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9 벚꽃소식 3
오늘 동경은 오전에 좀 맑았다가, 흐렸다.
춥지는 않아도 흐리고 습기가 많은 날씨였다. 오늘은 요새 산책을 잘해서 그런지 일찍 눈을 떴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었다. 오전에 책을 조금 읽은 거 외에 뭘 했는지 기억이 없다. 다음 뜨개질을 생각하며 잡지를 봤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모티브가 있는 데, 어떻게 표현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야 겠다. 점심을 일찍 먹고 산책을 나가려다가, 큰 서랍을 커내서 물건들을 점검했다. 외국에 갈 때 선물로 쓰려고 물건들을 사놓는다. 내 취향이 독특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손수건을 좋아해서 손수건이 적당한 게 있으면 산다. 봄이면 봄 기분이 나는 색으로, 올봄용으로 핑크와 노란색을 샀다. 올봄에 쓸지 어떨지는 모른다. 가을과 겨울용도 있다. 워낙 땀을 잘 흘리는 사람이라, 여름에는 타월로 된 것이 좋다. 신학기가 시작되어 일을 나갈 때 손수건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손수건이 없으면 낭패를 본다. 티슈로 닦았다가 얼굴에 티슈를 남기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오후 좀 늦게 꽃구경을 나갔다. 흐린 날씨에 습기가 많다. 벚꽃은 화창하게 맑은 날에는 별 볼 일이 없다. 날씨가 화창해서 너무 밝으면 벚꽃색이 여린 색이라,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벚꽃은 흐린 날이 어울린다. 흐려서 어두스름 할 때, 저만치서 서있기만 했던 벚꽃이 자체 조명을 발하면서 뿌옇게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갑자기 벚꽃나무들이 입체가 되어, 3D 영상이 되어 다가온다. 꽃에는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날씨라든지, 꽃이 돋보이는 조건적인 무대장치가 있다. 그 무대장치는 유심히 관찰을 하면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자신의 무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마, 그것은 꽃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길가에 피어 있는 평범한 꽃도 한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어 특별한 순간을 가진다. 내가 어떤 꽃과 눈을 맞춘 특별한 순간은 작은 감동으로 가슴에 남았다가 잊힌다. 그런 순간들을 쌓아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요새, 꽃놀이를 다니면서 발견한 게 있다. 벚꽃나무 터널을 걷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의식을 해서 그렇게 걷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공통적인 걸음걸이를 발견했다. 재미있다. 아마, 그 게 벚꽃나무 밑을 걷는 바람직한 걸음걸이 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걷는냐면, 절대로 나처럼 보무도 당당히 씩씩하게 걸으면 안 된다. 벚꽃나무 터널에 어울리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이상해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 된다.
내가 요즘 발견한 벚꽃놀이에 맞는 걸음걸이는 이렇다. 우선 몸에 힘을 뺀다. 그리고 꽃에 홀린 듯, 취한 것처럼 하느적하느적 걷는다. 물론 술에 취한 것과는 다르다. 흐느적흐느적 걸어도 된다. 보폭도 일정치 않으나 가볍게, 직선 이동이 아니다. 표정은 살짝 미친 것처럼 히죽히죽거린다. 무툭툭하게 굳은 표정은 금물이다. 시선은 어디까지나 앞이 아닌 약간 위쪽에 벚꽃나무를 보고 있는 거니까, 가끔은 뜬금없이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본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방해가 되지 않게 기다려주자…
오늘은 오후에는 바람이 있어서 꽃이 지기 시작했다.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눈보라보다 더 예쁘고 특별한 장면이다. 눈보라는 춥고 녹아가니까… 옅은 핑크색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면, 기분도 붕붕 뜬다. 젊은 커플이 지나가는 데, 남자아이가 흥분상태다. 야, 예쁘다, 멋있다. 정말 이런 장면이 있는 거구나,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강가에도 지는 꽃잎이 떨어져서 모아졌다가 강물과 같이 흘러내린다. 꽃잎들이 모양을 만들었다가 흐트러진다. 오리들도 봄볕을 맞아가며 낮잠을 잔다. 어떤 커플은 강둑에 앉아 둘이서 각자 책을 읽고 있다.
올해 벚꽃놀이는 시간 관계상 내일 낮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올해는 벚꽃이 일찍 피었지만, 다행히도 충분히 즐길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