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3 뿌리깊은나무의 기억 1
오늘 동경은 흐리고 추운 날씨다. 3월 3일 히나마쓰리라는 여자아이를 위한 절기를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도 히나인형을 두 세트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 다른 하나는 오래 알고 지내던 분이 사주신 것이다. 히나인형은 일본에서 딸이 태어나면 외할머니가 사주는 것으로 외가에서 손녀에게 대물림하는 것이기도 하다. 히나인형이 여자아이를 대신해서 여자아이에게 오는 액을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자아이가 건강히 성장해서 평안한 인생을 살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친구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걸 아는 분 손녀에게 대물림을 했다. 일본이 겉보기에 소비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살을 보면 가까운 사이에서 마음과 정성을 주고 받는 것을 중요시한다. 친구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처럼, 그 히나인형이 소중히 여겨졌으면 한다. 인형이 소중한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니까. 구글 글자도 히나마쓰리를 딴 모양이었다.
오늘은 3월 3일,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은 아니다. 블로그에 한번은 쓰고 싶었던 걸, 써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쓰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돌아가신 분 제삿날과 매달 같은 날을 기억한다고 한다. 내가 직접 알던 분은 아니었지만, 그 분이 뿌린 씨앗이 나에게도 날아와 작은 열매를 맺었다는 연이 있다.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이었던 한창기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이 1997년 2월 3일이라고 한다. 내가 박사논문을 낸 일 년 후다. 실은 2월 말까지 쓰고 싶었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서 못 썼다. 그렇다고 지금 생각이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기일이라서 쓰기로 했다.
뿌리깊은나무는 내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뿌리깊은나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렇게 책이 많지 않던 시절에 뿌리깊은나무는 정말로 멋있었다. 우선 표지사진부터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달랐다. 내용은 다 이해를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멋있다는 점만으로도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내가 쭉 열혈독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챙겨읽는 책이었다. 다른 책들은 내용이 두리뭉실했지만 뿌리깊은나무는 예리했다.
뿌리깊은나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영향을 준 것은 민중 자서전이라는 구술사였다. 내 기억으로는 뿌리깊은나무에 연재가 된 걸로 알았는 데, 이번에 연도를 보니 내 기억이 잘못된 모양이다. 구술사,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나와 연관이 있었고 구체적인 생동감으로 다가왔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수업 내용이 나와 주위 사람들 인생과는 무관하게 느껴졌다는 것과 정반대였다. 막연하게 그런 매력적인 걸 하고 싶었다. 내가 구술사 비슷한 것에 흥미를 가졌던 것은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외할머니를 통해서 구술이라는 걸 봤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글을 못 읽었지만, 똑똑하기 그지없었다. 할머니는 가끔 자신의 집안내력을 기억을 되새기면서 외우고 있었다. 대만에 살던 할머니 동생에게서 편지가 오면 내가 읽어줬다. 그러면 할머니가 말하는 편지 내용은 실제 편지 내용에 확대해석과 주석이 달려서 엄청난 분량으로 불어났다. 어렸으면서도 할머니가 말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편지 내용과 다른 걸 왜 그럴까 생각했다.
구술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것과는 달리 구체적이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희노애락이 담긴 체온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는 내가 사는 주위에는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것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교장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열심히 들었지만, 대부분 알아듣질 못했다. 훌륭하다는 어른들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법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것은 아마 그런 말을 한 본인도 모르지 않았을까 한다.
구술사라는 말도 몰랐고, 하는 방법도 몰랐다. 정말로 막연한 것이었다. 일본에 유학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려운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버스테이 외국인 노동자나, 밀항 등. 그렇지만,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학계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버 스테이, 법을 위반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 관한 연구가 없어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택한 방법이 인터뷰, 구술사를 듣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세계를 재구성하는 데, 적절히 효과적이었다. 막연히 내가 접해보고 싶었던 세계에 접할 수 있었다. 연구방법으로 구술사를 택했지만, 어떻게 구술사를 기록하는지에 관한 책도 별로 없었다.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구술사를 할 때에 뿌리 깊은 나무의 민중 자서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인상깊게 매료되었던 기억이 구술사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되새기던 자신의 집안 내력을 기억하던 것이 밑바탕에 있었다. 뿌리깊은나무가 뿌린 씨앗 중 하나가 나에게 떨어져 작은 열매를 맺었다는 걸, 돌아가셨다는 날자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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