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0 구마모토 지진
오늘 동경은 맑은 날씨였다. 첫 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주 개강에서는 수업에 관한 안내만 했다. 실질적으로 강의는 이번 주부터 시작인 셈이다. 오늘 강의는 아시아 사회론이라는 과목이다. 아시아 전체를 다룰 수는 없어서 일본을 중심으로 가까운 나라의 ‘행복’을 테마로 강의를 진행한다. 오늘 강의를 해보니 학생들이 확연히 두 파로 나눠진다. 첫 교시로 강의를 설정한 것은 정말로 듣고 싶은 학생들이 왔으면 해서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과 강의를 방해할 의도로 수강신청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항적인 학생으로 나뉘었다. 일부 학생들이 근래 일본 매스컴에서 전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있다. 정말로 드물게 제대로 공부를 한 학생도 있기는 있다. 두 종류의 학생은 얼마나 다른지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해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후반부터 시작된 구마모토 지진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불안한 상태다. 지난 주말에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서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토요일 밤에는 다리가 끊기고 주저앉은 집들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재해 현장을 계속 보는 것은 정신 위생상 해롭다는 걸 알았다. 우선, 민영방송에서는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거듭 강조하면서 무너진 재해 현장을 보여주는 걸 되풀이한다. 대피소에 피난한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면 심각한 내용의 말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온화한 얼굴이다. 웃기까지 하면서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그 게 이상해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보통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는 거니까, 좋은 얼굴을 해야지, 아는 사람들도 보는데. 지난번 동일본 대지진 때도 그랬지만, 비판적인 말을 하면 대피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한단다. 이지메가 무서우니까, 자신들의 심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안 된다고… 역시, 일본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NHK를 봤다. NHK를 보고 있으니까, 큰 지진이 발생했지만, 정부에서 잘 알아서 대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자위대의 활동을 강조한다. 미군이 도와주기로 했다고도 한다. 마치 자위대가 다 알아서 대처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안심이 된다. 거기에다 미군까지 도와준다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NHK를 보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런 큰일이 일어났지만, 일본 정부가 잘하고 있으며 자위대와 미군까지 도와줘서 상황이 종료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 아베 총리의 얼굴을 봤다. 말로는 아주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 대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저히 인간의 얼굴로 보이지 않는다. ‘요괴’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도 인간이 아니라 ‘요괴’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도 인간과는 동떨어져서 점점 ‘괴기’스럽게 느껴지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아베 총리와 막상막하다. 정치적 수완으로는 아베 총리가 훨씬 고단수다.
내 페북에는 재해 현장에 구원 물자를 싣고 가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발신하는 정보가 올라온다. 구체적인 대피소 상황과 대피소에 구원 물자가 부족하다고 필요한 물자의 품명이 올라온다. NHK 뉴스와는 달리 지정된 대피소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구원 물자가 보급이 안된단다. 어떤 대피소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고 하늘에서 볼 수 있게 구원 신청을 운동장에 썼다. 후배도 대피소에서 지내면서 상황을 알려준다. NHK에서 전하는 것과는 달리 재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구원 물자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욕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NHK에서 자위대의 활동을 홍보하고 미군과의 협력관계를 강조해야 하는지. 재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데, 아주 넌덜머리가 났다. 재해현장에서 자위대가 출동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의 활동을 홍보하고 미군의 도움을 받는 걸 강조해서 억지로 통과시킨 ‘안보법’ 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것이다.
내가 화가 나고 욕이 나오는 것은 자위대를 홍보하고 미군의 도와주는 쇼를 연출하면서 감사하고 감동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 NHK 보도를 보고 있으면, 큰 지진이 났지만 정부에서 알아서 잘 대처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만 믿고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국민들, 시청자는 안심하고 싶기에 보도를 그대로 믿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주 다르다.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욱더 고립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베 지진 때도 그랬고, 동일본 대지진도 상황이 종료되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재해를 당한 사람들이 가장 힘든 타이밍에 고립되고 소외시키는 걸 다시 재연하고 있는 걸 알기에 울화통이 터진다. 참으로 비열하고 잔혹한 정치다. 그러나, 일본의 공영방송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런 권력의 비열함과 잔혹함이 보이기는커녕 큰 재난을 아름답게 극복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감추면서 아름답게 연출하는 걸 너무 잘한다. 그 게 주특기라는 걸 잘 알지만, 무서운 수완이다. 한국 대통령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아베 총리의 압승이다.
모란꽃이 피었다. 며칠 전에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