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7 나체와 누드 1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월요일이라, 아침을 먹고 도서관을 향했다. 도서관에 가서 신간이 들어온 걸 봤다. 이번 주도 좋은 책이 많이 있었다. 우선, 훑어볼 책이 많아서 좋았다. 책을 책상 위에 쌓아 놓고 강의를 가는 대학에 가서 로커를 비우고 왔다. 학기말이 끝나면 로커를 비워야 하는데, 바빠서 비우질 못했다. 시험이 끝나 학생도 별로 없는 계절이라서 그런지 학교 분위기가 다르다.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어서 출입구를 막았다. 사무실에도 직원이 적었다. 로커를 비우고 남았던 자료를 처분했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책을 열심히 읽고 왔다.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야채 무인 판매하는 곳에 들러 시금치와 나물 한 단 샀다. 지난 달 말에 역 가까이 있는 마트가 하나 문을 닫았다. 그 마트는 가격이 조금 비싸도 품질이 좋은 과일, 건강한 닭, 유기농 먹거리 등을 팔았다. 그 마트가 문을 닫으면 주위에서 그런 걸 살 곳이 없다.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식생활이 더욱 빈곤하게 되었다. 다른 마트를 개척하려고 오늘 돌아오는 길에 가봤다. 생각보다 좋은 것 같아 앞으로 좀 더 탐험을 하려고 한다. 오늘 산 것은 딸기와 포도였다. 맛있었다.
요전에 한국에서 화제가 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더러운 잠’ 소동으로 표창원 의원이 징계를 받았다. 문제가 된 작품이 대통령의 여성성을 비하한 ‘여성혐오’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더러운 잠’은 ‘여성비하’나 ‘여성혐오’가 아닌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여성이나, 남성이 벗은 몸, 나체 자체는 그다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일본을 예를 들기로 하겠다. 일본문화의 특이함이 아닌, 다른 문화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성에 중점을 둔다. 에도시대까지 일본인은 ‘몸을 가린다’거나, ‘나체가 되는 것은 부끄럽다’는 의식이 그다지 없었다. 공중목욕탕은 남녀혼욕에 남성은 물론, 여성이 길가에서 나체로 목간을 하는 것도 당연한 풍경이었다. 공중목욕탕에서 집까지 알몸으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가슴을 가리는’ 습관도 없어서 당시 여성은 상반신 나체로 일을 하거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여성이 상반신 나체로 일을 했던 것은 5-60년 전까지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남녀혼욕의 경우는 지금도 가끔 볼 수가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은 시골에서 일을 끝내고 노천탕 같은 곳에 들르는 경우도 있다. 시간대에 따라, 남자가 있거나, 여자만 있을 수도 있다. 그 지역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 전혀 남녀을 '의식'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남녀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걸로 보면 여성의 가슴이나, 나체가 꼭 ‘성적인 흥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나체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의식해서 감추게 한 것은 정부와 매스컴의 계몽운동이었다. 특히, 여성에게 속옷(팬티)을 입으라고 권장했다. 서양을 본받은 근대화과정에 사람들 앞에서 하반신이나, 성기를 노출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속옷을 입는 자체가 가린다는 행위로 수치심을 유발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가린다는 것으로 오히려 성기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기가 부끄러워서 가린 것이 아니라, 가린다는 행위를 통해 성기에 대한 수치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나체나, 가슴이 보인다고 해서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나체를 하나의 자연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남자아이인 경우 백일사진에 알몸에 성기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도 알몸인 경우는 허다했다. 언제부터 알몸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운 것이라고 '의식'하기 시작했을까?
지금 거리나, 교과서 미술관에서 흔히 나부의 동상을 보거나, 나체의 그림을 보지만, 그 자체가 성적인 흥분을 유발시키는 대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성들이 몰려서 미술관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남성과 여성의 나체, 과학교실에 있는 나(인)체 모형, 미술실에 있는 석고상도 거진 나체일 것이다. 설마, 거리의 조형물, 교과서에 실린 그림, 인체모형이 남성이나,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 성적흥분을 주는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사진은 상체가 나체인 일본 해녀와 소중기를 입은 제주해녀다. 상체를 드러낸 일본해녀의 표정을 보라, 얼마나 당당한가? 일본과 제주도 사진을 찍은 시기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일본이 1950년대 초에 제주도는 50-60년대라고 했다. 또 하나는 비옷을 입은 일본농부와 같은 차림새를 하고 낚시를 하는 제주 어부 사진이다. 나는 똑같은 차림새를 중국 하이난에서도 봤다. 사진을 찍은 것은 둘 다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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