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 산을 하나 넘었다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이지만,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춥다. 겨울 날씨가 되어 아주 건조한 날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주말다운 토요일을 맞았다. 주말다운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집안일을 하고 쉬고 먹으면서 지내는 것이다. 빨래나 청소를 하고 주변을 산책하거나, 무인판매에 가서 야채를 사오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다. 산책을 겸해서 도서관에 가거나, 헌책방에 가는 일도 있고, 친구네 초대를 받아서 차를 마시러 가는 일도 있다. 오늘은 빨래를 하고 이 주일만에 밥을 해서 아침부터 고등어를 구어 든직하게 먹었다. 역시 주말에는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주말을 주말답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제 오후에 탄핵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느긋한 마음으로 인터넷으로 촛불집회를 지켜봤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향하면서도 마음은 3시부터 시작된다는 탄핵표결에 가 있었다. 도대체 정신이 거기에 팔려서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도 모르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면서 마음을 정한 것은 탄핵이 가결되지 않아도 그다지 변할 것은 없었다. 단지, 매주마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을 생각하면, 토요일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촛불집회를 지켜보는 나를 위해서도 탄핵이 가결되는 것이 필요했다. 피로가 쌓였으니까, 탄핵이 가결되면 좀 쉴 수가 있다. 아무 일이 없어도 바빠지는 12월이다. 일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지는데, 추운 겨울을 맞아 겨울채비도 끝나지 않았고 할 일이 많아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매일 일을 마치고 와서 끝이 안 보이는 한국 뉴스를 읽으면 허탈하고 피곤했다. 탄핵이 가결되어 정말 다행이다. 한시름 놨다.
촛불에서 횃불이 되었을 때, 시민의 승리를 확신했다. 박 대통령은 촛불에서 횃불이 된 중대함을 제대로 알았을까? 그 중대함을 잘 알았으면 좋겠다. 국민이 촛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지경에 오지 않았겠지. 촛불이 분노의 횃불이 되었을 때, 타오르는 횃불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다. ‘촛불혁명’이라고, ‘무혈혁명’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횃불은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 색이었다. 일찍이 촛불의 흐름이 피의 흐름처럼 보였다. 피가 흐르는 것이 확실하게 보인 것은 촛불에서 횃불이 되었을 때다. 촛불은 단지 촛불이 아니었다. 촛불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뤘다. 촛불이 무리 지어 흐를 때, 횃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때, 아름다운 피빛이 흐르고 타올랐다.
촛불과 함께한 눈물은 단순하지 않다. 노무현을 보낸 눈물이며, 강산을 파괴한 것에 대한 분노, 세월호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수장한 눈물이다. 진상규명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이다.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분노에 백남기 농민을 죽인 폭력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시간 흘렸던 눈물과 분노가 이어진 것이 촛불과 함께한 눈물이다.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었나? 대통령과 측근들이 국민을 이지메 하며 횡포를 부려왔다. 촛불을 든 국민들은 참고 참다가 일어선 것이다. 지금 이 추운 겨울에 한가해서 할 일이 없어서 촛불을 들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불의가 국민들을 깨우쳐 촛불을 들고 나서게 만들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각성’하고 말았다. 정치의식이 높아졌다. 그 것이 ‘희망’으로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에서 세워진 촛불이 가느다란 빛이었다면, 촛불이 강물 되고 바다가 되었을 때, 빛이 모여 희망이 모아졌다. 횃불이 되어 희망도 밝은 빛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절망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사람들이 만들어냈다. 잊지말자잊지 말자, 기적을 만들어냈고 승리했다.
이번의 승리는 기적이었지만, 산을 하나 넘은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그들은 ‘간교’하다. 그들은 대를 이어 ‘사기꾼’으로 먹고 살아온 ‘프로’들이다. 어디에 ‘함정’을 파놓고 있는지 모른다. ‘사기꾼’들이 협잡해서 날뛰는 세상이 오지 않게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세상이 ‘사기꾼’들에게 휘둘리는 세상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나?
어쨌든, 산을 하나 넘었다.
사진은 촛불과 횃불의 아름다운 핏빛 같은 붉은색으로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