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31 가는 해
어제는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씨였다.
기온은 그다지 낮지 않지만 날씨가 흐려서 나중에는 비가 왔다. 촉촉한 비에서 밤에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로 변했다.
연말이라고 특별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집에만 있으니까, 한꺼번에 요리를 해서 나눠서 먹는다. 요즘 뮤즈님 블로그에 맛있는 생선요리가 올라와서 나도 생선을 먹었다. 기껏 해봐야, 러시아산 연어이지만, 그래도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는 거다. 어제 마트에 갔더니 무도 가격이 두배로 올랐다. 나도 연말에 하는 요리가 있기는 있다. 꼭 연말일 필요는 없는데, 연말에 만든다. 무우와 당근을 채 썰어서 소금에 절인다. 소금에 절은 걸 꼭짜서 식초와 설탕, 후추에 유자껍질과 속을 같이 넣은 것에 섞는다. 좋은 다시마를 넉넉히 가늘게 잘라서 넣는다. 하룻밤이 지나면 맛이 더 부드러워진다. 유자향기가 좋은 신선한 맛이 된다. 그저께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 때는 무가 모자라서 배추도 넣었다. 맛이 좀 달다. 어제도 다시 만들었다. 맛이 좀 다르다. 이걸 넉넉히 만들어 두면 안심이 된다. 오늘은 당근도 하나 더 사 왔다. 내일도 다시 만들고 싶을지 모르니까. 이따가 친구네 집에 갈 때도 좀 나눠서 가져간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부터 카레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친구와 약속을 해서 레미제라블을 보러 갔다. 월요일은 레이디스 데이라 요금이 싸다. 처음에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데 가서 아무래도 이상해서 옆사람과 표를 대조했더니, 잘못 들어갔다. 제대로 된 곳에 갔더니 아침부터 사람이 많다. 그리고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에 차있다. 나는 앤 해서웨이가 창녀가 되어 선장을 손님으로 받고 난 후 부르는 노래 대목부터 울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울었다. 중반 이후는 다른 사람들도 울기 시작해서 많이 울었다. 영화가 끝나서 마지막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나도 하도 울어서 머리가 아프다. 화장실에 가니 줄이 너무 길어서 가까운 백화점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정말 이상한 사람 얼굴이 되어있다. 무엇보다 머리가 아프다. 너무 울어서다. 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봐도 잘 모른다. 그래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위에 자막이 나오니까, 내용을 이해하지만. 근데,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을 보고 싶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 시간을 전혀 못 느끼게 한 대단한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가 단지 영화가 아닌 현실과 겹친다는 게 아주 슬프다. 영화 속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소소한 행복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소소한 행복마저도 꿈을 꿀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인류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나, 테크놀로지라는 과학기술은 많은 발전을 했지만, 인간들의 지혜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더니 물건값이 비싸다. 어제보다 사람은 적다. 완전 연말 태세로 들어갔다. 과일과 과자를 조금 사 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날씨가 개어서 서둘러 집안 창문을 모두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했다. 대청소는 안 했지만, 현관문까지 닦았다. 며칠 생선을 먹었고 카레 냄새가 배었다. 거기에다 향을 피워서 집안에 냄새가 복잡해졌다. 환기를 시키고 걸레질을 했더니 한결 나아졌다.
저녁해가 지는 걸 보러 갔다. 매일 해가 뜨고 지지만,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이라고 보러 갔다. 드라마틱한 일몰이다. 어두운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데 조금 난 틈새로 해가 졌다. 후지산이 뒤에서 불타는 것처럼 일몰이 여운을 남겼다. 그냥 조용히 해가 질 수 없었나 보다. 해가 지고 나서도 태양이 불타고 있었다는 걸 일깨워준다. 지는 태양, 그냥 지지 않는구나. 고맙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겠지. 새카만 먹구름 속에서도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지. 절망의 먹구름이 아무리 두껍다 해도 희망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걸 잊지 말자.
밤에는 친구네 가서 도시코시 소바(송년 국수?)를 먹고 지낸다. 제야의 종소리는 친구랑 가까운 동네 절에 갈 거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해가 시작되니까, 새삼스럽게 종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
여러분도 좋은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네 일루미네이션 2 (0) | 2019.12.27 |
---|---|
동네 일루미네이션 1 (0) | 2019.12.27 |
연말 시장보기 (0) | 2019.12.27 |
조용한 크리스마스 (0) | 2019.12.27 |
조촐한 크리스마스 홈파티 (0) | 201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