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안부'를 둘러싼 보도를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위안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잡아먹지 못해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다. 정작, '위안부'를 착취하고 성폭행에 죽이기까지 한쪽에서 왜 길길이 날뛰고 있는지? 아마,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절대로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을 걸로 보인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고 있을 걸로 보인다. 그들의 영광의 역사에 대한 '오점'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 극우가 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을 보고 정의연과 윤미향 씨가 반론하지 않는 걸 보고 이전에 썼던 논문을 꺼내서 봤다. 나도 제주도 1세의 구술사를 기록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마이노리티에 대한 연구를 해서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구술사를 기록했던 할머니들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 약자, 마이노리티의 구술사에는 말하고 듣기를 통한 특별한 연대 관계가 형성된다. 정의연처럼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끈끈한 연대감이 형성되는 것은 공통점이 아닐까 해서다. 자신의 살아온 역사를 솔직히 말한다는 것은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 자신들이 차별받는 존재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보이는 것과 같은 면이 있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자신을 성실하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의 역사를 말하고 듣고 기록을 하는 과정으로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선행조차 극구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자기 어머니에게 살아온 역사를 듣고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이 보기에 어머니는 평소 생활에서 근검절약하는 사람으로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어머니가 고향마을 초등학교에 기부해서 감사장을 받았다. 자신으로서는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런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듣고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몇 번인가 찾아갔다. 친절히 대해 주지만 기부해서 감사장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예는 다른 케이스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다. 선행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결코 표현하지 않지만 자신의 선행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신의 희생을 통한 선행이기도 하니까.
다른 할머니는 장녀로 태어나 결혼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멀리 출타를 해서 집에 없고 병약한 어머니와 동생을 돌보는 집안에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시집가서도 시집과 친정 양쪽을 돌봤다. 시집에서도 죽기 살기로 일하면서 조상을 모시고 집안 대소사를 주도했지만 가부장제 하에 여자이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면서 친정과 시집에 효도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희생보다 장녀로서 역할을 한 것에 대해 시집을 잘 봉양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가치를 뒀다.
제주도에서 내가 구술사를 들은 세대는 거의 학교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옛날부터 구술로 많은 것을 전승하는 문화가 있는 지역에서는 구술이 중요한 매체이기도 하다. 제주도에는 옛날부터 '심방'이라는 샤먼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방'은 여성에게 길잡이라고 할까, 여성들이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애환을 풀어주고 공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기도 하다. '심방'은 보통 여성이 많으나, 신과 가까운 존재로 이 세상과 저세상을 연결하는 존재라서 성별을 초월한다. 제주도에서는 장례가 끝나고 귀양 풀이를 통해서 돌아가신 분의 목소리나 마음에 남은 걸 듣기도 한다. 마음에 남은 것이 있으면 저세상으로 갈 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은 걸 털어내고 미련 없이 저세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심방'을 통해서 마음에 응어리를 풀어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생활양식은 깊이 박혀있어서 현재 재일 제주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볼 수가 있다. 일본에 와서 몇 대가 지나도 옛날 제주도에서 했던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걸 본다. 내가 아는 사람도 2년 전인가 천만 엔, 1억 원 이상을 들여서 큰 굿을 했다고 들었다.
'심방'은 아니지만, 구술을 하는 대상과 그걸 듣고 기록하는 사람은 단지 듣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술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을 들으려고 하다 보면 구술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느낌이 든다. 슬픈 대목에서는 같이 슬프고 아픈 것은 같이 아픔을 느낀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숨과 눈물과 콧물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른다. 같은 파장을 느껴서 구술하는 사람의 감정이 전이된다. 순간적으로나마 일심동체가 된다고 할까, 일체가 되는 과정이 있다. 구술을 하는 사람은 말을 듣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깊이 잠재웠던 기억을 깨우기도 한다. 아픈 기억을 되살릴 때는 다시 아픈 상처가 재현되기도 하고 외로웠던 심정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나이를 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아이와 같은 표정이 되고 소년 소녀시절 이야기에서는 소년과 소녀가 된다. 청춘시절을 되새기기도 한다. 구술의 문화에서는 구술의 기술과 방법이 있다. 자신의 역사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눈으로 관찰하고 해석하기도 한다. 결코 평면적인 표현이나 고찰이 아니다. 성실한 구술은 자신을 향해서 성실한 고백을 하는지 점검하기도 한다. 자신이 자신을 향해서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걸 공유한 사람은 특별한 관계가 되고 만다. 자신의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도 있다. 한풀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말을 듣는 사람도 상처와 아픔을 같이 느끼면서 치유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연구를 위해서 만났지만 구술을 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만다. 나에게 인간적으로 기대하는 감정도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상처를 입고 아프고 섭섭해하기도 한다. '기대'는 '마음의 교류'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사람은 잔인하게도 사람들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속살과 같은 걸 날 것으로 경험하고 가져간다. 내가 필드를 떠나도 나와 만나서 구술을 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기억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서 소중한 것을 받았지만 내가 대신 드릴 것은 없다. 거기서 주고받는 관계라면 나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도망간 나쁜 사람이 된다.
특히 힘든 것은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이고 싶지 않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냈을 때는 신뢰하고 기대는 마음이 크다. 어쩌면 상호의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단지 구술이나 상담이 아닌 관계가 되었을 때, 아주 어렵다. 남의 아픈 곳을 보고 말았다는 것은 그 상처를 같이 보호하고 치유하는 동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상대를 신뢰하기까지 많은 테스트를 거듭한다. 신뢰하면서도 테스트를 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마음을 열기도 어렵지만, 열린 다음에도 어렵다. 의지했던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애증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내가 연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정의연과 윤미향 씨가 만났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관계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을 걸로 본다. 윤미향 씨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동행했던 기간만큼 주고받은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이 쌓였을 걸로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애증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장에 왔다면 할머니가 억지를 부려도 반론을 하지 않았을 걸로 본다.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할머니에게 반론을 할 수가 없다. 인간적으로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말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반론을 못한다고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윤미향 씨는 할머니에게 아주 성실한 태도로 접하고 있다.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길이 있듯이, 윤미향 씨에게도 갈 길이 있다.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
윤미향 씨가 국회의원으로 성실히 일하는 것으로 정의연에서 했던 운동이 더 큰 결실을 보길 간절히 바란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으로서 할머니들이 생전에 못다 한 일에 힘을 보태는 국회의원이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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