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0 날씨의 반전?
오늘 동경 날씨는 아침부터 흐렸다가, 오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무엇보다도 춥다.
기온이 낮아서 가랑비도 촉촉한 게 아니라, 춥다. 목요일은 갑자기 여름 날씨처럼 더워서 사람들을 늘어지게 하더니, 금요일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최고기온을 보면 완전 겨울 날씨다. 내일도 최고기온이 10도로 춥단다. 월요일까지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데, 쌀쌀한 정도가 아니라 춥다.
집안에 있으면 바깥 날씨가 어떤지 감을 못 잡는다. 전철 안은 덥고 밖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더워지는 지라, 기온 변화에 따라 옷을 입기가 난감하다. 금요일에는 어쩌다가 타이츠를 신고 발목까지 오는 부츠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갔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뛰어가는 데 추웠다. 그리고, 자신의 아둔함을 원망했다.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왜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에 미니스커트냐고… 타이츠를 신었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튼실한 다리를 보면서도 기가 막혔다. 그런데, 왜 미니스커트를 입었냐고… 딱히 대수로운 이유가 없다. 어쩌다가 가끔은 다리를 내놔야, 다리도 세상이 봄이라는 걸 느낄 거고, 나도 다리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뭐 그런 정도… 운이 나쁘게도, 우연히 추운 날이었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수업상황을 보면, 학생들이 조금 변한 것 같다. 보통 내 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성실하다. 내가 요구하는 수준이 좀 높은 편이다. 수업받는 학생들 분위기가 성실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지각도 못하고 떠들지도 못한다. 대체로 수업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물론, 과목과 대학에 따라 그렇지 못한 수업도 하나 정도는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학생들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다르다. 내 수업에 학생들이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집중력이 ‘몰입’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90분 수업이 금방 끝난다. 학생들도 수업이 즐거워요, 금방 끝나요, 다음 수업이 기다려져요. 그런다. 문제는 학생들이 ‘몰입’이 필요하지 않은 수업에도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걸까? 모르겠다. 나도 정신없이 수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는 걸 모르고 끝낸다. 그러나, 90분 수업을 하루에 세 번 하고 나면 역시 피곤하다. 신경을 쓰는 수업이 아닌데도, 피곤한 걸 보면, 학생들이 내 기운을 뽑아 먹는 걸까, 의문이다. 아니면, 내가 드디어 머리에서 연기라도 뿜어내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직 특이한 복장을 한 것도 아닌 데, 아무래도 머리가 너무 짧은 탓일까… 궁금하다.
우연히, 금요일에 지난 학기에 단위를 못 받아서 재시험을 친 학생을 세 명이나 마주쳤다. 학생들이 어색해할 줄 알았는 데, 그렇지 않았다. 먼저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기가 미안했다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한 명은 아주 특이한 복장을 하는 좀 독특한(어려운) 여학생이었고, 또 한 명은 불량배 같은 남학생에, 한 명은 성실한 유학생이었다. 유학생은 마지막에 리포트를 안 냈다. 지금까지는 그런 관계면 학생들이 단위를 받아도 나를 보면 껄끄러워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변했다. 아는 학생들은 친구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점심시간에 지난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 피해 선생이 안 온다. 찾아보니 불쌍하게 다른 데서 점심을 먹고 있다. 내가 가서 내 옆자리를 비워놨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집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친한 미국 선생과 피해 선생이 같이 버스를 탔다. 미국 선생도 가해자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피해 선생과 말을 하면서, 나는 그냥 앉아서 두 사람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전철을 탈 때는 피해 선생과 둘이다. 수다를 떨면서 왔다. 화요일에 있었던 일은 사고였고, 운이 나쁜 것이었지만,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하라든지, 아니면 이렇게 처벌을 했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건 싫다는 것이다. 그 건 학교 징계위원회에서 정할 일이다. 아무리 피해자이고 당한 쪽이지만, 한편으로 그 사람 인생도 불쌍하다.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인생이다.
역에 도착해서 항상 가는 가게에 들렀다. 초콜릿향이 나는 핸드크림이 있어서, 쓸 수 있을지, 가게 사람에게 물어보고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봤다. 그랬더니 가게 사람은 내가 항상 가서 그런지 물건값을 살짝 깎아준다. 그리고 어제는 자기 초콜릿을 꺼내서 준다. 그리고 파운드케이크를 세 개나 선물로 줬다. 내가 돈주고 산 물건값보다 훨씬 많은 걸 받고 말았다. 그냥 기뻤다.
하루 사이에 이런저런 드라마가 있었고, 위안이 필요한 사람과 위안을 주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작은 배려를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럴 때 인간들이 살아가는 걸 느낀다. 거기에는 미국인이라든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닌, 선생과 학생, 물건을 파는 사람과 손님, 그런 걸 떠나서, 그저 인간들인 것이다. 그러면 된거다. 가끔 사고가 나고, 추운 날씨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튼실한 다리로 미친 듯이 달리는 아줌마가 있어도 되는 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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