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6 미투와 정치성향
오늘 동경은 황당한 날씨였다.
지금 한국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를 주목하고 있다. 이전에 썼듯이 미투는 '횃불'이며 '혁명'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적폐'가 쌓이고 쌓였지만 '성폭력'은 최대의 '적폐'가 아닐까 싶다. 미투를 보도하는 매스컴의 무지와 무신경함도 여과 없이 드러나 카오스 상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일은 미투를 하는 용감한 여성들로 인해 일어난게 아니라, 보도를 하는 측이 무지함과 무신경함이다. 매스컴이라는 사회의 엘리트가 일하는 곳, 즉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일터이기도 하다. 그런 자리에서 미투를 접하는 태도는 특별히 주의를 하지 않으면 '가해자'편에 선다는 걸 똑똑히 알아야 한다. 미투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한다는 것은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공격해서 또 다른 '가해'를 한다는 것이 된다. 미투에 대해서 필요한 자세는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미투가 활발해지면서 매스컴의 무신경함에 역겹게 느끼는 것은 '성폭력'을 범한 '가해자'들의 멋있게 보이는 대문짝 만한 사진이 빈번히 나오는 것이다. 아직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의혹' 수준에 있다고 해도 단지 '의혹'이 아닌 정황이 연일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였다고 해서 그들을 멋있게 광고하는 사진을 그렇게 노출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신경하다. '성폭력'을 범했다는 그들의 멋있는 사진을 보면서 역겹게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직 미투에 나서지 못한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의 심정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무지와 무신경함에서 나온 것이다. 보도를 하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폭력'을 범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용의자'들이 멋있게 보이는, 여성들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웃는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실는 것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또 다른 '폭력'이니까.
독자들의 알 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성폭력'이라는 파렴치한 범죄에 연루된 자들에게 어울리는 사진을 쓰는 교양이 필요하다. 그에 맞는 사진이 없으면 사진의 크기를 작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기회에 얼굴을 널리 알려서 사회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목적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관계기사를 읽고 싶어도 그들이 멋있게 보이는 얼굴 사진이 크게 나오는 걸 보면 기사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설마, 그런 걸 노리는 것은 아니겠지 싶다.
미투와 정치성향을 연관짓지 말라고 한다. '성폭력'은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엄하게 다스려져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성폭력'이 만연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수진영'에 대한 미투가 왜 나오지 않을까? 오히려 도덕적인 관점을 중시할 것 같은 '진보진영'이라는 쪽에서 미투가 활발히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 설명을 하자. 기본적으로 '성폭력'에 대해서 '보수진영'이 더하고 '진보진영'이 덜하다는 정치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 좋다. 지금 화두가 된 '성폭력'이 고발되고 있는 '미투'는 '권력'을 무기로 해서 행해지는 파렴치한 '갑질'이기에 포인트는 '권력'인 것이지 정치성향이 아니다.
우선 '보수진영'의 문화는 '진보진영'에 비해 더욱 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전통적인 가족, 남성 우월주의가 더 온존 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이나 다른 '폭력'에 대해서도 여성 자신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희생'함으로써 가부장제가 유지되고 가족이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남성이 우월한 존재이기에 열등한 존재인 여성, 자신이 부족해서 '폭력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여긴다. '은밀'하게 행해지는 '성폭력'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폭력적'으로 다뤄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수치스럽기에 스스로가 '은폐'하고 싶다는 심리가 있어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보수진영'의 가치관은 더 견고하다. 그렇기에 '보수진영'에 대한 미투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단지 시간문제이다. 그 대신 '보수진영'에 대한 미투가 시작되면 정말로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는 걸 예상해야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미투까지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미투가 '혁명'인 것이다.
현재 미투를 보듯이 문재인 정권이라는 '진보적인' 정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장은 문재인 정권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본격적인 미투가 '진보적인' 정권과 때를 같이 했다. 미투는 사회변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단지 고발에 그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진보진영'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미투를 하는 여성들 정치성향 역시 '진보진영'일 것으로 생각된다. 미투가 활발히 일어나는 것 자체가 '진보적인 성향'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즉, '진보진영'이기 때문에 미투가 활발하다는 것이다. 미투로 한국사회의 '적폐'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기에 '적폐 청산'과 문맥이 같다고 본다.
미투로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고 '횃불'이 되어 타고 있다. 자신을 불태워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미투를 하는 여성들이 용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고발하는데 자신을 드러내 '희생'하고 있다. 같은 '희생'이라도 '보수적'인 여성이 자신만의 '희생'으로 문제를 '은폐'하는 것과 '진보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무엇을 위한 '희생'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성폭력'은 '진영'에 상관없이 엄하게 다스려져야 하는 '폭력'이기에 '대물림'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딸과 손녀에게도 상속된다. 여성이 안심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딸과 손녀에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물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미투로 인해 '진보진영'이 타격을 입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투라는 '횃불혁명'은 '성폭력'이라는 최악의 '적폐 청산'이라는 기회를 여성들이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은 미투에 성실히 응답하라. '진보진영'이 걸머져야 할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길인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한국사회가 건전하게 변할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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