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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아베정권

폭염이라는 재해

2018/07/17 폭염이라는 재해

 

오늘도 동경은 최고기온이 36도로 폭염이었다. 요새 매일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게 당연한 무서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도 36도에 전날은 37도였던 같다. 어느새 35도가 기준이 되고 말았다. 폭염주의보가 아닌 연일 폭염경보인 날씨인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다행히도 주위에 나무가 많다. 나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서늘하고 공기가 좋다는 의미다. 에어컨이 없이도 집과 도서관을 왕복하는 도보 생활권에서는 문제가 없다. 어제는 월요일이지만 연휴였다. 지금은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이 열려 있어서 도서관에 가서 지냈다. 시험기간이라, 책을 빌릴 수는 없지만 새로 온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어제는 읽을 만한 책이 좀 있어서 좋은 날이었다. 바깥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도서관에서 바깥을 보면 멀리 아지랑이가 올라와서 맑게 개인 날인데 수묵화처럼 운치가 있는 풍경이었다. 덥다고 평소보다 늦게 5시 반이 넘어 도서관을 나왔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는 길에 헌책방 앞에서 가까운 농가가 재배한 토마토를 세 봉지 샀다. 다시 길을 걷다가 농가 앞에서 오이를 두 봉지 샀다. 500엔어치 야채로 풍성해졌다. 가는 길에 야채가 보이면 사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야채가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 먹는 야채가 가까운 농가에서 재배한 노지 토마토와 오이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는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도서관에서 충분히 식힌 몸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동안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집에 들어와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찬물로 샤워를 해서 한숨 돌린다. 요새 집에서 지낼 때 가급적 전등을 켜지 않는다. 컴퓨터나 냉장고는 어쩔 수 없이 쓰지만 전등은 꼭 써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안 쓴다. 전등을 켜면 더워진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못 올리고 있다. 블로그를 쓸 때는 내용에 따라 메모나 자료를 봐야 하기 때문에 전등을 켜야 한다. 더우니까, 메모나 자료를 보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것을 쓰기로 했다.

 

요새 일본은 서일본 호우 피해로 사망자가 220명을 넘었다. 재해 복구에 관한 뉴스가 많다. 이번 호우 경보가 내린 날 밤에 술자리를 가진 걸 sns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던 아베 수상이 피해자를 만나서 무릎을 꿇은 것이 주목을 끌었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베 수상으로서는 허리를 납작 굽힌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인상 조작'을 참 잘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재해를 당한 피해자를 만나서 무릎을 꿇는 것은 일본에서 천황이 피해자를 대하는 자세였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 수상도 후쿠시마 지진 피해자를 만날 때 무릎을 꿇은 자세였다. 보통 재해를 피해 주민들이 체육관 같은 큰 건물에서 지낸다. 마룻바닥에 앉은 피해자를 접할 때, 눈높이를 맞추려면 무릎을 꿇는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마루바닥에 앉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내려다보는 자세라면 반발을 산다. 어떤 자세와 태도로 접하는지 아주 중요하다. 일본 사람들이 다다미 방에서 지낼 때 무릎을 꿇는 일이 많다. 천황이라는 일본에서 절대적인 존재가 나이를 먹은 몸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피해자와 눈높이 맞추면서 겸손한 자세로 대한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데서 큰 위안을 받는다.

 

이번 아베 수상의 겸손한 제스처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재선을 하겠지.

  

페북에는 피해지역에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 올라온다. 이 무서운 더위, 피해지역은 기온이 동경보다 더 높아서 37, 38도나 올라간다. 평소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자원봉사자가 그 더위에 야외작업을 하고 있다. 피해복구 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가 쓰러지고 있다. 어느 자원봉사자가 글을 올렸다. 자원봉사를 20여 년 하는 중에 아는 사람이 3명이나 죽었단다. 그야말로 재해복구를 하러 간 자원봉사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로 피해복구를 하러 갔으면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이 무더위에 열심히 야외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화가 난다. 재해로 사람들을 잃었는데 재해복구로 다시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다. 국민의 희생에 무심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아베정권이 '재난대책'을 잘하는 것처럼 '인상 조작'을 해왔다. 뒤돌아보니 '인상 조작'을 잘한 것이지 '재난대책'을 잘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낱낱이 들통이 났으면 좋겠다.

 

최고기온이 35도가 넘으면, 폭염경보 수준이 되면 학교나 회사도 쉬는 것이 좋다. 폭염경보 수준의 더위는 자연재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일본이나 한국은 이렇게 폭염경보가 계속되는 더위에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걸 인정해야 한다. 폭염이 계속되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안된다. 폭염경보가 내린 가운데 학교나 회사에서 효율이 오를리가 없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면 안 될까?? 더위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죽어 간다. 폭염, 그 자체가 재해라는 걸 빨리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그런 대책도 없으면서 '재난대책'을 잘하고 있다고 사기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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