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7 서울 나들이
오늘 동경은 맑고 쾌청한 날씨였지만,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제 오전은 날씨가 좋더니, 오후 들어 비가 오기 시작해서 밤에는 주룩주룩 내렸다.
나는 지난주 토요일 밤부터 이번 주 금요일 저녁까지 서울에 다녀왔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기분전환을 위해서 봄 나들이 간 거다. 방학 때는 주로 외국에서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지내는 게 당연한 생활이었는 데, 이번 봄방학은 일이 늦어지다 보니 결국 외국에도 못 가고 주로 동경에 있었다. 거기에다 일본 분위기가 나빠서 일본에 만 있다 보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과목에 '글로벌 사회학'이라는 게 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아야 학생들에게 이렇더라, 저렇더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이번에 서울에 간 것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블지기님들과 호주에서 오는 교수님이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만났다. 연락이 닿아서 만난 거다. 별다른 생각 없이 서울에 간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아주 좋았다. 오블지기님들 덕분에, 아주 좋은 서울 나들이를 하고 왔다.
어쩌다가 대한항공을 탔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를 쓰지 않아 그냥 없어져 가는 걸 보면 속이 상한다. 그런데 마일리지를 쓸 생각을 하면 복잡해서 엄두가 안 난다. 저녁밥이 완전 맛이 없었다. 대한항공은 대체로 밥이 먹을 만하다. 비빔밥은 히트작이다. 아시아나에서도 비빔밥을 주지만, 대한항공이 낫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가끔 아주 인상적일 만큼 맛이 없는 음식이 나온다. 내가 인상에 남는 것으로, 인천 가고시마 노선에 나왔던 일본음식이 있었다. 쇠고기에 곤약을 넣어서 조린 것이었다. 쇠고기 기름이 굳어서 하얗게 된 게 그대로 보여서 공포스러웠다. 음식을 안남기는 나도 그 건 아예 손도 안 댔다. 조금 있으니까, 같은 노선에서 그 음식이 안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 먹은 쇠고기와 밥, 쇠고기가 매웠다. 어떤 향신료를 썼는지, 이상하게 맛이 없는 매운맛이었다. 그리고 쇠고기 기름이 너무나 많아 냄새가 났다. 밥을 먹고 난 후에도 쇠고기 냄새가 나서 괴로웠다. 대한항공에서 나온 인상적으로 맛이 없었던 기내식이었다. 앞으로는 베지탈리안이라고 해야 하나???
일요일 아침에 너도님께 전화를 했다. 너도님에게는 좀 이른 아침이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머문 곳과 너도님이 사시는 곳이 가까웠다. 30분 후에 만난 너도님은 봄색(녹색과 노란색) 니트를 입고 화장까지 완벽한 모습이었다. 믿을 수가 없다. 거기서 이번에 신간을 내신 작가 이충렬님이 계신 곳을 향했다. 이충렬님과 여동생분이 합류를 해서 서종사에 갔다. 이충렬님이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 데, 아주 재미있으시다. 책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시다. 하긴 라이브 토크쇼라 훨씬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만난 작가 중 아주 재미있게 말씀을 하시는 분에 속한다. 이충렬님은 작가시라, 표현력이 뛰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다. 이충렬님 여동생분 표현력이 너무 생생하게 재미있었다. 클라라씨네 떡이 눈앞에 떠다닌다고 하니, 내눈에도 떡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클라라씨네 떡 맛도, 나도 떡을 사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표현하셨다. 정말로 떡이 맛있었지만… 표현력도 아주 맛있었다.
서종사에 가서 마치 점심을 먹으러 간 사람들처럼 점심을 먹었다. 달짝지근한 냉잇국과 모든 반찬이 맛이 있었다. 식후에는 야콘과 딸기를 먹었다. 야콘을 먹은 적이 있지만, 그렇게 달작지근한 야채라는 것을 몰랐다. 그동안 이충렬님은 전화로 인터뷰를 하셨단다.
점심을 끝내고 이충렬님이 가져가신 신간에 친필 사인을 하시고 스님께 드린다. 나중에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한 권을 받았다. 순전히 너도님 백인지라, 너도님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서평을 써야 할 것 같은 데, 새학기가 시작이라, 못 쓸 것 같다. 그냥 대충쓰면 오히려 작가님과 너도님께 실례라 안 쓰는 게 낫다. 책표지에 쓴 블루가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환기 블루’라고 하신다. 환기 블루, 멋있다!
맨앞 책은 뮤즈님, 두 번째 책은 너도님, 세 번째 책은 저자가 주셨다.
