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30 추석날 논문이 끝났다
오늘은 추석날이라는데, 동경은 변함없는 주말이었다.
오전까지는 날씨도 괜찮았는데, 오후가 되면서 흐리더니 급기야 태풍이 지나가는 중이다.
나는 오늘 보름달을 보러 가려고 별렀는데, 태풍이었던 것이다. 태풍이 좀 크고 드라마틱해서 문을 꽁꽁 닫았다. 태풍이 엄청 크지는 않은데, 작지도 않다. 지나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나는 8월 말부터 논문에 매달려 있었다. 이 논문에 파묻히려고 여름에 여행도 안 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파묻힐 기회가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쪽 논문을 안쓰다 보니 감이 많이 떨어져서 고전을 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염두에 두면서 쓰는 것은 짐을 많이 지고 산에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힘들다. 핑계를 대자면 여름이 너무 더웠다. 정말로 신물나게, 미친 듯이 더웠다. 논문을 쓸 때는 집에서 일을 한다. 자료도 집에 있고 컴퓨터도 집에 있다. 나는 아주 빨리 쓰는 사람이라, 좀 방심했다.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보통은 일주일에 한편을 쓴다.
그런데 특별히 애정이 가는 거고, 힘든 거라, 논문이 쓰여 지질 않았다. 나는 이 논문을 써야,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마무리 지울 수 있다. 마무리를 지우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겨우 그 게 마무리 지울 수 있게 되었다. 뭘 써야 마무리가 될지 모른다.
난생 처음 헤매다가, 쓰려고 했던 것도 다 못쓰고 마치기로 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정말로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게 힘든 거고, 고독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그렇게 쉽게 가볍게 쓰던 사람이 이제야 겨우 철이 들려나? 정말로 글을 쓰는 게 힘든 거라는 걸 알았다면 글 쓰는 걸 안 했을 것이다. 나는 쉽게 일하고 편하게 살려는 사람이다. 생각대로 안되지만…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실컷 뒹굴면서 논 것 같다. 정말로 오랜만에 자료를 읽어도 워낙 플라스틱 같은 인생이라, 읽는 것도 깊어지지 않고 성숙함도 없다. 그래도 그 전에 몰랐던 것들이 다시 보여왔다. 논문에는 안썼지만, 새로운 걸 알게 돼서 기뻤다. 단지 기쁜 것은 아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몰랐다는 게 화도 나고,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갈 길이 멀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 길을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읽고 또 읽어도, 퍼내고 또 퍼내도 밑도 끝도 없이 뭔가가 나오는 괴물에 붙잡혔다. 괴물이 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도 괴물이 힘들었는데, 익숙해졌다. 이렇게 언제까지나 나를 뒤흔드는 매력적인 괴물은 다시없을 것이다. 그 괴물이 세상에 나간다. 내 손에 있던 게 세상 밖으로 나간다. 나에게 괴물이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물이 될까.
오늘은 추석날이라고 특별한 일은 없다. 어제 내가 새로 사온 예쁜 커피잔에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추석날 내가 사랑하는 논문을 마쳤다. 우선은 여기서 매듭을 짓자. 행복한 시간이였다. 고맙다. 열병을 앓고 난 것처럼 조금 나른하고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