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피해자를 공격하지 말라
오늘 동경은 맑은 날씨였다. 어젯밤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추워서 날씨가 가을을 건너 뛰고 한겨울이 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는 아직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지만, 겨울처럼 너무 추웠다. 쉬는 날 아침 일찍부터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서 9시 넘어서 빨래를 시작했다. 그 전에 담요와 베개 등을 다 베란다에 널었다. 새로 꺼낼 겨울이불도 꺼내서 바람을 쏘여야 한다. 오늘 말린 이불이 담요가 총 석 장에 이불 하나, 베개, 방에 까는 큰 카펫이었다. 침대에 깔았던 퀼트는 내일 세탁해서 정리할 예정이다. 베란다에 다 널어도 빨래도 말려야 해서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뒤집어야 한다. 침실을 겨울용으로 셋팅을 마쳤다. 지금까지 쓰던 담요는 말려서 정리했다. 방에도 카펫을 깔고 난방기구도 내놨다. 갑자기 추워져서 마치 한겨울이 된 느낌이 든다. 아직 겨울 준비를 마치지 못했지만 오늘 한 것으로도 당분간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오늘 한국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다가 '한샘 성폭행 피해자 여성'이 보냈다는 대화 내용에 대한 기사와 댓글에서 사람들이 '성폭행 피해자'가 보낸 것 같지 않다면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서 '언어폭력'을 가한 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다. '피해자'에게 '모럴 해러스먼트'를 하는 것과 같다.
나는 '한샘 성폭행'에 대해서 첫 뉴스가 나왔을 때부터 '여직원'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로 대학에서 개인적으로, 공적으로도 지금까지 많은 상담을 했다. 그 중에는 '성추행'은 가벼운 편으로 부지기수이고 '성폭행'도 많았다. 예를 들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사람 중, 내가 상담을 한 케이스에서 실제로 증거를 확보하고 경찰에 간 케이스는 단 한 건 밖에 없다. 그 케이스는 주위 사람들과 언니가 옆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가해자'를 벌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하느냐면, 첫 번째로 '피해자'가 사건화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성이 스스로가 증거를 확보하고 고발을 하면서 도대체 몇 번이나, 많은 사람, 특히 남성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지 모른다. '2차 피해'는 물론 수없이 당한다. 강제로 폭행 당했다는 것을 현장을 보지 않은 사람, 강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강제성' 여부를 따지는데, '강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여자가 '성폭행' 당하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여자들이 '거절'해도 '가해자'는 '거절'로 듣지 않는다. '거부'하다가 어떤 '폭행'을 당할지 모르고 '살인'을 당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성폭행'은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렇기에 일은 아주 복잡해진다. '피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건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사건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반면 '가해자'는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판에 박은 듯이 '피해자'가 자기를 꼬셨다고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주위에 알린다고 협박하면서 지속적인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부정'하고 싶다. 특히 자신의 가족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족에게 털어놓고 가족이 지원 한다면 나는 한시름 놓을 정도다. '성폭행'은 거의 가족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사건화 되지 않는다. 가족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해서 '피해자'가 더 힘들어진다. '가해자'는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사법체계나 사회가 암묵적으로 '가해자' 편에 서있는 것이다. '가해자'는 정상적인 범위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할 존재가 아니다. 그 들은 단지 체포되지 않았고 죄의 값을 치르지 않은 '범죄자'일뿐이다. '가해자'들이 반성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가해자'는 세상에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우습게 알며 뻔뻔스럽게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해도 '피해자'가 상처를 입은 것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자신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느낀다. 누구보다도 그런 일을 당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책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준 사람,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이른다. 자살 미수에 리스트 컷을 하거나, 거식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출해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을 더 더럽히려고 성매매 여성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수 많은 '성폭행' '피해자는 사건을 깊숙이, 깊숙이 감추고 살아간다. 상처를 안고 '치료'나 '회복'도 못하고 살아간다.
'피해자'가 '성폭행'을 '고발'한다는 것은 죽을 각오로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회사의 동료에 의해서다. 여성은 지금까지 노력해서 이룬 것을 다 버려야 한다. 설사 사건이 '피해자'가 납득할 정도로 매듭을 지어진다고 해도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성폭행'만이 아닌 다른 걸로 '난도질'을 당하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인생은 '사건 전'과 '사건 후'로 바뀐다. 그야말로 인생이 파괴되고 만다. 피해는 '피해자' 본인만이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미친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나 주위에서 상담을 받는 사람도 알고 지내던 사이면 제정신으로 있기가 힘들다. 상담을 하는 나도 '피해자'를 생각하면 후들후들 떨린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피해자'처럼 행동하진 않는다. 주위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가해자'에게도 자신이 무너진 모습을 보이기 싫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심리적으로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이다.'성폭행'을 당할 때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해서 '해리'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많다. 유체이탈처럼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남의 일'처럼 느끼는 것이다. 현실 감각이 둔해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진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어도 ''플래시 백'현상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떠오른다. 몸이 공포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중에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고발'한다는 것은 '피해자'가 회복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기도 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고발'했다는 그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다. 정말로 용기 있는 행동이다. '피해자'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해서 '2차 피해'를 가하지 말라. '피해자'를 죽이는 일이다. '가해자'를 옹호하며 잠재적 가해자에게 '성폭행'을 하라고 부추기는 일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여자'들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지길 바란다.
사진은 오늘 찍은 은행나무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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