그리고는 차를 마시면서 스님과 이충렬님을 중심으로 라이브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아주 즐거운 꿈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돌아올 때, 스님이 쓰신 책을 주셨다. 사우나에서 스님이 주신 책을 읽었다. 좋은 사진과 간결한 문체,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내용, 거슬리는 게 없는 좋은 책이다. 내 침대 옆에 있는 도서관에 놓고 자기 전에 읽으면 평온한 수면을 줄 것 같다.
저녁 때 뮤즈님이 합류를 하셨다. 너도님과 뮤즈님, 나 셋이서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맛있는 횟집에서 숭어회와 청하, 개불과 해삼을 먹었다. 셋이서 청하 한 병에 취했다. 나는 술을 못 마시는 데, 아주 편한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만 조금 마신다. 생선회와 술을 마시니,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은 전날에 너도님 아드님이 쓰던 핸드폰을 주셨는 데, 뮤즈님 차에 떨어뜨려서 전화를 받으러 너도님 학교에 들러서 점심을 같이 먹고, 뮤즈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뮤즈님이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가까이에 있는 절로 안내해 주셨다. 산이 가까이에 있는 큰 절이었다. 뮤즈님과 절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고슴도치를 봤다.
4월 3일 오전에 뮤즈님과 같이 고대에서 ‘지슬’을 봤다. 한겨레에 실린 영화평이 아주 좋아서 기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은 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뮤즈님께 부탁을 해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가 좀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뮤즈님과 같이 학고재에서 열리는 ‘강요배전’을 봤다.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좋았다. 제주도 자연이 가진 ‘강인함과 거침’이 잘 표현된, 아주 힘이 있는 그림들이였다. 어두운 색을 잘 쓰신다. 밝은 톤보다 어두운 그림이 좋았다. 그리고 칼국수와 만둣국을 먹었다.
중부시장에 가서 건어물을 사고, 중간에 친구를 만났다. 중부시장에서 산 건어물을 가지고 인사동 ‘여자만’에 갔다. 먹방지기님이 먼저 와 계시다. 조금 있으니 올리브님이 등장하셨다. 올리브님은 처음 뵙는 데, 같은 나이라고 한다. 전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동안이시다. 뮤즈님은 조금 늦게 합류하셨다. 그리고 올리브님을 모델로 내 옷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했다. 올리브님은 아마 황당하셨으리라, 그래도 모델역할을 하시더라. 홍어삼합이라는 걸 처음 먹었다. 딱 한 점을 먹었다. 그리고 꼬막은 거진 내가 다 먹었다. ‘여자만’ 음식이 맛있었다. 막걸리도 두 잔 마셨다. 나로서는 처음이자, 기록적인 주량이다. 먹방님은 지난 여름에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어울리시는 귀중한 캘릭터이시다. 만드는 데 같이 참여했다는 아직 출시가 안된 술을 한 병 주셨다. 결국,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까지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 지 기억이 없지만, 좋은 시간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저녁은 먹방님이 사주셨다.
그 다음날 너도 님과 만났다. 뜨고 있던 흰색니트를 완성해서 입고 나오셨다. 아주 봄날에 어울리는 니트였다. 한 분이 더 오신단다. 너도님댁 주차장에 갔더니, 반짝이 운동화를 신은 제비님이 ‘짠’하고 나타나셨다. 반짝이 운동화를 본 순간에 아, 제비님이라는 걸 알았다. 제비님, 웨이브가 진 긴 검은 머리에 짙은 선글라스, 예사롭지가 않다. 슬프게도 너도님은 전날 손가락을 많이 다쳤다. 그래도 아픈 기색 하나도 없이 쭉 운전을 하시더라.
양수리 클라라씨네 가서 떡을 사고, 볕바른 가게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더니, 뮤즈님이 나타나셨다. 이번 한국에 가서 마신 커피 중 클라라 씨네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 떡값은 뮤즈님이 계산해 주셨다. 그리고는 커피집 앞에서 제비님을 모델로 패션쇼를 다시 한번, 제비님 옷을 잘 표현하는 표현력을 지니신 분이다.
그리고는 도공님네로 향했다. 도중에 김밥을 사고, 간식과 주류도 샀다. 행동대원은 뮤즈님이셨다. 행동이 재빠르다. 나도 뒤따라 가려고 차에서 내렸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도공님네를 갔더니, 제비님네가 집을 지으신다는 화제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가끔은 바깥에 볕바른 곳에서 봄볕을 쪼이면서 안팎으로 드나들면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도공님네서 사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욕심을 낼 처지가 아니라, 나는 한 점도 안샀다. 그리고 뮤즈님이 가게에 돌아갈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 길치인 나는 지명도 전혀 외우질 못했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멋있는 경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너도님과 뮤즈님 덕에 ‘꿈같은 봄날에 나들이’를 했고 정말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오블을 해서 이런 오블지기님들과 인연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완전 특별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오블지기님들이 계셔서 삭막했던 서울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나의 서울 나들이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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