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9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테러
오늘 동경은 어둡게 흐리고 아침까지 비가 왔다. 그저께부터 비가 오더니 어젯밤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요즘 써야 할 원고 진도가 안 나가서 밤늦게까지 깨어있다. 이렇게 원고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오늘 컴퓨터를 켰더니 페북에 외국 친구들이 소식을 많이 전해왔다. 어제가 국제 여성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국제 여성의 날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평범한 평일로 지나갔다. 호주에 있을 때 보면 친구들이 일을 쉬는 날로 여성들이 모여서 축하를 하는 기쁜 날이었다.
블로그를 올리지 않은 사흘간에 한국에서는 미투(#MeToo)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의 성폭력 폭로로 한국의 미투가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사회는 그 걸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성폭력이 폭로된 것에 대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 이 걸로 미투는 정점을 찍고 정말로 한국사회가 더 이상 성폭력에 대해 관대한 사회가 될 수 없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으로 기억되겠구나 싶다. 미투는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용감한 고발이다.
안희정의 비서였던 여성이 TV에 나와서 증언을 하는 영상을 보고 느낀 것은 '저 사람이 벼랑끝에 서있구나, 지금 많이 아픈 힘든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희정의 기자회견이 취소되고 서울에서 비서에 대해 성폭행이 있었다는 오피스텔을 수색하는 과정에 CCTV에 찍힌 영상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안희정이 먼저 들어가고 비서가 0시에 들어 갔다가 새벽에 혼자 나욌다는 것이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이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도배가 되었다. '비서가 말한 성폭행이 아니라 불륜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도 여성이지만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만 두면 되지 왜 거기를 갔느냐'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여성이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여성이라면 남성적인 관점에서 쓴 댓글들이었다. 즉,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었다. 비서가 TV에 나온 것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죽기 살기로 인생을 걸고 TV에 나와서 고발을 한 것에 대해 일부 남성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댓글로 공격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안희정이 자진 출두했다. 철저한 수사로 사건이 명확히 밝혀지기 바라며 가해자는 범한 죄에 대해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성폭력에 성역이 없다. 모든 것이 수사로 밝혀지기 바란다.
피해자 보호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선해야 할 일이다. 수사 과정에 2차 피해를 받는 일도 없어야 하기에 주변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이 항상 피해자를 보호하며 힘을 합할 것으로 여겨진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을 지원하는 일본 NPO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100%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자해행위는 허다하다. 그런 피해자에 대해 댓글로 공격을 가하는 것은 피해자만을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피해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미투를 할 수 있는 용감한 여성만이 아니다. 그런 댓글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사람의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딸도 여성이기에 공격을 받는 게 된다. 무책임한 댓글로 모든 여성을 공격하고 있다. 여성이 불행한 사회에서 남성이 행복할 수 있을까.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가 남성들이 행복한 사회인가. 성폭력은 여성에 한한 것이 아닌 모두의 문제이다.
미투를 하는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 주변의 소중한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여성만이 아니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자신이 던진 여성에 대한 '혐오'의 부메랑이 돌아와서 자신을 공격한다는 걸 알기 바란다.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는 '테러'는 사회를 공격하는 '테러'가 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성폭력은 특수한 범죄로 아주 교묘하다. 적어도 피해자라고 죽을힘을 다해서 나온 여성에게 댓글로 돌을 던지는 '테러'를 하면 안된다.
사진은 전날 비가 와서 다음날 아침, 안개 낀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자욱한 안개가 말끔히 걷히듯 성폭력의 안개가 걷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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