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일 제주도 사람들/'파친코'와 재일 제주도 사람들

'파친코' 8화의 시대적 배경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14도로 겨울처럼 추운 날씨다. 오전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점심에 가까워서 비가 오고 있다. 아침에도 안개가 낀 것 같았는데 비가 오면서 완전히 안개처럼 시야가 뿌였다. 시야가 맑지 않아도 지금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연두색과 녹색의 향연으로 눈이 부신데 안개로 특수한 영상 효과를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이런 날은 집 창문으로 바깥 경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좋다. 기온이 낮아서 밖에 나가면 춥기 때문에 집에서 녹색의 향연을 보면서 상상하는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만다. 오전에 늦장을 부려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기온이 낮고 비가 와서 산책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파친코' 8화를 봤다. 오늘은 '파친코' 8화를 본 감상을 쓰기로 한다. 

 

날 잡고 '파친코'를 봐야 할 것 같아서 사전 준비를 했다. 메모할 종이도 평소에 쓰는 전단지 이면이 아닌 빳빳한 카드로 8화니까, 8매를 내놓고 번호도 매겼다. 메모할 펜도 녹색, 파란색, 빨간색을 꺼내 놨다. 특별한 드라마 '파친코' 시청에 임하는 자세다. 이틀 전에 '파친코' 1-6화를 집중해서 봤다. 메모하면서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몰입해서 봤다. 너무 심하게 몰입해서 내 주변이 진공팩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7화는 '고한수의 배경'을 쓰기 전에 봤기 때문에 스킵했다. 8화는 시즌 1의 마지막 회라서 그런지 몰라도 고한수와 관동대지진에 집중한 7화와 달리 오사카 이쿠노의 선자를 중심으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안내하는 것 같았다.

 

 

1938년 오사카 이쿠노의 선자와 1989년 동경을 무대로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드라마가 교차된다. 1938년을 중심으로 보기로 하자. 노아가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한다. 아마 노아가 다닌 학교는 재일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 학교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차별과 멸시를 당함으로 자존감이 짓밟힌다. 노아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건 가족, 아버지 이삭이다. 노아에게 아버지 이삭은 '핏줄'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하늘 같은 존재, 이상적인 아버지로 비친다. 그런 아버지가 체포되어 일본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건 노아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선자가 어릴 때 영도에서 본 하숙집에 묵었던 아저씨가 체포되어 구타를 당하는 것 이상으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노아에게 이삭이 이상적인 아버지인 건 선자와 아버지의 관계와 겹친다. 선자 아버지는 세상에서 보면 장애자이고 결혼하기도 어려운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선자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로 선자를 사랑으로 강하게 키운 이상적인 아버지였다. 선자의 강한 자립심과 높은 자존감은 아버지와 어머니,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자랐다는 걸로 형성되었다. 

 

이삭이 핍박받는 조선인 노동자를 향해 자부심을 갖도록 연설을 하고 다닌 모양이다.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된다. 이삭의 큰 형이 독립운동을 했던 영향이 여기서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둘째 형이 회사에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도움을 받기는커녕 비국민 이삭과 같은 '핏줄'이라고 회사에서 잘리고 만다. 여기서 '핏줄'이 하나의 키워드다. 이삭이 공산주의에 공감해서 노동운동을 한 것도 어쩌면 '핏줄'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이삭의 동지로서 나오는 일본인은 역사학자이며 공산주의자, 무신론자이다. 경찰에서는 일본 노동 총연맹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보면 노동운동을 한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 의문이 있는 장면이 있었다. 선자가 노아를 데리고 경찰서에 가서 노아가 통역 역할을 한다. 노아의 일본어도 표준어가 아닌 오사카말이어야 자연스럽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어른들의 일에 아이를 데리고 갔을까? 하는 것과 노아가 아직 어린데 통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가족 이외에 다른 동지들이 주위에 많았을 텐데,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도 있고 교회 신자도 있을 텐데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돕는 장면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거기에 선자가 오사카에 가서 7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집에서 전업주부로만 살기는 어렵기에 일을 했을 텐데 일본어를 익히지 못했다는 설정이라면 이상하다. 설사, 일본어를 읽거나 쓰지 못해도 일상적인 일본어를 습득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고 선자는 똑똑하고 당찬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선자의 일본어 또한 생활언어인 오사카말이어야 한다. 

 

드라마는 선자가 김치를 만들어 팔러 나서면서 결정적으로 선자가 자기주장을 하면서 세상에 나오는 걸 보여준다. 선자의 김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김치라는 걸로 오사카에서 조선인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솜씨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지 않고 강조하고 내세우는 방식으로 나간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도 주변에 어려운 사정이 있는 자매까지 거두면서 하숙집을 운영했던 자립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선자도 남편이 체포되자, 어머니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김치를 만들어 세상에 나온다. 이삭이 경제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삭이 노동운동을 한 것을 안 선자가 화를 내는 걸 보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한 활동을 우선시해서 가족을 등한시한 것 같다. 남성이 바깥에서 노동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생계를 책임졌기에 가능했다. 이삭의 형 요셉은 평양에서 양반이었다는 신분을 내세우고 남존여비의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걸 이상으로 여기면서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적일 걸 강요한다. 현실은 양반이라고 존경받을 수 없고 남존여비를 하고 있을 여유도 없으며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선자의 자립적인 행동은 요셉에게는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걸로 보인다. 선자와 요셉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대비가 된다. 

