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5 산책길에 핀 꽃
오늘 동경은 맑았고 그다지 쌀쌀하지 않은 날씨였다.
맑은 햇살을 받아 신록이 영롱하게 빛나 보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씨였다. 어제 청소해서 시야가 맑아진 유리창을 통해서 빛나는 신록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계절이다.
저녁때가 되니 바람이 불고 약간 쌀쌀해졌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일과인 요가를 하고, 아침부터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보통은 아침에 빵을 먹는 데, 빵이 없다. 버터도 없다. 오늘 아침에 사러 갈 예정이었는 데, 가기가 싫어졌다. 있는 걸로 먹어야지. 오늘은 부침개를 먹는 날이었다. 아침에 부친 부침개는 부추에 잔멸치를 넣은 것이었다. 석 장을 부쳐서 아침에 두 장, 점심때 한 장을 먹었다. 부침개와 같이 먹은 것은 어제 무로 담근 피클이었다. 무를 하나 사다가 닭을 삶았던 수프에 넣으려고 하다가, 수프에는 버섯과 애호박, 가지를 넣었다. 무는 채 썰어서 소금에 절였다가, 약간의 설탕과 유자차에 식초, 다시마를 많이 넣어서 피클을 만들었다. 사실 욕심을 내서 큰 무를 골라서 사지만, 먹기가 힘들다. 무우를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피클을 만드는 것이다. 무청도 같이 넣었다. 유자차는 단맛에 향기를 더하기 위해서 넣는다. 부침개에 피클을 많이 넣어서 부침개로 타코스처럼 싸서 먹었다. 피클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밀가루가 무겁지 않았다. 점심도 부침개로 때웠다.
오후에 다시 애호박과 양파, 잔멸치를 넣어서 부침개를 만들었다. 이건 이번 주 도시락으로 만든 거다. 오후에 부침개를 부칠 때는, 목요일에 있는 여성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동시 진행으로 했다. 여성학 강의 내용을 입력하면서 부침개를 부친 것이다. 도시락을 내놓고 네 개를 채웠다. 마지막에 남은 작은 걸로 저녁을 때웠다. 오늘은 좀 많이 먹은 날이지만, 나중에 산책을 하면 배가 꺼지겠지. 여성학 강의 준비도 일차로 끝났다. 나는 강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다 입력하는 형이다. 일차로 좀 넉넉하게 입력을 해놓고 수업 전날에 다시 점검하면서 중요한 것에 줄을 긋고 내용을 줄여간다. 수업이 있는 날,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다시 한 번 내용을 점검한다. 학교에 가서 프린트를 해 복사를 한다. 강의 때,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그 걸 같이 읽어간다. 거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다던지, 그런 식으로 진행한다. 평상시에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수업내용과 관련된 사항은 스크랩을 해서 학생들에게 배부를 하거나, 강의 때 예를 들어 해설을 한다. 그러면서, 같은 강의내용이라도 새로운 자료를 넣거나, 새로운 사례를 넣으면서 업데이트를 해간다. 새로운 내용은 빨간 펜으로 써놓거나, 메모를 써서 부쳐 놓는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사지 않아서 강의 내용을 배부한다. 학기말에 리포트를 작성할 때라도 읽으라고, 강의 때도 모르는 말이 나오면 사전을 찾으라고 그렇게 한다. 강의에서는 가능한 노트를 쓰지 않고 메모 정도로, 강의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걸 상상하길 바란다. 내가 그런 스타일의 강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편의를 생각해서 자료를 만들지만, 학생이 보면 어떤지 잘 모르겠다. 학생들은 그렇게 자료를 준비해도, 선생님 너무 빨라요, 천천히 해주세요, 한다. 내가 그 것까지 조정을 하려다 보면, 뭘 말하고 있는지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학생들에게 내 스피드를 따라오라고, 그리고 내용은 자료에 있다고 주지 시킨다.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오늘 석양은 다른 날보다 더 빛났다. 공원 가는 길목에서 보니, 석양이 전깃줄 사이에 걸려있었다. 산책길에 피어 있는 꽃들을 찍었다. 동백도 아직 피어 있는 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는 이름도 잘 모르는 꽃들, 홀연히 소박하게 피었다가 지는 꽃도 많다. 꽃가게에서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꽃보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편안하다. 같은 산책길을 걸어도 주목하는 것에 따라 달리 보인다. 오늘은 보통 때 주목하지 않는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을 찍었다. 이렇게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나의 일상도 흘러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