 많다. 나도 이런 날씨에 적응이 잘 안된다. 이번 주에 들어서 여름 이불을 빨고 얇은 담요를 덥고 잔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딱딱해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어제는 담요를 한 장 더 꺼내서 덥어서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 났더니 몸이 거뜬하고 부드럽다. 몸이 딱딱했던 것은 잘 때 추웠던 모양이다. 자기 전에 목욕을 하고 몸이 따뜻한 상태에서 자기 때문에 춥다는 걸 잘 몰랐다.
오전에 아침을 늦게 먹고 날씨가 개어서 빨래를 했다. 바깥공기를 쏘일 겸 야채를 사러 나갔다. 농가 마당과 야채 무인판매에도 살 게 없었다. 마트에 가서 휴지와 부엌 세제를 사서 들고 오다가 몇 년만인가, 오래 알던 분과 조용한 골목길에 서서 통화를 오래 했다. 수요일에 엽서를 보내서 읽고 전화를 한 것이다. 가족들과 주변 친구분들 안부까지 들었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는 라인으로 가끔 문자를 하면서 소식을 주고받기로 했다. 라인에 등록을 하라고 해서 봤더니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 전화를 했다. 전화했더니 전해줄 것이 있다고 해서 가까운 곳에 간다고 했다. 지난번에 서울에서 사 온 슬리퍼를 줬다고 답례로 직접 만든 밤과자를 주셨다. 시부카와니라고 밤을 겉에 있는 딱딱한 껍질은 까지만 속에 얇은 껍질째로 설탕을 넣고 조린 것이다. 껍질을 조심해서 벗겨야 하고 손길이 많이 가는 공이 드는 과자다. 먹는 것은 참 간단하다. 잠깐 만나서 수다를 떨고 주변에 난 버섯을 찍고 왔다.
내일 한국은 추석이지만 일본은 추분이다. 추분이라고 해도 동경에서 특별한 것은 없고 휴일이라서 월요일까지 연휴다. 그래도 오늘 절에 있는 산소를 지났더니 꽃들로 단장이 되어 있다. 벌초는 없지만 산소에 가는 절기인 모양이다. 이 부근은 옛날 농가였던 곳이 많아서 조상의 묘를 집터 한구석에 모신 곳도 적지 않다. 이웃에게 성묘하러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산소에 가지 않는단다.
집에 와서 창문을 다 열었다. 비가 많이 와서 집안이 눅눅해져 이상한 냄새가 난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지금까지 살던 사람들의 먼지와 세월의 흔적이 알게 모르게 쌓이고 배어 있다. 그런 것이 먼지와 습기가 더해져서 냄새를 풍긴다. 통풍을 자주 해서 냄새를 빼야 한다. 날씨가 개었지만 습도가 높아서 빨래가 마르질 않는다.
저녁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네팔 아이가 전화를 했다.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으면 만나러 온다고 한다. 이번 주는 개강해서 피곤하니까, 다음 연휴에 보자고 했다. 네팔아이가 10월에 고향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회사일 때문에 11월에 갈 것 같다고 한다.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해서 학기 중이라 못 간다고 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아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날이었나 싶다. 전화를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한국에서는 추석이라고 하지만 동경에서는 변함없는 일상의 하루다. 그래도 추석이라는 걸 알면 외국에 오래 사는 입장에서는 특별한 날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평일이라면 일을 하느라고 마음이 싱숭생숭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어제 학교에서 늦게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반건조 생선을 좀 많이 샀다. 오늘은 특별히 거대한 생선을 먹기로 했다. 미국산으로 흰 살 생선인데 이름을 모른다. 아침에 반쪽을 굽고 옆에 가지와 양파를 같이 구워서 먹었다. 저녁에도 남은 반 쪽과 감자를 구어서 저녁으로 먹었다. 맛있는 과일도 많이 먹었다. 정작 추석은 내일인데, 내일은 뭘 먹지? 냉동실에 있는 떡을 꺼내서 떡국이라도 끓일까? 아니면 주말에 먹는 밥을 할까? 현미라서 지금 결정해야 한다. 쌀을 씻어서 불려야 하니까.
추석을 지내는 친척이 있으면 추석이라는 기분이 들고 추석에 먹는 음식을 먹겠지.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간단한 추석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추석은 단지 추석을 상징하는 송편 같은 음식만이 아니라, 많은 요소가 결합된 것이다. 추석 기분을 맛보자고 전을 부친다고 추석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꼭 추석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추석이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어정쩡하게 외국생활이 긴 사람에게는 추석의 좋은 면만 추억 속에 남는다. 추석이라니 내일은 잊지 말고 보름달을 꼭 봐야지.
사진은 지난 수요일 맑았던 날 낮에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