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5 조용한 크리스마스
오늘도 동경은 맑고 추운 날이었다.
아침에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서 잠이 깬다. 잠이 깨면, 베개 옆에 있는 책, 어젯밤 자기 전까지 읽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가톨릭 사회와 사회주의 / 공산주의에 관한 책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탈리아 사회의 핵심적인 부분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요 며칠 흥미롭게 읽는 책이다.
욕조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세탁기에 넣어서 빨래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남은 오뎅을 데웠다. 청소도 해야 하는 날인데, 서두르고 싶지 않다.
빨래를 해서 널고 목욕탕 청소를 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침은 천천히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
어제 논문에 관한 미팅을 했던 후배가 문자를 보냈다. 어제 하던 일을 마치고 오늘 연구회에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도 일요일도 없나 보다. 목에다 두르는 걸 만들어 놨으니까 어떤지 보라고 지나가는 길에 들르라고 하려다 말았다.
조금 있으니 같은 단지에 사는 일본 아줌마가 내일 놀러 온다고 문자가 왔다. 나도 머리를 좀 정리해 줄 수 있냐는 문자를 보냈다. 머리가 어수선해서 좀 정리를 해야겠다. 이 아줌마가 내 머리를 잘라준다.
점심때쯤,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다녀와야지, 몇 시에 나갈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가 문자가 왔다. 지나가다 들르겠다고, 몇 시에 오느냐고, 점심을 마친 시간에 간다기에, 지금 마쳤어.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이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제는 심각한 미팅에 네팔 아이 일로 속이 상해서 크리스마스이브 기분도 없이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테이블에 예쁜 여자아이들 사진으로 만들어진 달력을 보니, 또 착잡한 심정이 된다. 어쩔 수가 없다. 어제로 끝났다.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지고 왔다. 선물이 든 가방이 재미있다. 손잡이 부분이 새털로 되어있다. 그림에 그려진 다리에도 반짝이는 라인스톤이 붙어있다. 선물은 샐러드드레싱이란다. 가방이 재미있어서 내가 마음에 들어할 것 같았단다. 손잡이가 목에 두르고 싶을 만큼 따뜻하다.
과자를 먹자고, 브랜디 케이크와 브라우니가 있는데, 뭐가 좋아? 브라우니는 유학생이 만들어서 가져온 거야, 브랜디 케이크는 가까운데 사는 대학원 후배가 저녁 먹으러 오면서 가져왔는데, 이 것도 맛있을 것 같아. 브라우니가 좋겠다. 그럼,.그럼 차는 뭘로 해? 뭐가 있는데? 홍차도 있고, 커피도 있고, 코코아도 있고, 일본 차도 있어. 홍차가 좋겠다. 홍차도 다지린이 있고, 얼그레이, 레디얼그레이가 있어. 그럼 다 지린, 그냥 스트레이트로. 물을 끓이면서 소박한 티컵을 꺼내서 따뜻한 물로 덮인다. 우선 두 잔을 먼저 만들고 끓은 물을 더 보충한다.
이 목도리는 다른 친구 주려고 만들었는데, 자기네 집이 너무 추워서 필요할 것 같으니까, 이 목도리 좀 해 봐, 와아 하고 환성을 지른다. 이 건 주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해 보기만 하라고, 갈 데가 정해진 거야. 그래도 벌써 들떠서 정신이 없다. 따뜻해, 감촉도 좋아. 그런데 그 간단한 걸 제대로 못한다. 내가 살다가 요령이 나쁜 사람도 많이 봤지만, 이런 사람도 별로 없다.
목도리 짜게 실을 두 개 꺼내서 어느 색이 좋은 지, 고르라고 했더니 모르겠단다. 내가 좋은 걸로 하라고, 그런 대답이 제일 골치가 아파요. 결국, 베이지색과 아주 연한 보라색이 도는 색 중에 연한 보라색이 도는 실로 했다. 근데, 이 실색과
실제로 만들면 달라져, 실이 가늘어서 색이 옅어지거든. 끈이 길었으면 좋겠어. 그건, 만드는 사람 마음입니다.
브라우니를 먹으면서 연신 맛있다고 한다. 그래, 그럼 하나 더 먹어. 요번에 코코아 파우더를 사서 쵸코렛 케이크라도 만들까 생각 중이야. 나도 생협에 주문을 했어. 홍차 두 잔에 브라우니도 두 개씩 먹었다. 어제 있었던 네팔 아이 얘기를 하면서, ‘나름 노력했는 데, 내가 더 이상 관여를 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이 친구는 그전에 일본어학교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다. 지금도 대학에서 유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친구가 연락이 올 게 있는데 휴대폰을 잊었다며 집에 간단다. 나도 밖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갑자기 이상한 춤을 시작하지 마, 놀래잖아, 어떻게 내 주위 사람들은 나와 같이 있으면 이상해져. 집을 나가면서 항상 집이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다며 호들갑을 떤다. 오늘 청소하는 날인데 아직 청소를 안 했어. 이 친구네 집은 예고 없이 갔다가 발을 디딜 틈이 없는 경우도 있다. 집까지 바래다주고 와서 산책을 나갔다.
공원에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연못도 얼었는지 얼음조각이 떠있다. 좀 더 갔더니 큰 냇가도 얼음이 얼어있다. 아직 얼음이 두껍지 않지만, 벌써 얼음이 얼었다.
조용한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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