 

고한수와 이삭이 아들 노아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대비가 된다. 이삭은 아들 노아 학교까지 마중 가고 노아 눈높이를 맞춘 대화를 하면서 노아를 존중하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노아의 장래에 대해서도 자신의 희망을 강요하기보다 자신이 하는 노동운동이 결국 선자나 노아를 위하는 걸로 믿었다. 한편, 고한수도 아들 노아 앞에 나타나 아버지라는 걸 밝히지는 않지만 아버지로서 노아에게 가르침을 준다. 관동대지진에서 아버지와 사별한 이야기도 한다. 살아남는 게 다가 아니다. 조선인이나, 일본인보다 앞서가야 한다. 힘이 있으면 주위에서 싫어해도 결국 존중하게 된다. 앞만 보라고 한다. 노아가 아버지 이삭을 그리워하면서 걷는 멀어도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길을 걷지 말고 지름길로 다니라고 한다. 선자에게 줬던 회중시계, 선자가 전당포에 팔았던 걸 다시 노아에게 준다. 

 

고한수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이삭은 이상을 추구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대조적이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도 대조적이다. 현실과 이상은 동전의 양면으로 어느 한쪽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한쪽만 택하기를 강요한다면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노아에게는 그런 선택이 강요될 것 같다. 

 

 

1938년 당시 조선인이 한층 더 핍박받게 되는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상황을 보기로 하자.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 참모들이 자작극으로 공격받은 것처럼 꾸며서 만주철도 선로를 폭파하고 이걸 구실로 총공격을 개시해서 만주사변이 일어난다.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을 점령 1932년에 만주국을 세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했는데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말소해서 보도한 동아일보가 무기 정간을 맞는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시작된다. 같은 해 12월 13일 중국의 수도 남경, 난징이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의해 함락된다. 일본군이 난징에 남은 중국군을 살해한다는 구실로 시작된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민간인 학살이었다. 부녀자를 강간하고 폭행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난징대학살'이라고 불린다. 참고로 난징에도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가 여러 곳 있어서 조선의 여성도 끌려갔다. 그리고 난징에는 또 하나의 731부대라고 할 수 있는 1644부대가 있었다(https://huiya-kohui.tistory.com/1517?category=759998). 남경대학살에서 중국인을 학살한 일본군에 '가해자'로 조선인이 많았다는 유어 비어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떠올린다.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1937년 12월에는 조선인이 일본군에 많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육군 특별 지원병령을 공포한 것은 1938년 2월 22일이었고, 국가 총동원법 공포가 4월 1일로 5월 5일부터 시행되었다. 1943년에는 학도 지원병 제도가 실시되었지만 모두가 '난징대학살'이 있었던 1937년 12월-1938년 1월 이후의 일이다. 일본의 악행을 조선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게 주특기인 모양이다. 

 

1938년 4월 19일 조선 총독부는 중학교 조선어 시간을 타과목으로 대체할 것을 통첩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것은 1939년 9월 3일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실질적으로 그 이전에 주변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7월에 조선에 국민 징용령을 실시했다. 12월에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창씨개명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일본이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이 극도로 악랄해지는 것과 시기가 겹친다. 조선에서 일본의 통치가 일본에 있는 조선인에 대한 것보다 더욱 가혹했다고 한다. 

 

이삭이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먼저 쓴 '파친코' 고한수의 배경-1에서 인용한 대목에 제주도와 오사카 항로 군대환에 일본인 사상계 사복 경찰이 2명 타고 있었다(https://huiya-kohui.tistory.com/2938). 일본 당국에서는 조선의 독립운동, 노동운동, 사회주의 사상 전파에 매우 신경을 곤두세워서 항상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조선인이 많이 모인 이쿠노에 대해 엄격한 감시가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한편, 당시 세계적인 경향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의 거대 자본과 손을 잡고 근린 국가를 침략하는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통해 팽창해서 발전했다. 일본 정부와 거대 자본은 일심동체라고 보면 된다. 일본 국수주의 정부에서 노동운동 탄압은 곧 조선 독립운동의 탄압이었고 사회주의 사상의 보급은 '비국민' 혹은 '매국노'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했다. 일본 정부와 거대 자본 입장에서는 조선 독립운동이나 노동운동, 사회주의 사상이 동급으로 가장 위험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 독립운동과 노동운동,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연대해서 공투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천황을 절대적으로 신격화하는 가운데, 기독교라는 교회에서 신사 참배 거부를 하는 운동도 일어나기에 이삭과 같은 존재는 일본 당국에서 보기에 '위험인물'이다.  

 

이삭이 노동운동으로 체포가 되고 선자가 김치를 들고 세상에 나가게 되는 1938년을 전후한 일본의 대내외적 상황과 전쟁을 향한 흐름이다. 드라마도 남성 중심의 전개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 같다. 일본 제국주의 팽창이 극을 향해서 폭주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배도 악랄함이 극도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조금 있으면 조선인이 조선옷을 입고 다니면 먹물을 뿌리는 테러를 당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와 노동자의 강제동원은 말할 것도 없다. 

 

사진은 2년 전에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